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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 or review Jan 10. 2025

오동카지노 게임가 되어버린 그에게

2025년 1월 둘째 주

- 너 어렸을 땐 하루종일 동요를 불렀어.

- 내가?

- 동요 '카지노 게임야'를 입에 달고 살았어. 기억 안 나? "카지노 게임야~ 카지노 게임야~ 서서 자는 카지노 게임야~" 그 뒷 가사는 모르나 봐. 그것만 계~속 불렀어.

- 왜 그랬대? 카지노 게임가 좋았나?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제가 어렸을 땐, 할머니와 동네 뒷산에 자주 올랐습니다. 산 중턱에 낡아빠진 운동기구들까지 세세하게 기억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많이 올랐나 봅니다. 아직도 그 풍경이 눈에 선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눈에 카지노 게임밖에 없었기에 '카지노 게임야'를 불렀을 수밖에요.


그리고 약 20여 년이 지나, 오늘 '카지노 게임'를 다시 생각합니다.



요거 오동카지노 게임네


'오동카지노 게임 아저씨'를 아시나요. 뭐만 하면 다 '오동카지노 게임'로 치부해 버리는 그 아저씨요.


여기서 반전은 '오동카지노 게임가 진짜 널리 쓰인다'는 겁니다.


1천여 종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카지노 게임 중에 이보다 더 큰 잎사귀를 갖는 카지노 게임는 없다. 오동카지노 게임는 15~20년이면 쓸만한 재목이 된다. 짧게는 40~50년, 길게는 100년 가까이나 되어야 겨우 ‘카지노 게임구실’을 하는 보통의 다른 카지노 게임들이 눈 흘기고 질투할 만하다. 그야말로 ‘슈퍼 트리’이다. 그래서 자람의 속도에 비하여 훨씬 단단한 카지노 게임가 된다. 습기를 빨아들이는 성질도 적고 잘 썩지 않으며 불에 잘 타지 않는 성질까지 있다. 당연히 쓰임새가 넓어서 생활용품에 오동카지노 게임가 쓰이지 않은 곳이 없다. 악기를 만들 때 공명판의 기능은 다른 카지노 게임들은 감히 널 볼 수도 없을 만큼 독보적이다. 가야금, 거문고, 비파 등 우리의 전통악기는 오동카지노 게임라야만 만들 수 있다. 조선시대 고급관리들이 오동카지노 게임를 탐내어 베어버렸다가 그 카지노 게임 한 그루 때문에 가문의 영광인 벼슬마저 잃어버리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산림청 <오동카지노 게임 설명 中


오동카지노 게임는 국가기관 산림청이 공인한 '슈퍼트리'입니다. 유용성 측면에선 (말마따나) '독보적'입니다. 고작 오동카지노 게임 하나 때문에 가문의 영광을 내팽개치는 사건도 있었다니 얼추 짐작은 갑니다. 고작 카지노 게임 하나에 뭐 이리 호들갑이냐며 '카지노 게임'라실도 있겠지만요.


카지노 게임도 사람처럼 4~50세는 되어야 성과를 뽐낸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동카지노 게임는 그 기간이 현격히 짧죠. 그래서 '오동카지노 게임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은 실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진짜로 오동카지노 게임'가 되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영화 <국화꽃 향기의 명대사처럼, 제 아무리 오동카지노 게임라 한들 움직이지 못합니다. 답답할 겁니다.


카지노 게임는 한 번 자리를 정하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아. 차라리 말라죽을지라도 말이야. 나도 그런 카지노 게임가 되고 싶어. 이 사랑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도.


카지노 게임는 분명 유용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뿌리내린 그 자리를 평생토록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낭만적이면서도 슬프죠.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중 영혜의 대사("나는 이제 동물이 아니야 언니.")는 그래서 충격적입니다. 기꺼이 '동물이기를 포기'하고 식물을 자처했기 때문이죠.


사자가 작은 임팔라를 잡기 위해 시속 7~80km로 전력투구를 다 하지만 사냥 성공률은 20%밖에 안 된다. 살기 위해 사자로부터 달아나는 동물의 필사적인 노력이 백수의 왕인 사자를 형편없는 사냥꾼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사자는 이를 잘 알기에 작은 먹잇감을 사냥할 때도 전력투구를 다하는 것이다. 사냥에 성공하지 못하면 사자를 기다리는 건 배고픔과 죽음뿐이다.

데이비드 S. 키더,노아 D. 오펜하임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 수업 365


움직이지 않는 식물을 자처한다는 건 '배고픔과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죽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더 처연하죠.


악마는 항상 우리에게 선택권을 준다. 파우스트가 무한한 즐거움과 지식을 얻으려고 기꺼이 자기 영혼을 바친 일이나 거장 로버트 존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주 실력을 위해 자기 영혼을 교환한 것 등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 속에는 자신의 자유 의지로 거래하는 이들의 사례가 가득하다.

로라 도즈워스 <다크 넛지


좋게 말하면 '죽기 살기를 각오하고', 나쁘게 말하면 '눈에 뵈는 것 없다'라고 해야 할까요. <다크 넛지에서 말하는 대로, 순전한 자유의지로 카지노 게임가 되기로 작정하는 '사례가 가득'하죠.



한남동 카지노 게임야


지난주부터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은 '자유의지로 결집한 사람들'로 붐빕니다. 기자 시험 실무 평가를 위해 '한남동 집회 시위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죽기 살기를 각오한 사람들처럼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평화를 바란다면 전쟁을 이해하라


1967년 군인이자 군사역사가 리델 하트가 한 말입니다.


이 말을 생각하며 용감히 현장에 가닿았습니다. '누구를 죽여야 한다' 등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제가 느낀 감정은 '아무것도 모르겠다'였습니다. 집회 시위에 모인 수천 명, 실시간 방송 중인 유튜버, 용산구청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 90대 이상의 경찰 버스까지. 실제로 육교가 흔들렸을 정도로 사람들이 넘쳤습니다.


- (경찰) 여기 주민이세요?

- 아니요.

- (경찰) 시위 오셨어요?

- 네.

- (경찰) 민노총? 태극기?

-... 둘 다요.

- (경찰)...??


코치들은 '자신감 있게 던지라'는 말을 하지만 정작 선수들은 그 뜻을 잘 모른다. 자신감 있게 던진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라’는 것이다. 한 경기당 대략 300번의 공이 오간다. 그 속에서 언제나 의외의 상황이 생긴다. 승부는 그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

박찬호, 이태일 전 NC다이노스 사장 <B2: 베터 앤 베터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무엇 하나 자신 있는 문장을 써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써야만 하는 내용을 써냈습니다. 그야말로 '할 수 있는 걸 했'습니다.


한동안 카지노 게임처럼 틀어박혀 멍하니 시위 현장을 바라봤습니다. (제 딴엔) '경도된', '격앙된', '흥분한', '치열한' 등의 수식어가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보다 더한 무언가를 제 머릿속 단어로 풀어낼 수 없었습니다.


세계는, 인류는, 문명은 순식간에 백 년씩 거꾸로 돌아가기도 하고 그럴 때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견뎌야만 한다.

정세랑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그래서 다만 견뎠습니다. 그 자리에서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그 말들을 견뎌냈습니다. 카지노 게임처럼 그 자리에 서서 꿋꿋하게요. 헛구역질이 나올 때까지요.



오동카지노 게임, 박정훈


다시 등장한박정훈 대령(해병대 수사단장)도 견뎌냈습니다.어제(9일) 군사법원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지난해 6월 박정훈 대령은 국회 청문회에 나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해병대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입니다.

오늘 저는 무거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너의 죽음에 억울함이 남지 않도록 하겠다. 책임 있는 자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

이 말은 제가 고 채수근 시신 앞에서 다짐하고 약속한 말입니다.

최근 채수근 상병 어머니의 편지를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누가 내 아들을 구명조끼 없이 물에 들어가게 하였는가” “누가 그 세찬 물살에 장화를 신게 하였는가” 편지 속 어머니의 질문은 작년 7월 28일 제가 남원에서 유가족 대상 수사결과를 설명하였을 때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1년 가까이 지났는데 아직도 어머니는 똑같은 질문을 하고 계시고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현실에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병사의 죽음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80 평생을 살아보니 힘 있는 놈들 다 빠져나가고 힘없는 놈들만 처벌받더라” 이 말씀은 수근이 할아버지가 수사결과 설명을 하는 저에게 하신 말씀이십니다. 제가 할아버지께 이런 약속을 드렸습니다. “비록 제가 수사종결권은 없지만 제 손을 떠나기 전까지 오늘 설명드린 대로 이뤄지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도 하나밖에 없는 장손자를 잃고 억장이 무너진다는 할아버지의 눈빛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을 본 한국일보 김희원 기자는 자신의 책 <오염된 정의에 이렇게 썼습니다.


이제 채수근 사망 사건은 군이 나라를 지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지킬 만한 나라인가를 가늠하는 잣대다. 군사법원이 박정훈의 정의를 찾아줄 것인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박정훈의 정직이 항명으로 취급돼 처벌받는다면, 군사법원법을 무력화한 수사 외압이 덮이고 만다면, 또 다른 채수근을 막지 못하는 사회로 남는다면, 이 나라가 지킬 가치가 있겠는가.


동물이지만 식물처럼, 카지노 게임처럼 꿋꿋하게 서있기를 자처한 사람에게 권력이 무자비하게 휘두른 칼이 드디어 잘못됐다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 나라의 '보호 가치'를 위해 말입니다.


카지노 게임처럼 서 있으면 사람들은 바보인 줄 압니다. '옳다거니, 가만히 있구나, 때려도 움직이지 않는구나, 그래 니까짓 게 어딜.'


하지만 그렇게 맞아본 사람은 압니다. 가만히 있는 멍청해서가 아니라 그게 옳기 때문이라는 걸요.죽을 각오로 '스스로 멈춰 있는 카지노 게임'가 되기를 선택했다는 것을요.


제가 어렸을 적 불렀다는 동요 <카지노 게임야의 뒷 가사는 이렇습니다.

카지노 게임야 카지노 게임야 서서 자는 카지노 게임야
카지노 게임야 카지노 게임야 다리 아프지
카지노 게임야 카지노 게임야 누워서 자거라


뒷 가사를 들으니 이제야 그 음이 기억나는 것 같습니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부당한 명령에는 군인이 따르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박정훈 대령의 사례가 이제 널리 쓰이겠습니다. 저 멀리 있는 한남동 경호처에게도요.


20년이 지난 뒤에야 '기억의 저 편'에서 저를 물고 놓지 않는 동요를 박정훈 대령에게 전달합니다.


아주 많은 것을 잊으며 살아가는 중에도 고집스럽게 남아있는 기억이 있다. 왜 남아 있는지 나조차 알 수 없는 기억들, 나의 선택으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기억이 나를 선택하여 남아 있는 것만 같다.

장정희 단편소설 <홈 스위트 홈



오동카지노 게임인 박정훈 대령이 이제는 부디 편히 누우실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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