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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Sep 22. 2024

나도 카지노 가입 쿠폰 조상이오

한국 카지노 가입 쿠폰 대축일(경축이동) / 루카복음 9,23-26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카지노 가입 쿠폰자들 대축일]입니다. 아이고 길어라. 대축일 이름이라는 워낙 길어 브런치 소제목에 다 올라가지도 않네요. 그래서 저는 줄여서 '한국 카지노 가입 쿠폰자 대축일'이라고 써버렸습니다. 요한바오로 2세 교종이 방한하셔서 103명의 카지노 가입 쿠폰자를 성인품에 올리시던 해, 그러니까 1984년 이전에는 '한국 카지노 가입 쿠폰복자 대축일'이라고 지낸 것 같은데 그 후에 이름이 바뀐 걸로 기억합니다.


원래 축일은 9월 20일이지만, 외국인이 아니고 바로 우리 카지노 가입 쿠폰 선조들, 우리 카지노 가입 쿠폰자들을 기념하는 날이므로 많은 신자들이 경축할 수 있도록 가장 가까운 주일로 옮겨서 지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대축일에 불만이 좀 있습니다. 우선 이 기다란 대축일의 이름이 마음에 안 들어요.


사람의 생명은 사회적 지위나 학식, 혹은 그가 남긴 족적에 따라 무게가 다르지 않지요. 그러나 우리나라 천주교는 하느님을 위해 카지노 가입 쿠폰하신 분들도 암암리에 차별을 하고 있네요. 카지노 가입 쿠폰자들은 각자의 신념과 카지노 가입 쿠폰에 따라 카지노 가입 쿠폰를 했지, 김대건과 정하상의 동료로서 그 길을 간 건 아닐 겁니다. 그런데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카지노 가입 쿠폰자들'이라는 말에는 주연과 조연을 나눈 듯한, 카지노 가입 쿠폰에도 계급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


우리나라 천주교는 외국 선교사에 의해 전파되지 않고 평신도가 스스로 찾아서 생겨났습니다. 처음에는 평신도가 사제 역할을 하기도 하는 등(이를 '가성직제도'라고 하지요.) 여러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성사를 베풀 주교와 사제를 영입하고, 방인(邦人) 사제를 배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평신도들이애썼는지 교회사를 조금만 읽어봐도 알 수 있습니다. 최초의 방인 사제인 김대건 신부님의 업적을 폄하하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만, 한국의 모든 카지노 가입 쿠폰자들의 카지노 가입 쿠폰카지노 가입 쿠폰을 기념하는 대축일 이름을 굳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그리고 '동료(심하게 말하면 그 외의 떨거지?)'라고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경축 이동'이라는 표현도 좀 귀에 거슬립니다. 제가 국문학자가 아니어서 우리말 문법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경축을 이동한다는 말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만 그런가요?텔레비전에 나오는 자막의 표기가 틀리면 짜증이 나고, 맞춤법 틀린 간판을 내건 음식점은 먹어보지 않아도 맛이 없겠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이런 소소한 것들이 손톱 밑의 거스러미처럼 신경이 쓰입니다.


아무튼,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옥중에서 죽어간 카지노 가입 쿠폰자들, 배교를 했다가 후회하고 돌아와 죽은 카지노 가입 쿠폰자들, 직접 목이 베어진 건 아니어도 엄마 따라 옥에 갇혔다가 굶어 죽은 아기들도 다 하나하나의 고유한 목숨을 바친 꽃들이지, 김대건과 정하상이라는 꽃을 받쳐주기 위해 배경이나 들러리로 세운 '동료들'이 아니라고, 이 연사 소리 높여 외치는 바입니다!!!


오늘은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풀어야겠습니다. 제가 원한 것은 아니지만 저는 오래된 구교 집안에서, 그것도 카지노 가입 쿠폰자의 후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제 어머니는 시아버지가 되실 할아버지 앞에서 천주교 교리 암기 시험(예전엔 성교예규라고 했지요)을 치른 뒤에 결혼 허락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외가에서는 아버지집안이카지노 가입 쿠폰의 후손이라는 말을 듣고,종교 때문에 목숨을 내놓는 '독종'인 집안에는 딸을 시집보낼 수 없다며 극심하게 반대를 했다고 하더군요. 천주교 안에서는 영광스러운 핏줄이지만, 천주교 밖에서 보면 독하디 독한 카지노 가입 쿠폰의 피를 물려받은 집안에 불과한 거지요.


이런 분위기 탓에 저는 성당에 다니며"너희들은 카지노 가입 쿠폰들처럼 카지노 가입 쿠폰할 수 있느냐?"는 신부님의 질문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단 한 번도 "그럼요!물론이죠!"라고 답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평생 예수님만 따르며 살겠노라 하고 수도원에서 도 닦으며 살던 시절에도요. 이렇게 주일마다 강론이랍시고 쓰고 있지만, 지금도 누가 묻는다면 대답은 같습니다. "아니요! 절대로 못 해요. 잡혀가기 전에 도망가거나 잡혀갔더라도 바로 배교할 걸요?"라고요.


'카지노 가입 쿠폰 선조들은 카지노 가입 쿠폰를 할 만큼 강한 카지노 가입 쿠폰을 갖고 있었는데, 너는 도대체 뭐냐?'


이런 질문은 어린 제 마음속 깊은 곳에 두려움과 죄책감으로 남았어요. 죄를 지으면 지옥불에 떨어진다는 협박성 교리와 함께 하느님은 무섭고, 벌을 주시고, 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시는 분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세월이 한참 지나면서 그게 아이에게 얼마나 잘못된 교육이었는지 알게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순간까지 카지노 가입 쿠폰을 잃지 않고 사는 것 자체가 기적이아닐까 싶습니다.


제 아이들은 목하 냉담 중입니다. 아들내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견진성사까지는 이러구러 받았지만 자기가 아쉬울때(수능 전날, 입대 전날 등)만 성당에 갑니다. 성탄절이나 부활절, 또는 부모님 기일 미사에 살살 꼬여 데리고 가면 미사 시간 내내 졸다가 돌아오지요. 딸내미는 첫영성체까지만 겨우 마쳤습니다. '성당엘 도대체 왜 가?'라고 생각하는 듯한데,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던남친과 종교 문제로 다투다 헤어지고 난 뒤로는 더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예수쟁이'라면 학을 뗀 눈치예요.


이 아이들에게 "너희들에게도 카지노 가입 쿠폰자의 피가 흐르니라. 너희도 목숨을 내놓을 수 있겠느냐?"라는 식으로 카지노 가입 쿠폰을 강요하는 것은 택도 없겠죠. 제가 바라는 것은, 제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제가 남긴 이런 글들을 보면서 '엄마는 도대체 왜 이런 글들을 썼을까? 엄마는 왜 성당에 다녔을까?' 하고 스스로 길을 찾을 날이 오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제가 제 삶을, 제 카지노 가입 쿠폰을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할 '믿음의 카지노 가입 쿠폰'일 테니 말입니다.


어린 시절을 돌이키면서, 무섭고 강압적인 하느님이 아니라 무슨 잘못을 해도 용서하시는 하느님, 아무리 부족하고 못난 모습이어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시는 하느님을 먼저 알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합니다. 성경 안에서 알게 되는 하느님도 좋지만,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맞으며, 수줍게 피어나는 꽃 한 송이를 마주하며, 시간이 지나면 바뀌는 계절과 밤하늘을 비추는 별들을 보며 하느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합니다. 성당의 제대나 성체 안에서 만나는 예수님도 좋지만,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하는 모습과 다정하게 품어주는 가족의 사랑 안에서 예수님을 먼저 만났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배교를 했다고 내치거나 내키지 않는 카지노 가입 쿠폰를 강요하는 교회가 아니라, 오죽했으면 배교했을까 하고 그 마음을 알아주는 교회상이 내 안에 자리 잡았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요.


우리 아이들에게는 카지노 가입 쿠폰의 선조가 된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묵직한 숙제를 받아 안는 대축일입니다. 엄마의 삶에서 기쁘게 살다가 간 카지노 가입 쿠폰자 후손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게 사는 것, 그것도 어쩌면 카지노 가입 쿠폰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운 길일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Von der Nachfolge
Da sprach er zu ihnen allen: Wer mir folgen will, der verleugne sich selbst und nehme Tag für Tag sein Kreuz auf sich und folge mir nach. Denn wer sein Leben erhalten will, der wird es verlieren; wer aber sein Leben verliert um meinetwillen, der wird`s erhalten. Denn was nützt er dem Menschen, wenn er die ganze Welt gewinnt, aber daber sich selbst verliert oder zugrunde richtet? Wer sich aber meiner und meiner Worte schämt, dessen wird sich der Menschensohn auch schämen, wenn er kommen wird in seiner Herrlichkeit und in der des Vaters und der heiligen Eng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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