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다지 밝은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어둡고 우울하고 낮은 기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훨씬 더 가깝다. 예민한 성격과 쓸데없는 생각들, 걱정들로 인해 불면증과 스트레스성 위염을 달고 살게 되었다.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몸에서 신호를 보내는 개복치 같은 신체를 가지고 있기에,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만약 받는다고 하더라도 잘 풀어야 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혼자 있는 걸 워낙 좋아하다 보니 외롭다거나 심심하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만의 아지트가 생긴 느낌이라 그 시간을 잘 즐겼었다. 당시 우리 집 냉장고는 2개가 있었다. 큰 냉장고와 작은 냉장고가 있었는데, 큰 냉장고에는 주로 식재료나 반찬 등이 있었고, 작은 냉장고에는 언니와 나의 간식거리가 가득 차있었다. 주로 천하장사 소시지나 우유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 얕은 기억상 작은 냉장고는 단 한 번도 비어있던 적 없이 아버지께서 항상 가득 채워놔 주셨다. 큰 냉장고는 보통 카지노 게임를 하는 할머니나 아버지께서 많이 열고 닫으셨고, 언니와 나는 시간 상관없이 작은 냉장고를 열고 닫았다. 할머니께서는 교회에 가시고 아버지는 회사에 가시고 언니는 학원에 가고 결국 학원을 쉬고 있던 나는 학교를 마친 후 홀로 집에 있게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하찮은 카지노 게임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보통 그렇듯이 계란프라이를 해서 간장계란밥이나 케첩밥 같은 간단한 것들을 만들어 먹었다. 설거지 거리가 거의 나오지 않는 그릇 하나에 밥과 계란과 나머지 선호하는 소스들을 넣고 비비면 완성되는 그런 한 그릇 카지노 게임를 했었다. 사이사이 라면도 끓여 먹었지만, 당시 나는 라면을 잘 끓이지 못했었다. 물 조절을 못한다던가, 익힘을 잘 못 알아채서 생라면이나 죽 같은 라면을 먹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들은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었고,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닭볶음탕 소스를 사놓으셨는데, 마침 집에 남은 후라이드 치킨이 있었다. 머릿속으로 여러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다음 나만의 닭볶음탕 볶음밥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 후 치킨 살을 발라서 살짝 볶다가 밥을 넣고 닭볶음탕 소스를 넣고 다시 볶았다. 겁이 많은 편이라 강불은 쓰지 못하고 계속 약불로 썼기에 소스가 타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고, 나만의 볶음밥이 완성되었다. 접시에 담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텔레비전 앞에 상을 편 후 프라이팬 채로 가져다가 놓고 가장 좋아하는 만화채널을 틀었다. 집 찬장에 있던 김을 꺼내고 보리차를 컵에 가득 따른 다음 볶음밥 앞에 앉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 입을 먹었다. 이런 말 하기 좀 뭐 하지만, 정말 맛있었다. 사실 내가 한 건 볶은 일 밖에 없어서 내가 카지노 게임를 잘했다고는 말 못 하지만 나의 첫 카지노 게임다운 카지노 게임는 성공적이었다.
나이를 점점 먹고, 아버지에게 우리 집 반찬들을 하나 둘 배워나갔다. 카지노 게임하는 걸 꽤나 좋아하게 되어서 냉장고에 반찬이 없을 땐 휴대폰 앱으로 장을 보고 반찬을 채워 넣었다. 주로 했던 반찬은 감자볶음, 어묵 볶음, 애호박 찌개, 느타리버섯볶음 같은 볶음류들이 줄을 이루었고, 가끔가다가 김치찌개, 콩나물 국, 감잣국 같은 국물류도 만들었다. 다행히도 가족들은 맛있게 잘 먹어주었고, 카지노 게임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입맛이 정말 무던하다. 딱히 맛없는 것도, 맛있는 것도 없는 사람이라서 어떠한 식당에 가도 만족하며 배를 두드리고 나온다. 물론 편식을 하기는 하지만, 굳이 들어있는 걸 빼내는 열정을 보이지는 않는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굳이 찾지 않는 그런 무던한 사람이다. 그래서 사실 누가 해주는 음식을 먹던, 내가 해서 먹든 간에 모두 만족하면서 잘 먹는다. 하지만 가족들은 모두 입맛이 꽤나 까다롭기 때문에 반찬을 해놓을 때 정말 정성을 다해서 꼼꼼히 만든다. 내 입맛을 믿지 못해서 아버지에게 간을 봐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물론 가족들이 먹을 반찬들이니 정성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혹여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쩌지 라는 걱정이 들 때도 있다. 물론 그런 적은 없었어서 요즘에는 걱정이 좀 덜하다.
카지노 게임는 재미있다. 약속을 잡고 친구를 집에 초대해서 월남쌈, 마제소바, 순두부쫄면 같은 손이 꽤나 많이 들어가는 음식을 해준 적이 있었다. 조금 번거롭기도 하고 재료비가 훨씬 많이 들지만 맛있게 먹어주는 친구들을 보면 퍼다 주고 싶은 할머니의 마음이 든다. 또한 주변에 자취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닭볶음탕 같은 조금 큰 카지노 게임들을 할 때에는 나눠주기도 한다. 아버지나 할머니는 괜한 일이라며 나를 말리시지만, 나는 소중한 누군가에게 나의 카지노 게임를 대접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일들이 참으로 즐겁고 보람차다.
몇 년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면 카지노 게임를 하는 버릇이 생겼다. 휴일 하루 전에 피곤한 몸으로 침대에 누워서 복잡한 생각들에 조금 갇혀있다가, 내일은 무엇을 할까 생각한다. 결국 <책을 읽거나 카지노 게임를 하자라는 결론이 나온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만드는 음식은 까다로워야 하고, 복잡해야 하고, 재료가 많이 들어가야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휴대폰 앱으로 식재료를 배달시키고 조금 기다리면 1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배달이 온다. 하나하나 개봉을 하고 카지노 게임에 들어간다. 그전에 헤드폰을 끼고 가장 편안한 노래를 튼다. 노이즈캔슬링은 필수이다. 아무튼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잡생각들을 버리며 오로지 카지노 게임에 집중한다. 최근에 했던 카지노 게임는 두부조림과, 옛날 소시지 부침, 닭가슴살로만 만든 닭볶음탕이었다. (성공적이었고, 다음날 모두 사라졌다. 나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고 가족들은 배를 채울 수 있으니 일석이조이다.)
최근에 카지노 게임 말고 스트레스를 푸는 다른 방법을 찾았는데, 바로 놀이터에서 혼자 놀기이다. 20대 후반이 놀이터에서 혼자 노는 모습이 우스울지도 모르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우리 집은 아파트라 바로 중앙에 놀이터가 있는데, 밤에 답답하고 생각이 많아질 때에는 롱패딩과 모자만 걸치고 나가서 홀로 그네를 탄다. 아주 어릴 때 그네를 타다가 넘어져서 모래를 한 움큼 먹은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네가 무서운 존재였는데, 오랜만에 타니까 발은 쉽게 땅에 닿았고, 그네는 나의 기억보다 더 튼튼했고, 더 알맞은 느낌이었다. 차가운 바람과 노래, 그리고 그네만 있으면 무언가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친구들은 무슨 청승이냐며 장난스럽게 나를 놀리기도 하지만, 밤에 고요한 놀이터를 혼자 쓰는 나를 느낄 때 무언가 쾌감이 든다. 마치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만 같은 어린아이의 마음이랄까? 아무튼 나는 요즘 그네를 탄다.
취미가 많은 것과 스트레스를 푸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는 것은 우울한 사람인 나에게 가장 다행인 부분이다. 가장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는 나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도망칠 곳이 있는 사람이 된다. 도망치는 것도 때로는 도움이 된다는 말처럼, 멀리는 도망가지 못하더라도 다른 곳에 집중하고 나에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사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