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불안한 미래지만
가을의 오곡은 추운 겨울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애롱.
'당분간 여기도 못 카지노 게임 사이트?'
혼자 노래방으로 향하면서 생각했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스트레스받을 땐 이만한 위로가 없었는데, 벌써부터 그리워서 어쩌나. 매일 둘씩이던 마이크도 오늘은 고장 나 한쪽 밖에 없었다. 텅 빈서랍을 바라보던 내 마음처럼 쓸쓸하게 느껴졌다.
앞으로 학교를 며칠이나 쉬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수술하고 회복까지 병원에서 들은 기간은 대략 2주. 재활까지 생각하면 거기서 2주를 더 더해야 했다.
여름방학을 사이에 끼고 수술을 하게 됐지만 개학날 제대로 학교에 갈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회복속도도 환자마다 다르다니 지켜봐야 할 일이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열흘 전. 그러니까 수술을 이틀 앞두고, 학교에 있는 모든 짐을 정리하러 갔다. 마치 권고사직을 당한 열혈 회사원이 자신의 정든 자리를 치우듯 느리고 둔한 몸짓이었다.
"우리 잊으면 안 돼! 수술 잘 받고 개학날 만나!"
유독 애교 많던 민정이가 엉겨 붙었다. 내일 마지막으로 있을 수행평가나 잊지 말고 챙기라는 말을 남기곤 정리에 집중했다. 교과서부터 요약노트, 각종 프린트 자료와 생활용품이 차근차근 가방에 담겼다. 가방은 터질 듯 부풀어 오르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고팠다.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것처럼 허했다.
덤덤하게 받아들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큰 수술은 살면서 처음이다 보니 막연한 불안 같은 게 있었나 보다. 공사한다고 밖으로 빼둔 사물함에도 남은짐이 있었다.
"내일이야?"
학원 다니면서 친해진 박재민이 다가왔다. 쉬는 시간의 복도는 바로 옆사람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만큼 소란스러웠다. 짐은 그대로인 채 사물함이 옮겨져서인지 자물쇠를 열자마자 뒤죽박죽 물건들이 쏟아졌다. 한아름에 다 들고 가기 벅차 표정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내일모레. 아침 10시."
박재민이 물건 몇 개를 집어가며 물었다.
"긴장 돼?"
책상에 물건을 내려놓으니 하얀 먼지가 폴폴 날렸다.
"조금 되는 것 같기도? 근데 괜찮아. 안 아플 것 같아."
그사이 초조한 마음을들켰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박재민은 나를 보며웃었다.
"튼튼해져서 와라."
남자인데도 고민을 잘 들어주고 나름 챙겨주기도 해서 고마운 친구였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같은 반이라 모든 일상을 공유하다 보니무릎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없었다. 하루는 외부에서 쓰레기줍는 봉사활동을 갔는데 갑자기 자갈밭이 나와 당황했던 적이 있었다.
고르지 않고 울퉁불퉁한 자갈길은 빙판길만큼이나 위험해서 내내 바닥만 보며 걸었다. 5분 정도 걷다가 지쳐서 고개를 들었는데 한참앞에서 걷던박재민이 나를 돌아봤다. 내 옆에도 걔 옆에도 친구들이많았던 상황에서박재민은 나만 볼 수 있게 입을 뻥긋거리며 괜찮아?라고 물었다.
'내가 잘 본 건가? 지금 나한테 괜찮냐고 한 거야?'
아주 잠깐이지만 그 순간 힘들다는 사실을 잊었다.
내가 애쓰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표정도 행동도 신경 쓰고 있었고 걸음도 느려지지 않았으니까.
'어떻게 알았지?'
지금까지 한 번도,꼭 필요한 순간에 누군가 걱정해 준 적은 없었다.티 내기 전에미리 알아차려준 사람은 없었다. 이런 배려는 처음이라 놀라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부끄러워서 뭐라 말은 못 하고 고개만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누구에게나 필요이상으로 다정한 녀석이었다.그 뒤로도 자갈길이 계속 이어졌지만힘들지 않았다. 누군가나를신경 써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됐다.
긴 정리가 끝나고 담임선생님께서도 따로불러격려의 말씀을 해주셨다. 돌아와서 누구보다즐겁게 학교 생활하면 된다고.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고.
평소에 감정변화 없이 무섭기로 소문난 선생님인데 의외로 다정다감하신 모습이 있었다. 말 안 듣는 사춘기 시절의 학생들을 감당하려면 겉과 속이 다를 필요가 있겠구나 생각했다.
작별의 시간은 오후의 낮잠처럼 짧았다. 나머지는 이제 오롯이 내 몫이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때가 오고야 말았다.
"방학 잘 보내! 먼저 갈게!"
한 학기 동안 즐거운 추억을 쌓았던 친구들과도 두 팔 벌려 인사했다. 중학교에서 걸어서 하교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돌아보니 내가 없어도 모든 게 변함없이 그 자리 그대로 남아있을 것 같았다. 그게 한편으로는 서운했다.묵직한 가방이 주변 공기까지 먹먹하게 만든 건지 자꾸만 힘이 빠졌다.
거리로 나오니 나를 뺀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어디든 좋으니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심리학 용어 중에 '타조 효과'라는 게 있다고 한다. 타조가 천적에게 들켰거나 위급한 상황일 때 모래 속으로 머리를 숨기는 것에 빗대어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회피카지노 게임 사이트 싶어지는 심정을 일컫는 말이다.하지만어쩌면도망치고 싶다는 건더 잘해보고 싶다는 의지일지도 모른다. 혹시나 잘못될 가능성이 두려워 피카지노 게임 사이트자 하는 건그럼에도 불구카지노 게임 사이트 잘 됐으면 좋겠다는 염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모순된 존재라서주변에 기대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회피조차 하고 싶지 않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위험한 상황이 아닐까.
사실 타조가 모래 속에 머리를 숨기는 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지 숨는 게 아니라고 한다. 이런 숨겨진 이야기까지 마치 효과의 일부분인 것처럼 자연스럽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날 나는 타조효과를 경험한 것 같다.
하지만 이젠 안다. 회피하고 싶은 감정이 드는 건 너무도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움츠리고만 있으면 안 된다는 걸. 시속 70Km까지 달릴 줄 아는 타조처럼 두려움을 향해 열심히 전진해야 한다는 걸. 그러다 보면 한 순간 모래폭풍은다 지나가있을 거다.
'온 김에 미련 없이 놀다 가자!'
당찬 포부로 발라드 5곡을 연달아 예약했다. 노래 취향을 공개하긴 부끄럽지만 90년대 발라드를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온 곳은 나이를 지긋하게 드신 노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시간제 노래방이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쭉 이곳만 다녀서 단연 단골이라 불릴만했다. 내가 끌고 온 친구들만 해도 열댓 명은 될 거다. 사장님은 내가 한 시간만 결재해도 꼭 서비스로 한 시간을 더 넣어주셨다. (그때는 한 시간에 7천 원이었다)
나는 엄마를 닮아 노래를 곧잘 불렀다. 그래서 애들 사이에서 ‘노잼 파’로 불리는 발라드 애호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를 뺏기지 않을 수 있었다.
큰 방은 두 개 정도 있었는데 내 기억이 맞는다면 3번과 6번 방이다. 그 두 개의 방 중 하나를 차지하고 싶어 친구들과 오픈런을 했던 일도 생생하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하니 사장님은 혼자서 큰 방을 쓸 수 있게 배려해 주셨다. 너무 감사했지만 평소 친구들과 같이 앉았던 자리에 혼자 있으니 괜히 더 외로워지는 기분이었다.
'혼자 오면 좋지. 중간에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자판기에서 뽑아온 천 오백 원짜리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켜며 생각했다.
어차피 사람은 결국 혼자래
너뿐만 아니라 알고 보면 누구나 다 외로워
그냥 그게 괜찮은 날이 있고
안 괜찮은 날이 있을 뿐이야
하지만 넌 심지가 굳은 아이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무슨 일이던 잘 이겨낼 거야
집에가면 병원에 들고 갈 물건들을 챙겨야 한다. 그래봤자 핸드폰과 충전기가 고작이겠지만,싱숭생숭한마음도 등에 맨가방과 같이 내려놓을 작정이다.
저 멀리서 초록색 신호등이 깜빡였다.
'작년 여름쯤 횡단보도에서 삐끗했던 적이 있었는데.'
'벌써 일 년이나 지났네.'
싫으나 좋으나 시간은 우리가 눈치채지못할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말 그대로 쏜살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