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인영 Feb 12. 2025

프리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역설, <비바 라 비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프리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Frida Kahlo, 1907~1954), <비바 라 비다(혹은 수박, 1954)

프리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죽기 8일 전에 그린 유작 <비바 라 비다이다. 정물화의 구성은 매우 단순하다. 싱싱하고 과즙이 풍부한 수박을 쪼개 속살까지 드러내면서 초록과 빨강이 보색 효과를 낸다. 그중 맨 앞 수박의 속살에 쓰인 글씨가 강렬하다.


‘ViVA LA ViDA’, 그녀의 모국어 스페인어로 해석하면, ‘인생이여 만세’라는 뜻이다.


수박은 그녀의 몸과 인생을 닮았다. 어려서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었던 그녀는 단단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매우 여리고, 상처가 깊었다. 그녀 스스로 고백했듯이 자신의 삶에 발생한 두 번의 대형 사고 때문이었다.


첫 번째 사고는 열여덟 살에 발생한 하굣길 교통사고였다. 타고 있던 버스가 열차에 부딪히면서 쇠 난간이 그녀의 하복부와 척추뼈를 관통했다. 척추 세 군데, 대퇴골과 갈비뼈, 그리고 골반이 부러졌다. 왼쪽 다리엔 열한 군데 골절상을 입었고, 오른쪽 다리는 짓이겨졌다. 왼쪽 어깨가 빠지고 신장과 자궁은 만신창이 되었다. 심한 출혈과 하반신 마비가 뒤따랐다. (대문 그림: 프리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부러진 척추(1954))특히 자궁이 문제였다. 그녀는 죽음을 각오하고 아이를 낳으려 했건만, 결국 사산했다. 그 슬픔은 남성들로선 짐작조차 못한다.


사고 후 합병증이 생겨 인생에서 모두 32번 수술해야 했다. 1953년, 프리다 나이 마흔여섯에 무릎을 절단했다. 그때 그녀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날개가 있는데 왜 두 발이 필요하겠어.”


살기 위해서, 버티기 위해서 해본 소리일 수 있다. 그러나 멕시코인의 전통적인 무한 긍정 태도이기도 하다.


두 번째 대형 사고는 남편이자 멕시코 국민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이었다. 그녀의 어머니 말대로 '코끼리와 비둘기'의 결합이었다. 스무 살 연상에 거구인 그는 프리다의 예술과 혁명에 있어서 스승이자 동지였다. 그러나 디에고의 여성 편력은 남성 입장에서 봐도 용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심했다. 심지어 프리다가 유산으로 누워 있는 동안 그녀의 여동생과 관계를 맺었다.

이때 그린 그림이 <몇 개의 작은 상처들(1935)이다. 실제 칼을 스물두 번이나 휘둘러 한 여인을 죽인 살인범이 판사에게 말했다. "그냥 카지노 게임 사이트 찔렀을 뿐입니다." 프리다는성에 대한 디에고의생각이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내면은온통 피범벅이고, 액자에까지 붉은 피가 튀었다.

마침내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녀는 외로웠다. 그래서 자신이 제일 잘 아는 주제,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하지만 1940년, 디에고의 쉰네 번째 생일에 두 사람은 재결합했다. 왜? 사랑하니까···.


프리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인생은 그야말로 수박 속살과 같은 핏빛 인생이었다. 그러니 이 작품 역시 그녀의 자화상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녀는 그림 속에서 ‘인생이여 만세!’라고 외친다. 역설적이다. 역설, 그것은 사람의 감동을 꼭짓점까지 올려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이탈리아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블랙 코미디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 부자의 이야기다.

수용소에서 아버지 귀도가 아들을 살리려고 꾀를 낸다. 조만간 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해방시켜 주리라 믿고 다섯 살 아들 조슈아와 숨바꼭질을 한다.귀도는 아이에게 "독일군에게 발각되지 않으면, 1,000점을 얻어 상품으로 탱크를 받는다"라고 거짓말했다. 아이는 솔깃했다.

그러나 귀도는 나치에게 들켜 가스실로 끌려간다. 조슈아가 숨어 있는 곳을 지나게 되는데, 그는 아들이 숨은 곳을 향해 경례를 부친다. 마치 게임에서 술래에게 잡혀갈 뿐이라는 듯 너스레를 떨며. 아이가 볼 때 아버지의 익살맞은 제스처와 미소는 힘을 좀 더 내라는 격려처럼 보였다.

조슈아는 실제 상황을 모른 채 머리칼이 보일까 꼭꼭 숨어 게임에만 집중한다. 마침내 살아남은 조슈아는 수용소로 들어오는 미군 전차를 발견하곤, 자신의 전리품이라고 여겨 환호한다. 전쟁 속 불행했던 유대인 가족의 이야기다. 그런데 영화 제목이 ‘인생은 아름다워’이다. 영화를 본 나는 울음이 그치지 않는데···


한편, 영국 출신으로 세계적인 록밴드 콜드플레이가 프리다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다. 2008년 네 번째 정규 음반을 냈는데, 바로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이다.


1938년 트로츠키를 만나러 멕시코에 온 프랑스 초현실주의 창시자 앙드레 브르통이 프리다에게 찬사를 보냈다. 뛰어난 초현실주의 화가라고. 그러나 그녀는 브르통의 평가를 이렇게 일축했다.


“나는 꿈을 그린 적이 없다. 나는 나 자신의 현실을 그렸을 뿐이다.”


프리다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는 3년 후인 1957년 11월 아내를 뒤따라 귀천했다. 대형 벽화를 그리던 그도 죽음을 앞두고 속살이 빨간 <수박(1957)을 그렸다고 한다. 아내에 대한 죄책감이었을까?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그녀의 혼을 달래주기 위한 진혼곡이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