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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야 Mar 31. 2025

타는 마음

쎄한 느낌이 뒤통수를 칠 때

평화로운 오후였다. 가족들은 등교나 출근으로 모두 외출, 나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딸의 보물창고에서 마가레뜨 과자를하나꺼내 먹었다.맛있어서 2개를 더 뜯었다. 달달한 디저트와 고요한 휴식이 있는 집은 최적의 사무 공간이었다.


30분쯤 쉬면서 책을 읽기로 했다. 예전에 봤던책을 다시 읽는 데 재미가 들린 참이었다. 같은책이라도 몇 년 지나 다시 보면,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대목이 있었다. 번뜩이는 문장을 만나면 내밭에도 옮겨 심고 싶었다. 문장을 캐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 데 잠깐만, 흠.. 흠... 이게 무슨 냄새야?


앞집 할머니가 평소 청국장을 자주 끓이시는데, 특히 배고플 때 그 냄새를 맡으면 침샘이 폭발했다. 후각이 민감한 남편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앞집 저녁 메뉴를 맞히는 비상한 능력을 발휘하곤했다. 냄새를깊숙이 들이마시며 던지는 농담에 진심이 묻어났다.

"할머니들 손맛이라는게 있잖아, 하루만 반찬 바꿔먹자고 할까?"


오늘도시작은청국장냄새였지만이내'굽는 냄새'가 더해졌다. 진원지를 찾아 코를 킁킁거렸다. 냄새는 앞뒤좌우에서 동시다발로 감지되었다. 혹시 아파트 상가? 새로 고깃집이 생긴 이후단지 내에 종종 고기 냄새가 떠다녔다. 데워진 불판 위에선홍빛 고기를올리는 장면을 상상만 해도위장이시동을 걸카지노 게임, 꼬르륵.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간혹 그런 순간들이 있다. 쎄한 느낌이 뒤통수를 후려칠 때, 그런 촉은 신통하게도 들어맞는다. 이번에도역시나였다. 보던책을집어던지다시피 하고 후다닥 베란다로 뛰어갔다. 연기가 자욱하고 탄내가 진동했다. 가스레인지 위에선 까맣게 그을린 냄비가 말라가고 있었다. 가스불이 알아서 꺼져준 걸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하나. 코를틀어막고창문을 활짝열었다.


좁은 부엌과 조리시 발생하는 냄새나 연기를 고려해 가스레인지를 베란다에 설치해두고 있었다. 덕분에냄새도 덜 나고 주방 공간이 넓어졌다. 그러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Out of sight, out of mind.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에선아예 지워지고 말았다.




냄비가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3중 바닥에 통주물 방식이라 이음새가 없다던, 열전도성이 뛰어나다는 말에 혹해서 샀던, 얼굴이 비칠정도로광이 나던 은색 냄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몸체가 시커멓게 그을려이전의 때깔을전혀찾아볼 수었다. 잔뜩 달궈진 상태라만져볼 수도 없었다. 열기부터 식혀야 했다. 뚜껑을 닫고 찬물 샤워를 시켰다.취이이이이이익~~~ 뿌연 연기와 함께 증기기관차가 우리 집 싱크대로 달려왔다.


냄새도 문제였다. 너였구나, 아까부터 나의 심기를 건드린냄새의 정체가. 그런 줄도 모르고 앞집 청국장이니상가 고깃집이니 들먹거렸다. 어쩐지 시작점을 종잡을 수 없더라니. 등잔 밑이 암흑이었다.


앞뒤 베란다까지 창이란 창은 다 열었지만 탄내를 기엔 역부족이었다. 구원투수, 양초가 등판할 차례였다. 간절한 마음으로불을 밝혔다. 공기의 흐름이 교차하는 중심부, 식탁 위에 초를 올려놨다.




탄내가 빠지기를 기다리면서 조심스레 냄비 뚜껑을 열었다. 매캐한 어둠의 빛깔이 드러났다. 잡곡쌀에 흑미가 섞여있다 보니 어느 것이 탄 것이고, 어느 것이 검은 쌀인지, 구분이 안 갔다. (검은 콩도 있었다.)


남편이 아픈 뒤로 흰 쌀밥에서잡곡밥으로갈아탔다. 한데꺼끌꺼끌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아 궁리 끝에미리 한번 끓이는 방법을 택했다.그 상태로 뜸을 들인 후, 밥솥에넣고 취사를 누르면 완성이었다. 속도 편하고 식감도 훨씬 부드러웠다. 그런데 오늘그 잡곡 냄비를 홀라당 태워먹은 것이다.


조금이라도 살려볼 수 있을까 해서 숟가락으로 살짝 떠보았다. 입에 넣기도 전에 탄내가 훅 치고 들어왔다. 재고의 여지가 없었다. 무조건 퇴출. 남편에게 탄 음식은 절대 금지였다. 그동안 고기를 먹어도 직화구이나 숯불구이보다는 프라이팬조리방식을 고수했다. 아니면 수육을 해 먹거나. 생선을구워타지않게정성들여뒤집기를반복했건만 다른 것도 아니고 밥을 태우다니.


더구나시골에서 자란 나에게 밥을 버린다는 건, 석고대죄가 마땅한 대역죄에속했다. 농부가쌀 한 톨얻으려면 수백 번 허리를 숙여야 한다고, 밥 버리면 벌 받는다고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쌀 한 톨의 소중함이 무의식에도 새겨졌는지, 씻다가톨만떨어져도조바심이 일었다. 수채구멍으로빠지기 전에 주워담기바빴다.


그러나 지금은 방법이 없었다. 눈 딱 감고 탄내 나는 잡곡 한 냄비를 음식물 쓰레기통에 탈탈 쏟아부었다. 이게 몇 인분이야. 여전히 굶주린 이들이 많다는데... 버리면서도스러웠다.


이제 냄비 바닥이 드러났다. 끓는 과정에서 물이 졸아들고 냄비가 타들어가면서 쌀알이 눌어붙었다. 수세미로 힘주어 닦아도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이 지경이 되도록 대체 뭘 하고 있었냐는 질책이귓전에 윙윙 거렸다. 하는 수 없이 수돗물을 채웠다. 씻으려면 냄비를 물에 불려야 했다.


카지노 게임처참해진 냄비


그리고 찾아온 속죄의 시간. 나는 왜 이럴까를 삼만 번쯤 되뇌었다. 첫 번째 원인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지 못하는 뇌용량 부족 탓이었다. 두 번째, 건망증도 심각했다. 돌아서면 잊어버렸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귀차니즘.


베란다에 가스레인지를 처음 설치할 때30분이 지나면 자동으로 가스가 잠기는 안전장치를 따로 달았다. 나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도 없었다. 30분이면 오늘처럼 냄비 하나 태워먹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가스불을 켜고 알람을 설정했으면 막을 수 있었을것이다. 하지만'대충하지 뭐, 설마'하는 안일함과 귀차니즘이 이런 '사태'를 불러왔다. 그나마 이번엔 냄비 하나 태우고 말았지만 잘못해서 불이라도 났으면 어쩔 뻔했나. 간이 서늘해졌다.


불현듯 최근 뉴스에서 본 산불 장면이 떠올랐다. 잿더미로 변해버린 집터에서 망연자실해하던 이재민의 표정도 잊히지 않는다. 냄비만 태워먹어도 눈앞이 깜깜한데 그분들 심정은 오죽할까. 심지어 아직도 완전히 끄지 못한 상태라는데, 원인을 따져보면 작은 불씨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안일함이 깔려있지 않았을까. 모든 재난, 재해 사고 현장에 뿌리깊은 '설마'가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생각이 멀리 갔다.


그나저나 남편이 오기 전에 저 냄비를 원상복구 시키고 집안에 냄새도 제거해야 한다. 둘다 해결하지 못하면 완전범죄는 물 건너간다. 생각하니 속이 탔다. 물 한 잔을 벌컥벌컥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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