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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오름달 Apr 14. 2025

다른 계절이 오고 카지노 가입 쿠폰

9화 - 가장 쉬운 변화

앵두 같은 봉오리가 꽃이 되어 피어난다


낙영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카지노 가입 쿠폰에 따라 꽃이 피고 지듯이 어떤 어려움도 그저 우리 곁에 한 철 머물다 갈 뿐이라고. 부정적인 감정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힘을 잃고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작은 바람에도 휘청이는 자신을 책하지 말고 품어주자. 결국엔다 지나갈 테니.


겨울일 땐 몰랐다. 우리 동네의 가지 꺾인 나무들이 전부 벚꽃이었다는 걸. 봄이 왔고, 꽃이 폈다. 별 볼일 없던 거리들이 구태어 찾아갈 만큼 눈부셔졌다. 변한 것 하나 없는 일상인데 꽃을 보는 그 순간만큼은 즐거웠다. 좁은 집 안에만 갇혀 있다가 오랜만에 봄 나들이를 나오니 마음이 들떴다. 기분을 바꾸는 건 사실 이렇게나 쉽고 간단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간단한 일조차 할 수 없는 지옥에 갇혀 다.


병원 생활을 하면서 당연하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이 안 되는 사람들도 카지노 가입 쿠폰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침대에만 콕 박혀 움직일 수 없는 사람에게 하루는 너무도 길다. 고통과 싸워야 하는 밤은 무섭고, 교수님들이 회진을 돌지 않는 주말은 불안하다. 매일이 똑같아서 시공간이 조작된 것만 같다.

아무리 사회생활이 힘들고, 학교 다녀오는 게 지친대도틈틈이 시선을 돌릴 수 카지노 가입 쿠폰면그게행복한 거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으면행복한 거다. 가족들 중에 아픈 사람이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제일 큰 복이다. 하자만 나도 안다. 그런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걸.모두들본인이 아프거나 아니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파서 힘든 시간을 보낸다. 나의 글은 지난 시간을 위로하는 자기 고백이 아니다. 지금 현재, 힘든 시간 속에 갇혀 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진심 어린 위로일 뿐.


터널이다.

이 생활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하루만, 하루만 더 버티면 뭔가 나아지겠지.' 헛된 희망을 품고 간신히 한 걸음 내디뎌 보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룬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볼 때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대사는 일자리를 잃은 관식이를 보고 애순이가 했던 말이다.

사람이 시든다.

나는 우리 가족이 시들어 가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 아무리 옆에서 분무기를뿌려봐도 고작 그 정도로 되살아 날 떡잎이 아니었다. 결국엔 시간만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다. 힘을 빼고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어 안간힘을 쓰고 발버둥을 쳤다.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 사람에겐 이 또한 부담인 줄 모르고.

오히려 마음을 내려놨을 때 하루가 더 편안해졌다. 작은 것에도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 됐다. 어두운 터널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에게 당장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적어도 하나는 확신할 수 있다.누구에게나봄은 온다는 것.그게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어 답답하지만 그렇다 해도 걸어온 시간보다는 분명 짧을 테니 조금만 더 힘을 내주길. 화들짝 놀랄 만큼 사실은 아주 빠르게 당신의 카지노 가입 쿠폰 오고있으니까.




뜨거운 여름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첫날엔할 일이 없었다. 몸무게를 재고 수술 동의서에 사인만 하면 그만이었다.한쪽 다리 당 두 시간 정도 걸린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담당 선생님이설명해 주셨다. 자고 일어나면 다 끝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당시에는 긴장이 전혀 되지 않아서 씩씩하게 대답했다. 효과를 장담할 수 없는 긴긴 싸움에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내가 입원한 곳은 어린이 병동이었다.만으로 20세 미만은 어린이 병동을 사용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해맑은 미소와 생기로 가득 차 있던 그곳은 가정집만큼이나 따뜻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지친 보호자들의 얼굴도 눈에 들어왔다. 아직 먹어보지 못한 음식으로 탑을 쌓으면 과연 하늘에도 닿아볼 수 있을 듯한 어린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어 이렇게 아픈 걸까. 착잡했다.

반나절만에 나는 어디 가서 아프다고 명함도 못 내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복도 끝이 바로 소아암 병동이었다. 그 문은 볼 때마다 늘 닫혀 있었다. 그 너머의 잔혹함을 굳이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다. 몰라도 알 것 같았다. 저 문은 무조건 안쪽에서만 열려야 했다. 들어가는 사람은 없고 나오는 사람만 있는 문이어야 했다.


벽지는 알록달록한 그림들로 가득 차 있고, 눈에 띄는 구조물들은 노란색이나 분홍색으로 통일되게 칠해져 있었다. 잊고 있던 동심이 되살아 나는 기분이었다. 혼자만 나이가 많은 것이 쑥스러웠지만 그래도 내심 성인 병동처럼 분위기가 어둡지 않아 좋았다.

놀러 온 여행객 마냥 신이 나서 본격적으로 병원 구경에 나섰다. 지하에는 맛있는 밥집과 빵집이 줄지어 있었다. 빙수를 파는 가게를 지나 엄마랑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곳을 찾았다.


“오늘이 안 올 줄 알았는데 신기해.내가 진짜 수술을 하게 되다니.”


“엄마도 그래. 아무 일 없을 거니까너무 걱정하지 마.”


금방 시킨 따뜻한 아메리카노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당연하지. 나 수술하는 동안 괜히 밖에서 기다리지 말고 아빠랑 밥도 먹고 오고 해.”

짧은 대화 속에도 엄마와 나는 서로를 걱정했다.나중에 들어보니 엄마는 수술 전날이 너무 무서웠다고 한다. 해맑던 나와는 다르게 엄마 속은 말이 아니었나 보다.


병원에서의 첫날밤, 하나 놀랐던 건 소등이 9시라는 점이었다. 잠에 들기엔 너무도 이른 시간이었지만 사방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대로에 나가면 지금쯤 퇴근길을 달리는 차들로 반짝반짝할 텐데. 여기서는 핸드폰 밝기마저 부담스러웠다. 말소리는 하나 없이 아이들 가슴을 조용히 두드리는 소리만 났다. 한 명이라도 울면 그 울음이 홍수가 되어 번질까 봐 모두들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낯선 침대에 누워 사색에 잠겼다. '내일이 지나면 지금까지 힘들었던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될까?' 잘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상상이 가지 않는 미래는 처음이었다. 내 인생이 만약 한 편의 영화라면, 지금이 엔딩 크레디트를 올리기에 적당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하기 나름인그런 열린 결말의 영화가 스크린에 올라간 것이다.

아픔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탓일까. ‘이대로도 괜찮은데.’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돌이킬 수 없다. 어떻게든 되겠지.그래, 이왕이면 잘 됐으면 좋겠다.


집에서는 우리의 아기가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동생은 엄마와 오랜 시간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를 위해 엄마의 빈자리를 성숙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늘 반겨주던 엄마가 있었는데이른 아침에도,뉘엿뉘엿 해가 넘어가는 오후에도,아기는 혼자다.

그 긴 외로움을 어떻게 견뎠을지 모르겠다. 많은 후회 중에서도 가장 큰 후회는엄마가 절실히 필요했을 그 나이에 동생으로부터 엄마를 뺏어버린 일이다.


우리가생각했던2주가 아니었다. 나는 운이 나빴던 걸까, 좋았던 걸까?아무도 반기지 않았던 병원에서의 긴 셋방살이 이야기를시작해보려 한다.




눈을 뜨자 견딜 수 없는 갈증이 일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간이침대에 엄마가 누워 있었다. 낮고 더럽고 좁은 그런 자리였다.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에게 깔끔한 성격을 물려받아 정리정돈을 곧 잘했다고 한다. 한 번도 지저분한 집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인지 결혼을 하고 나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집 안을 들쑤시며 대청소를 했다. 아빠도 깔끔한 성격으론 지지 않았다. 몸이 아플 때도 청소만큼은 발 벗고 나섰다. 둘 다 정말 꼼꼼하고 성실했다.


덕분에 나도 늘 깨끗한 환경에서 자랐다. 옷도, 가방도, 신발도, 양말도. 지저분해진 채엄마 손에 맡기면 언제나 새 거처럼 빛이 났다.하지만 모든 일엔 양면성이 있는 법. 대신에 밖에서 생활할 땐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음식점도 맛보다는 청결을 더 중요시하게 됐고 잠자리도 심하게 가렸다. 조금이라도 지저분한 곳에 가면 마음이 불편했다. 코로나가 생기기 전에도 늘 소독티슈를 애용했을 정도다.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병원 중 한 곳이었지만 보호자의 침상은 너무나 열약했다. 병원에서 호텔만큼의 퀄리티를 바라는 건 당연히 도둑놈 심보겠지만 하루 이틀 있을 것도 아닌데.

보금자리가 이렇게 불편하니 가뜩이나 간호하느라 지친 몸을 편히 쉬어주지도 못했다. 몸이 힘들면 마음이 아무리 건강해도 쉽게 무너진다. 병원 생활이 힘든 이유 중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아마 잠자리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환자를 둔 가족들에게는 잠이 중요하다. 타인을 위해 애쓴다는 게 그렇게 고달픈 거다.


수술 날, 다행히 컨디션이 좋았다. 며칠간 은근히 신경 쓰였던 두통도 말끔히 사라졌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지만 '내' 모습에 어울리는 하루를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완벽하게 아름다운동그라미 같은 하루 말이다.

의학 드라마를 보면서 혼자 생각했던 게 있다. '마취가 잘 안 통하면 어쩌지? 중간에 깨어나는 거 아니야?' 수면 마취라는 게 과연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보통 1부터 10까지 숫자를 세라고 하던데 혹시내 정신력이 너무 강해서 잠에 못 드는 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했었다.


OOO님 이동할게요.


커튼이 걷히고 침대가 움직였다. 시간이 맞아서 수술실 들어갈 때 아빠는보고 갔다. 당연히 걸어서 이동하는 알았는데 침대 엘리베이터에 줄은 몰랐다. 왠지 다른 사람들 눈에 위중한 환자처럼 보일 것 같아민망했다.


수술실 앞은 드라마와 다르게 한산했다. 응급 수술이 아니기에 앞에 대기할 수 있는 의자도 없었다. 그냥 하얀색 문만 떡하니 서 있었다.

하지만,드라마에서처럼 잠깐 인사할 시간은 주었다. 뒤따라 온 엄마는 속사포로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내뱉었다. 어째 나보다도 엄마가 더긴장한 것 같았다. 엄마를 안심시키고 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마중나왔다. 누운 상태에서 보이는 건'수술실'이라 적힌팻말뿐이었다.


어머니 우시네요.


침대를 옮겨준 젊은 선생님이 속삭였다. 놀란 마음에 돌아보니 정말 엄마가 고개를 푹 숙이고 울고 있었다. 빨리 가라며 손짓을 하면서도 붉어진 눈매는 좀처럼 가라앉을 줄 몰랐다. 엄마가 울 거라곤 생각을 못했는데 너무 놀랐다. 파도처럼 밀려오던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엄마의 눈물이 비꽃이 되어 내렸다. 연이어 내 울음도 터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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