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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지윤 Apr 17. 2025

삼각관계에서 나는 카지노 게임 그만 빠질게

무게중심에서 중점으로

작년 10월, 카지노 게임는 그렇게 하고 싶다던 자동차 정비를 하겠다고 멋지게 세차장을 박차고 나갔다. 3개월 인턴 기간에는 월급이 적어 그동안은 새언니가 손세차를 도맡아 하면서 생계비를 매워야 했다. 서로 채우고 의지하며 사는 것이 부부인데 그걸 옆에서 도와주려고 항시 대기하고 있는 카지노 게임가 있다는 게 저 부부에게 크나큰 짐이지 않을까 싶었다. 카지노 게임의 입장은 이러했다. 내 아들이 얼마 못 벌어서 며느리가 번다는데 도와줘야 하지 않겠냐고. 그런 마음으로 함께 일을 하면서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며느리와 아들 때문에 속이 상할 때는 무조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끊질 않는다는 게 지긋지긋하고 끝나지 않는 문제였다.


그렇게 카지노 게임의 인턴기간 3개월이 흘렀고 이제 카센터에서 정직원이 될 차례인데 뜬금없이 다시 세차장으로 돌아오겠다고 선언했다. 임신출산육아로 17년간 경단녀가 된 새 언니가 2월부터 4대 보험이 되고 퇴직이 없는 새로운 직장에 취직을 하게 되어 카지노 게임 세차장에 손세차를 도맡아 할 사람이 없게 되었기 때문이란다. 카지노 게임는 혼자 하면 된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내심 카지노 게임가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저 아래 깔려 있음을 나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삼십 칠 년의 짬밥이랄까. 카지노 게임의 딸로 살아온 세월의 짬.


작년 내내 나는 카지노 게임에게 카지노 게임로부터 독립하라고(도망치라고) 외쳤다. "어서 빨리 도망쳐! 지금도 늦었어!" 정서적, 경제적 독립을 하고 성인 대 성인이 되라고 말이다. 더 이상 카지노 게임의 가스라이팅에 놀아나지 말라고. 나는 카지노 게임가 카지노 게임의 노후를 책임질 이유도, 의무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저 둘의 사이가 독립된 개체가 되어 건강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열한 살에 상주완장을 찬 순간부터 남편이 되고 가장이 된 마흔네 살의 카지노 게임는 33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아니 어쩌면 44년을 카지노 게임의 가스라이팅 속에서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카지노 게임가 카센터로 떠날 때 카지노 게임는 홀가분해져서 너무 좋다고 하더니, 아들이 자신의 곁으로 오다니 쌍수 들고 환영하는 기세였다. 옆에서 보면 참 안타깝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연루될 이유는 없다. 이제부터는 세차장 운영 하는 데 있어서 카지노 게임와 카지노 게임의 갈등은 그들만의 것이라고 다짐해 본다. 작년처럼 둘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비행기 타고 찾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카지노 게임는 세차장을 매매에 내놓았다. 그러나 그녀는 팔겠다는 의지가 매일 바뀐다. 카지노 게임가 카센터로 갔을 때는 빨리 팔고 정리해서 제주에 있는 우리 집에서 지낼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제주도에 온다는 말이 쏙 들어갔다. 자신의 세차장이 곧 카지노 게임의 일이기 때문일까. 나는 그렇게 정했다. 카지노 게임는 카지노 게임 곁에 있는 것이 그녀의 행복과 평안을 위해 맞는 일이라고. 어렸을 때 카지노 게임는 나에게 "카지노 게임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해." 라고 했다. 그 말이 여지껏 머릿속을 맴도는 것을 보면 꽤나 충격이었나보다. 카지노 게임는 나한테 장난을 심하게 치는 개구쟁이여서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말은 사실이었고 나는 이십년이 훌쩍 넘어 이제는 인정할 수 있게 됐다.


귓가에 노래소리가 들린다.

가라 잘가라 그래 멀리 가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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