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이 휘청일 때
"언제 이리 컸지?"
그러고 보니 웃자란 머리가 산발이었다. 생기 잃은 피부는 누르스름하게말라가고 있었다. 길어난 발이 화분을 뚫고 나올 기세였다. 우리 집 베란다 식물들 얘기다.
한동안 신경을 못썼더니 줄기가 축축 늘어져 있었다. 살려야지. 카지노 게임 팔을 걷어붙였다. 베란다바닥에 신문을 깔고, 창고 어딘가에 처박아놨던흙과 자갈도 꺼내왔다.
여기까지만 했는데도 먼지가 폴폴날았다. 손으로 먼지를 휘저으며 화분 하나를 거꾸로 뒤집었다.가운데 줄기를 살살 잡아당기면서 뿌리를 꺼내본다. 칡덩굴인가 싶었다. 좁은 화분 안에서 더 이상 뻗어갈 곳을 찾지 못하고 구불구불 떡진 모양이라니.
"진작에 분가시켜 줬어야 하는데 미안하다, 미안해."
카지노 게임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조심스레 흙을 털어냈다. 뿌리를분리해서새로운 화분에 옮겨 심었다. 화분 개수가 점점 늘어났고 그의 이마엔 땀이 배어났다.
대부분은 이내 자리를 잡았지만 어린것들은 힘없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뭘 받쳐줘야겠는데?" 배달음식에따라온 나무젓가락으로 기둥을 세웠다. 노끈을 묶어줬더니 휘청거리던 줄기가 곧게 섰다. 물샤워를 마친 초록 이파리들이 생기를 찾은 듯 보이는 건, 기분 탓인가.
쪼그려 앉아 흙을 만지던 카지노 게임도 일어섰다. '아구구'하면서 허리를 뒤로 젖혔다. 장갑을 벗고 간식통에서 아몬드를 한 주먹 꺼냈다. 그중 껍질이 온전하게 붙어있는 것들만 골라서 내게 준다.
"당신은 예쁜 거 먹어야지."
카지노 게임은 그런 사람이다. 어린 화분이 흔들리지 않고 뿌리내릴 수 있도록 받쳐주는 지지대 같은 사람. 가진 것 중 언제나 가장 좋은 걸 내게 건네는 사람.
그가 암판정을 받은 이후 우리는 많이 휘청거렸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거센 폭풍우에 속수무책 휩쓸렸다. 눈앞이 캄캄했다.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지 아무런 계획도, 계산도 해볼 수가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받는 치료 이외 식이요법이든 운동이든 뭐든지 같이 하려고 애썼다.
그런 과정에서 카지노 게임을 눈여겨보게 됐다. 전에 몰랐던, 새로운 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단정하고 깨끗하고 정돈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카지노 게임 자고 일어난 자리는 항상 이불이 말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설거지를 할 때도 그릇을 재질이나 용도별로 구분했다. 김치를 담아도 각이 딱딱 맞았고, 수육을 썰어도 오와 열이 반듯했다.
반면에 나는? 입안에 들어가면 다 똑같지, 뿌리 깊은 '대충주의자'였다. 그래서 남편이 동그랑땡을 구울 때 옆에서 보고 있으면 속이 화닥거렸다. 나 같으면 한 봉지를 프라이팬에 우르르 쏟아붓고 빨리빨리 굽고 치웠을 것이다. 숟가락 하나면 한꺼번에 굽고 뒤집고 담고 끝. 반면 카지노 게임은 젓가락으로 일일이 눌러보고 골고루 익히면서 용기에 담을 때도 줄을 맞췄다. 아하하... 정말 예쁘네.
사실 성격이 급하기론 카지노 게임 나보다 100배는 더 급한데, 부엌에서 요리할 때만큼은 세상 느긋한 사람이 되었다. 카지노 게임은 그런 행위 자체를 즐기는 듯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결과물을 마주했을 때, 만족감이 매우 높아 보였다.
뼛속까지 '정돈주의자'인 카지노 게임 눈에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 내가 느끼는 답답함과 비슷한무게로 그 역시 속터짐을 참고 살아왔을 것이다.
그제야 알았다. 카지노 게임 얼마나 세심한 사람인지. 내가 그를 얼마나 단편적으로, 납작하게 인식해 왔는지. 그걸 무려 20년 만에 깨닫다니... 나도 참 대단하지...
이런 차이를 알고 난 뒤에는 그가 싱크대에서 상추를 한 장씩 씻어도 마음이 급해지지 않는다. 계란말이를 그릇에 담을 때 마구잡이로 섞지 않는다. 칼각까진 아니더라도 줄을 맞춰서 예쁘게 놓으려고 노력한다. 식탁에서그가 웃으면 나도 기분이 좋으니까.
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그의 눈이 항상 내 주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설거지하고 나서 냄비와 밥그릇을 한 자리에 마구 섞어놓으면 그가 따로따로 구분해서 수납했다. 물기 묻은 그대로,너저분하게널려있는 상추도 탈탈 털어 마치 지폐를 간추리듯이 한 장씩 겹쳐서 식탁에 놓았다. 아침에둘둘 뭉쳐둔 이불을 보기 좋게 정리하다든지, 청소기가 놓치고 지나간 창틀의 먼지를 닦아내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그동안 식구들 뒤치다꺼리며 이것저것 내가 신경 쓸 게 너무 많다고 퉁퉁거렸는데,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나 혼자 동동거린 건 아니었음을. 암이라는 낭떠러지앞에서도일상의 수레바퀴가 찌그러지지 않고 계속 굴러갈 수 있었던 건 대충주의자와 정돈주의자가 전력을 다한결과물이었다.
카지노 게임의 암투병은 우리가 서로를 집중해서 바라보게 해 주었다. 전에 몰랐던 그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되고, 덕분에 나 자신에 대해서도 다시알게 되었다.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암에걸리지 않았다면... 말해 무엇할까, 더 바랄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힘든 시간을 거치면서 경험하는 감정들은 귀하고소중하다. 우리생활이 이전과는분명 달라졌지만 모든 게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암은불운이지, 불행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구름에 가려졌어도 해가 있음을 의심하지 않듯이 우리 가족의 행복도 나날이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음을 믿는다. 타인의 아픔을 헤아리는 마음 그릇도조금은더 넓어지기를바라며.
이 장기 레이스에서 앞으로 어떤 과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나아갈작정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함께 일어설 것이다. 우린 서로를 지탱해 주는 삶의 지지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