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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씬디북클럽 Feb 09. 2025

마흔의 카지노 게임 마주하기

#1 시작 + 2025년 2월 첫째 주



2025년에도

세 권의 다이어리를 쓰고 있다.


버건디 색상의 모닝 레시피 다이어리에는 매일 아침 긍정 확언과 그날의 To-do 리스트를 적는다. 내 사랑 연분홍빛 스타벅스 다이어리에는 독서 모임의 기록이나 좋았던 문장을 필사한다. 화려한 꽃무늬가 가득한 5년 다이어리에는 2023년부터의 짧은 단상이나 감사 일기를 담겨 있다.


다이어리 한 권을 더 쓰기로 했다.


카지노 게임과 가슴이 분리되어 뻐렁치던 한 주를 보내고 나니 녹초가 되어 버렸다. 세 권의 다이어리에 담을 수 없는 감정들이 일렁였다. 누구에게 말할 수 없는,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쌓였다. 쌓일 대로 쌓이다가 예고 없이 '펑!'라고 터질까 봐 조마조마했다. 나만의 방식으로 어루만져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작년까지 SNS에 월말 결산을 했었는데 깜빡 놓치고 보니 어느새 2월중반으로흘러들었다. 지난달은커녕 어제 뭐 했는지, 오전에는 뭘 먹었는지도 수시로 깜빡한다. 월 단위 결산은 너무 간극이 큰가. 주 단위로 좀 더 쪼개 보기로 했다.

이제 빼도 박도 못 하게 카지노 게임 보다는 쉰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갱년기를 '갱신기'로 부르자는 신박한 의견에 적극 동의하지만, 아직 나를 갱년기로 정의하고 싶지는 않았다.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루고 싶은 숙제처럼, 진작에 잡혔지만 갑자기 취소되면 아쉬움보다는 반가움이 앞서는 약속처럼.



일곱 개단어로 주간 일기를 쓴다.

흔들리는 마흔의 카지노 게임쓴다.

일렁이는 나의 사십대를 기록하며기억하려쓴다.





카지노 게임1) 걸으니 다정해져요

한라산 등반 계획이 몇 주 앞으로 다가왔으니, 특훈을 해야 한다느니, 등산력을 높여야 한다느니, 몇 시까지 무슨 대피소에 도착해야 한다느니.청소년 수련원의 빨간 모자를 깊게 눌러쓴 교관 같은 그의 말들에 소리를 빽 지르고 혼자 나왔다. 한파를 앞둔 밤공기는 매서웠지만 걷다 보니 땀이 나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조금은 부드러운 음성과 말투로 말할 수 있었다.





카지노 게임2) 최고의 육아서

독서모임 선정도서였다. 실내 자전거를 가장 약한 속도로 넣고 설렁설렁 돌리며 읽다가 멈칫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도대체 자기가 여태까지 이토록 맹목적으로, 이토록 고통스러워하며, 이토록 아무 결실도 없이, 그렇지만 이토록 행복한 카지노 게임으로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있었던가? p177' 싯다르타가 카지노 게임처럼 되지 않는 아들을 향해 고뇌하는 부분에서는 완전 공감했다. 내게는 최고의 육아서.





카지노 게임3) 집에 오기 싫다

맨날 반복되는 뉴스 아니면 등산, 낚시, 장기, 또는 세계여행 채널의 소음에 귀를 막고 싶었다. 닫힌 방문들 안에서 알 수 없고 알려고도 들 수 없는 젊은 카지노 게임들에 나이 들어가는 엄마의 카지노 게임은 종종 다친다. 내가 먹지 않았어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설거지거리와 돌아서면 다시 밥 걱정을 해야 하는 하루의 반복. 퇴근 후 집에 오기 싫은 카지노 게임이 솟구쳐 절정에 이르었다.





4) 곰돌이 확언

초부터 다시 새벽 기상을 시작했다. 6시 30분을 새벽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모닝 레시피 구글 미트에 접속해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확언을 쓴다. 곰돌이 아이템으로 꾸민 일주일의 페이지가 카지노 게임에 들어 보고 또 보게 된다. '나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좋다'라고 쓰긴 썼는데, 정말 그러한지는, 그렇게 될지는 확신이 없다. 확언을 몸으로는 쓰는데 카지노 게임으로는 자꾸 튕겨져 나온다.




5) 흐린 눈으로

녹내장 진단을 받은 지 만 1년이 넘었다. 눈 CT를 찍고 산동 검사를 하며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는 최연소 환자였다. 6개월에 한 번 마주하는 의사 선생님은, 앞으로 나의 눈 수명이 어떻게 되겠느냐는 질문에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워낙 고도근시에 안압도 다고, 나아지는 방법은 없다고,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현실을 도피하려 '흐린 눈으로' 본다는 표현들이 인용되는 요즘, 정말 눈앞에 흐려지던 순간 눈물이 줄줄 흘렀다.




6) 최고의 혼밥

흐린 눈으로 병원을 나온 길, 애들 밥을 챙기러 집으로 바로 가려다가 발길을 돌렸다. 시장 골목에서 고심해서 고른 메뉴는 칼국수와 녹두부침. 튀기듯 부친 녹두부침 한 점과 뽀얀 국물 한 술에 세상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산처럼 쌓이는 바지락 껍데기를 보다가 3인분 포장을 주문했다. 겉절이도 싸 달라고 부탁했다.





7) 최고의 라떼

깜짝 놀랐다. 커스텀 커피의 라테 맛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첫 모금이 짜릿할 정도로 맛있었다. 몇 년 전에 알려준 선생님에게 사진을 찍어 카톡을 보냈고, 며칠 전에 알려준 선생님에게는 보낼까 하다가 그냥 말았다. 하루 거르고 다시 맛보러 들렀을 때는 주말이고, 사람이 가득했고, 자리도 불편했다. 최고는 한 번이면 충분하다.





#주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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