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여덟 살 중년의 여인이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담배를 꼬나물었다. 예쁜 얼굴이 아니다. 육감적이지도 않다. 그렇다고 제대로 차려입지도 않았다. 녹색 줄무늬 파자마에 캐미솔 차림이다. 하지만 당당하다. 붓질 역시 거침이 없다.수잔 무료 카지노 게임의 대표작 <푸른 방이다.
제목은 그림을 둘러싼 커튼과 침대보가 파란색이라 부쳐졌다. 파랑은 이성적, 도전적인 색이다. 중세 초기까지 없거나 무시되다가 11세기말에야 등장했다. 이후성모 마리아의 옷에 사용되면서 신분 상승했다. 마치 거친 삶의 궤적을 그리며 모델에서 화가로 성장한 그녀의 인생과 닮았다.
발라동은 서커스 공연 중 허리를 다친 후 상징주의의 대가 퓌비 드 샤반의 눈에 띄어 모델이 되었다. ‘몽마르트르의 뮤즈’로 성장한 그녀도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딱히 공부한 바 없었던 그녀는 남몰래 연습한 후 샤반에게 그림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샤반은 ‘쓰레기 같은 그림’이라며 비웃었다.
상처 입은 그녀는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모델이 되었다.당시 모델은 정부의 역할도 함께 했던 거친 시절이었다. 발라동이 열여덟 살에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녀가 아이 아버지의 신원을 밝히지 않은 가운데, 르누아르의 자식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르누아르의 모델에서 쫓겨났다.
그무렵 무료 카지노 게임은 툴루즈 로트레크를 만났다. 그는 툴루즈 백작의 아들이지만, 부모의 근친결혼으로 인해 키가 152센티미터 난쟁이였다. 동병상련이랄까? 로트레크는 진심으로 그녀의 능력을 알아보고 격려해 주었다. 그러자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이 싹텄다. 무료 카지노 게임은 자살소동까지 벌여가며 2년 동안 그에게 구혼했다. 결혼에 이르지 못했지만, 로트레크가 추천해 준 에드가 드가로 인해 그녀는 정식 화가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작품 속 무료 카지노 게임이 취한 자세가 어쩐지 낯익다. 미술사를 관통했던 모티브, 비너스에게서 발견되는 모습이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옷을 벗은 마야, 앵그르의 <오달리스크, 마네의 <올랭피아에서 차용했던 자세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시선을 정면에 두지않음으로써 주변의 이목을 의식하지 않는 태도였다.
침대 한구석에 책 두 권이 놓였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당시 책이란 남성 전유물이었다. 여성은 책, 특히 소설이 던지는 유혹을 통제할 자제력이 없다고 여겼다. 여성의 지적 능력을 얕잡아 보는 태도로, 책 읽는 여인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녀가 보란 듯이 읽던 책을 발 밑에 놓았다.배포가 대단하다.
작품 완성 시기 또한 눈 여겨 볼만하다. 그녀의 사생아였던 모리스 위트롤로의 친구인 스물한 살 연하남 앙드레 우터와 결혼 생활을 할 때였다. 그녀는 6개월간 동거했던 작곡가 에릭 사티의 청혼을 거절하고, 돈 많은 주식거래인 폴 모리스와 결혼했다. 폴은 그녀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그러나 우터와의 바람은 감내하기 어려웠다. 결국 두 사람은 이혼했고, 이듬해 무료 카지노 게임이 우터와 결혼함으로써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거나 말거나 발라동은 우터를 누드모델로 여러 작품을 선보였다. 당시 여성 화가는 남성 누드모델을 구할 수가 없을 때였다. 화가에게 누드란 약 600개의 근육과 200개의 뼈로 이루어진 인간의 몸에 대한 해부학적 탐구다. 따라서 힘줄을 포함한 해부학적 접근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누드에 관한 외부관찰과 드로잉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드뿐만 아니라 사람의 동작과 몸에 걸친 의상 표현에서 한계가 노출된다. 인상주의 여성화가 베르트 모리조나 미국 출신 메리 카사트조차 이 차별성으로 인해고심했다.
그러나 발라동은 우터의 벗은 몸을 모델로 여성 화가로서 금기를 깨는데 거침이 없었다. <아담과 이브(1909)가 대표적이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는 데 있어서아담의 모호한 태도와 달리 이브의 표정에선 죄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 주체적이다. 남성들의 허세를 비웃는 풍자적 작품이다. (대문그림:수잔 발라동의 <투망(1914), <아담과 이브를 넣으려 했는데, 막상 남녀의 주요 부분만 잘려 강조되었다. 민망했다. 그래서 대체했으니 궁금하신 분은 직접 검색해 보시라)
그녀의 과거는 웬만한 남자도 위축될 정도로 처참했다. 다섯 살 때부터 생업에 뛰어들어 청소부, 양재사, 서커스 단원, 모델···등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었다. 따라서 그녀만이 강고했던 당시 남성 중심 사회를 향해 노골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아무튼 사생활에 대한 선입견을 제거한다면, 그녀의 작품 세계가 생각보다 훨씬 깊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아담과 이브도 페미니즘을 기반한 현대적 재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마네의 <올랭피아와 견주면, 비약일까? 여기서 불쑥 한 생각이 떠오른다. 무료 카지노 게임이 오늘날 윤리라는 잣대가 엄격한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면, 과연 화가로서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을까?
정기적으로 작품을 함께 전시해 오던 무료 카지노 게임과 우터는 그녀 나이 일흔이 다가올 무렵 이혼했다. 하지만 4년 뒤 무료 카지노 게임의 건강이 악화하여 사망할 때까지 두 사람의 우정은 이어졌다고 한다. 그녀는 꽃을 그리던 중 뇌졸중을 일으켜 사망했다. 담대한 그녀가 화가로서 맞이한자신의 최후로서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으리라.
외롭게 태어난 무료 카지노 게임 주검 앞에 피카소를 비롯하여 앙드레 드랭, 조르주 브라크 등 동료 화가들이 많이 모였다. 그녀가 "예술은, 우리가 증오하는 삶을 영원하게 한다"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를 입증하는 죽음이었다. 과거 조금 힘들었다고 엄살을 피워 왔던 내 입장에선 무료 카지노 게임 성취가 존경스럽다.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 인생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