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다섯째 주
가끔 이 책을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이런 말을 덧붙이면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에요. 꼭 한 번 읽어보세요"
누군가 내게 이유를 물은 적 있다. "이 책이 왜 좋아요?"
"저 같아서요."
선물을 뜯지않은 사람은 영원토록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반면책을 다 읽은 사람은 그 의미를 이해한다. "맞네. 너답다."
드디어 <인생카지노 게임를 소개할 때가 왔다.
이 책의 시작은 이렇다.
두 천사가 있었다. 점점 지혜로운 자가 줄어들고, 어리석은 자가 나날이 늘어가는 세상.이 세상이걱정된 신은 두 천사를 불러 각자 미션을 전달한다. "넌 지상에 내려가 지혜로운 영혼들을 모두 모아 마을과 도시들에 골고루 흩뿌려라.""그리고 넌 지상에 있는 어리석은 영혼들을 전부 자루에 담아 데려와라. 내가 지혜롭게 교육을 시키고 내려보내야겠다!"
첫 번째 천사는 임무는 무난한 성공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천사는 골머리를 썩였다.어리석은 영혼이 너무 많고, 자루에 넣자 몹시 저항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천사가 자루를 들고 산 정상을넘는 순간,소나무의 뾰족한 솔잎에 찔려 자루 밑이 찢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자루 안에 있던 영혼들이 일제히 쏟아져 산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세상의 모든 바보들이 한 장소에 모여 살게 됐다.
헤움.천사의 실수로 세상의 바보들이 한 마을에 모인 곳. 이곳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이야기다.
1. 하늘에서 내리는 나무
헤움 주민들은 마을에 가뭄이 들자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해야 가뭄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모두가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외친다.
"우리 주위엔 나무가 많습니다. 이제부터 나무를 '비'라고 부릅시다! 그럼 가뭄이 해결됩니다!"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 많은 비가 있으니 가뭄이 해소되었다고 마음을 놓는다.
2. 대신 걱정해 주는 사람
헤움 주민들은 스스로 너무 많은 걱정들을 떠안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걸 하려고 해도 걱정, 저걸 하려고 해도 걱정, 온통 걱정 투성이었다.
하지만 걱정이 없으면 '좋은 미래'도 없으니 걱정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 마을 회의에서 '걱정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안건으로 올라온다.
"우리는 너무 많은 걱정을 가지고 삽니다. 그러니 우리들의걱정을 대신 떠안을 '걱정 전문가'를 고용합시다!"
"좋습니다! 그런데 걱정 전문가의 연봉은 어떻게 책정할까요?"
"그것 참 걱정이군요!"
류시화 작가는 이런 말을 책에 담았다.
나는 때때로 이런 카지노 게임를 쓰고 싶었다.
내가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의 엉뚱한 카지노 게임에 다가가기 위해
서울대학교 팩트체크센터에서 인턴을 했었다. 일을 하면서 여러 고민이 있었다.
예컨대 이런 것이었다.
세상에 카지노 게임 있는가.
사실과 카지노 게임의 차이는 무엇인가.
카지노 게임은 공평한가.
이런 질문들에 명확한 해답을 얻지 못한 채 인턴은 끝났다.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사람들은'카지노 게임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사실을 기반으로, 카지노 게임에 접근하여, 보고 들은 것을 널리퍼트리는 사람이다. 철저한 '지략가'이자 '전달자'여야 한다.
즉, 사실 너머의 카지노 게임이 멀쩡하게 존재하며, 그 카지노 게임에 접근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카지노 게임을 고스란히 옮겨 박물관에 전시하듯 모두가 구경/향유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남는 질문은 하나다. '어떻게 카지노 게임에 접근할 수 있는가'다.
일반적으로 배우는 저널리즘의 원칙은 '다수의 사실을 조립하여, 카지노 게임이라는 퍼즐을 맞추라'는 것이다. 이때, 카지노 게임의 전제는 사실이다. 퍼즐 조각인 '사실'이 있어야 카지노 게임에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방식은 이와 전혀 다르다. 사실 따윈 없다. 완벽한 허구들의 투성이다. 그럼에도 카지노 게임에 접근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엉뚱한 카지노 게임를 통해 말이다.
그러므로 대단히 비논리적이다. 앞뒤가 안 맞는 말 투성이다. 어떤 이들에겐 "이딴 게 무슨.."이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카지노 게임를 읽는 건, 어느 순간 번뜩이는 깨달음 때문이다. 'A-B-C-D'이므로 E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이 아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L-I-K-? 일 때, ?가 E라는 것을 번뜩이며 깨닫게 되는 그 찰나의 순간을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엉뚱하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이다. '엉뚱한 카지노 게임'은 '동그란 세모' 같은게슈탈트 붕괴 현상이 아니다. 역설도 아니다. 분명한 카지노 게임이다. 포장지만 색다를 뿐이다.
유대인들은 이를 교육의 방식으로서 활용했다. <탈무드는 이러한 번뜩임을 줄 수 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책이었고, <인생카지노 게임는 그 <탈무드와 유사한 방식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어느 순간 '내 모습'이, '우리 사회'가 겹쳐 보인다. '나무'를 '비'라며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본다. '걱정 대신맨'처럼 쓸데없는 걱정만 늘어놓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그리고 이 책의 진가를 깨닫게 된다. 이 책은 그저 시작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내 카지노 게임도 이와 같기를. 이 책을 읽은 이들이 웃다가 번뜩이는 깨달음을 얻길.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번뜩이는 깨달음으로 호응해 주시길 바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려치기를 좀 하자면) '탈무드'급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뜬금없지만, 이번 설 연휴 때 '강식당' 전 회차를돌려보다가, '박보검급 게스트'를 말하는 강호동이 떠올랐다.
제목 : <인생카지노 게임
저자 : 류시화
그림 : 블라디미르 루바로프
출판 : 연금술사
발행 : 2018.07.30.
가격 : 14,4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