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6개의 여권
이번 여행 역시 남편의 소행이었다. 교토에서 3박인지 4박인지를 한 후 오사카로 가서 3박을 하는 일정이었다. 연말연시였기 때문에 생각한 것보다도 교토에 사람이 정말 많았던 것만 빼면, 꽤 괜찮은 시간들이 흘러갔다.
남편과 나는 중간중간 "이제는 아기랑 여행 오는 것도 몇 번 해보니까 훨씬 수월하지~?"라고 말했었다. 이번 여행이, 여행 유튜브를 꿈꿀 정도로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도 학을 뗄 여정이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시기였다.
다시 생각해 보니 정말 좋았던 순간들이었다. 간사이 공항에서 교토로 가는 하루카 열차에 키티가 그려져 있어서 아기가 "키티, 쁘띠" 등등의 말을 하면서 교토로 이동한 시간, 오래된 학교를 개조한 세련된 호텔, 장어덮밥 집에서의 완벽한 식사, 멋진 조식, 사람은 많았지만 일찍 출발한 덕에 좋은 구경을 할 수 있었던 청수사, 조그만 절에서 만난 블루보틀 팝업 트럭, 너무 귀여웠던 소우소우 마을, 아라시야마에서 만난 남편의 인생 식당..
아기와의 여행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우리와 일본 특유의 아기를 위한 배려를 듬뿍 받으며 보낸 며칠이었다.
다만 남편이 최근 집중하고 있는 투자와 관련해 변동성이 커져 여행 도중에도 계속 핸드폰을 확인하고, 저녁에도 아기가 자고 나면 호텔 라운지에서 내 노트북을 들고 시장을 체크해야 했던 것만 빼면 말이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여행 도중 종종 혼이 나간 사람처럼 보이긴 했다.
첫 번째 멘붕은 교토에서 오사카로 가기 전날 발생했다. 정확히 말하면 교토에서 오사카로 가야 했던 날이었다.
여행의 다른 날들처럼 우린 교토 숙소에서 조식을 먹고, 교토역으로 이동해 후시미 이나리 신사에 가기로 했다. 교토역 근처에 절도 들려 아기랑 산책도 하고 계단에서 아기 체력을 빼면서 이동했다. 후시미 이나리 신사는 생각보다도 더 사람이 많아서 적당히 둘러보고, 숙소 근처 백화점에서 늦은 점심도 먹었다. 호텔 라운지에서 맥주도 한 캔 따고 숙소로 돌아가려 했다.
숙소 엘리베이터에 카드키를 꽂았는데 작동이 되지 않았다. 3일 동안 묵은 숙소인데 작동이 되지 않자 '오잉? 왜 작동이 안 되지?'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다른 투숙객이 있어서 무사히 이동카지노 게임. 엘리베이터에서 방으로 이동, 방에 또 카드키를 꽂았는데 또 문이 열리지 않았다. "엥? 이거 왜 이래? 카드키 고장 났나 봐~" 우리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프런트에 다시 내려가서 카드키를 교체하려 시도카지노 게임.
프런트로 간 남편은 한참 동안 말을 하고 있었다. 프런트 근처 소파에서 아기를 놀리고 있던 나는 무언가 굉장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은 조금 사색이 된 표정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오늘 나갔어야 하는 날인데, 체크아웃 날짜를 착각하고 있었어." 엥? 시간은 오후 5시 30분 정도였다. 레이트 체크아웃도 어려워 보이는 시간이었다.
파워 J인 남편이 이런 일을 착각하다니 믿기 어려웠지만, 남편은 사소한 것은 잘 챙기는 반면 가끔 매우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곤 카지노 게임.
그래서 "아 이번 여행에서 치명적 사건은 이 사건이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남편이 다시 프런트에 가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구경했다.
남편은 하루 숙박비를 더 내야 한다고 나에게 설명했다. 마침(?) 연말연시여서 호텔비는 평소의 2배 이상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평소에 20만 원 대인 카지노 게임 50만 원에 결제했다. 그리고 원래 오사카로 가기로 한 날이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그냥 하루 더 쉬고 오사카로 떠나기로 했다.
"50만 원짜리 카지노 게임 20만 원에 묵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블로그 글은 자주 봤지만, 20만 원짜리 카지노 게임 50만 원에 묵는 방법은 처음 알았네~"
이때까지는 이 정도 선의 농담도 가능카지노 게임.
연말 액땜은 이 정도로 끝날 줄 알았다. 어쨌든 또 하루의 숙박비를 지불했기에 우리는 다음날 조식도 야무지게 챙겨 먹고 오사카로 향카지노 게임.
오사카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나는 20개월 아기와 유모차를 챙기고, 남편은 세명의 짐이 든 큰 캐리어 하나와, 내 노트북과 3명의 여권과 아기 기저귀가 든 백팩을 챙겨 기차에 올랐다.
20개월 아기는 마침 '탈 것'에 꽂혀있어서 "칙칙 타자~"하면서 올라가니 한시라도 빨리 칙칙을 타고 싶어 했다. 그리고 칙칙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서 매우 수월하게 이동하였다. 옆에 앉은 남편의 눈은 변동성이 큰 투자 상품에 대한 생각과 함께 지난밤 '바보 비용'으로 지출한 50만 원 때문인지 초점을 잃어버린 채였다.
남편의 초점 없는 눈을 바라보면서도 "에휴 50만 원 아깝다~" 정도만 말하고 더 이상 핀잔은 주지 않기로 했다. 나 역시 아기만 챙기느라 일정을 더블체크하는 등 도움 준 게 없었기 때문에 굳이 잔소리하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잔소리도 안 하는 와이프라니 너무 훌륭하다, 하면서 오사카 숙소 근처의 역에서 내렸다.
역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햇살이 쬐는 횡당보도에 섰다. 남편이 나지막이 "좆됐다"라고 말카지노 게임.
남편은 그런 표현을 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햇살이 너무 쨍했고 (보통 영화에서도 ㅈ되는 일은 날씨가 좋을 때 일어난다) 남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나는 정말로 ㅈ됨을 느꼈다.
와... 또 뭔데?
남편은 교토와 오사카를 잇는 교토 지하철에 내 노트북과 3명의 여권과 아기 기저귀가 든 백팩을 놓고 내린 것이었다. 이게 두 번째 멘붕이었다.
남편은 나에게 빨리 '오사카에서 여권을 잃어버렸을 때'를 검색해서 여권을 새로 발급받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카지노 게임. 자신은 일단 지하철 분실물 센터 위치나 지하철 역사에 연락을 취해보겠다고 카지노 게임.
일단 우리는 아기를 데리고 다시 지하철 역사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의 되지도 않는 일본어로 "방금 내린 기차에서 백팩을 놓고 내렸다. 분실물 센터에 갈 수 있는지, 혹은 어떻게 백팩을 찾을 수 있는지 알려달라"라고 했다. 역무원은 이런 일이 매우 자주 일어난다는 듯 시크하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분실물 센터의 위치와 전화번호가 쓰여있는 종이였다. 우리의 가방을 적극적으로 찾아줄 태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에 우리는 일단 여권 발급부터 받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선 경찰서에 가서 여권 분실을 신고하고, 오사카 난바에 위치한 영사관에 가서 긴급 여권을 발행받으면 된다고 하였다. 블로그에서는 긴급여권을 1시간 만에 발급받을 수 있다는 글들이 많았고 우리는 "그래~ 뭐 어렵지 않네"라며 아기를 데리고 난바 투어를 할 겸 경찰서와 영사관에 가기로 했다. 다행히 경찰서와 영사관은 비슷한 장소에 붙어있었다.
경찰서에서 여전히 되지도 않는 일본어로 가방을 잃어버렸다, 여권도 잃어버렸다고 이야기를 하고 파파고로 겨우겨우 소통을 해서 여권 분실증을 받았다. 사실 난 3년여 정도 교토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는데, 너무 어릴 적이라(3살~6살) 일본어를 거의 못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어쨌든 3년이나 거주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리스닝은 되는 편이었는데, 이날 너무 긴급하다 보니 내 안에 있던 소울적인 일본어가 튀어나오면서 꽤나 유창하게 분실물에 대해 설명할 수 있었다.
남편은 나에게 "어? 일본어 꽤 하잖아"라며 내가 멋있어 보였다고 카지노 게임.
나름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경찰서에서 분실물 접수도 했겠다, 영사관도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 있겠다, 우리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경찰서에서 영사관까지 가는 15분 정도의 길거리에서 우리는 "와~ 우리 이제 이 정도 일도 잘 해결하고, 진짜 문제 해결력이 엄청난 것 같아"라면서 기분이 좋기까지 카지노 게임.
우리는 연말연시에 여행을 왔다는 걸 잊고 있었던 것이다. 영사관 앞에는 철장이 내려와 있었고 안내문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철장이 닫힌 것을 봤을 때부터 나는 무언가 일이 잘 안 풀릴 것이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영사관 앞에는 문을 지키는 경찰들 2명이 서있었고, 안내문에는 연말연시로 인해 12월 30일부터 1월 6일까지 영사관은 운영하지 않는다는 글이 쓰여있었다. 그날은 12월 30일이었고 우리는 1월 2일 비행기로 돌아가야 카지노 게임.
6일까지 열지 않는 영사관 철장 앞에서 우리는 세 번째 멘붕을 카지노 게임.
오사카에서 혐한 시위가 열린다는 것을 뉴스로 듣긴 했지만, 실제로 본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오사카에 온 첫날이었으니까) 대한민국 영사관 앞이라 그런지 혐한 시위 트럭이 있었다.
교토에 3년 간 거주했던 나는 말했다시피 리스닝이 잘되는 편이었다. 트럭에서 두 명의 사내는 "캉코쿠진은 한국으로 돌아가라~~"(정확한 일본어는 몰랐으나 대충 이런 뜻이었음)라는 말을 확성기로 크게 말했다. 3명의 여권을 잃어버린 우리 가족은 정말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제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혐한 시위 트럭 앞에서 나는 읊조렸다.
영사관 앞에 경찰 2명에게 방법을 물었는데 표지판 밑에 쓰여있는 '긴급 전화'에 전화해 보라고 카지노 게임. 남편을 돌아보니 남편은 그 표지판에서 긴급 전화를 찾아서 이미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문제를 발생시키기는 했지만, 문제해결은 참 잘하는 남편이었다.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어쨌든 문제는 해결될 것 같았다.
남편은 "와 다행이다. 내일 아침 9시까지 준비물 챙겨서 오래"라고 말카지노 게임.
어쨌든 내일 오전 9시까지는 우리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긴급 여권을 다시 만들려면 필요한 것들 -경찰서에서 받은 분실물 신고서, 현금 - 등을 챙기고 나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일단 밥을 먹고 다시 분실물 센터에 가보기로 했다. 오늘 중으로 가방을 찾는다면 긴급 여권을 다시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리고 이제 여차해도 긴급여권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급한 불은 끈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난바 역에서 호라이 만두를 먹었다. 이 만두는 정말 역대급으로 맛있었고 인생 만두가 탄생카지노 게임.
파워 J인 남편은 오사카의 첫날(계획상으로는 둘째 날이었다) 도톤보리강 리버 크루즈를 예약해 놨고, 사실 다음날 긴급 여권을 만드는 것 외 딱히 할 것도 없었던 우리는 여권이 없는 신분인 채로 도톤보리강 크루즈를 탔다.
역시나 '탈 것'에 꽂혀있던 아기는 배를 타며 "물! 물!"을 연신 외쳐댔고 영혼이 세 번 탈곡된 우리는 도톤보리강 크루즈에서 흘러나오는 팝송들을 의미 없이 들으며 강물을 쳐다보았다. 그 와중에 "만약 내일 영사관 갔는데 긴급 여권 안된다고 하면 어떡하지.." 등등의 최악의 시나리오를 세워보면서 우리는 숙소로 돌아갔다.
다음날 또다시 어제와 똑같은 루트로 오사카 영사관을 방문했다. 다행히 우리의 최악의 시나리오는 실행되지 않았고, 우리 팀 외에도 이미 2팀이나 여권을 잃어버려서 다른 팀들과 함께 여권을 만드는 절차에 착수했다. 신고서를 몇 가지 쓰고, 영사관 안에 위치한 사진기로 사진도 찍고, 3명의 긴급 여권을 만드는데 20만 원 정도를 지불하고, 블로그에 나와있던 것처럼 1시간 정도 지나자 긴급여권이 발행됐다.
다시 한번,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나와주셨던 오사카의 대한민국 영사관 직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렇게 이번 여행에서의 '바보 비용'에 교토에서의 체크인 실수로 인한 50만 원과, 긴급 여권을 발행하는데 쓴 20만 원이 추가되었다.
다음날은 오사카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었으므로, 사실상 이날이 오사카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래서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혹시라도 모르니 교토 지하철 분실물 센터에 가보기로 했다. 긴급 여권은 이미 만들었으니 가방을 찾아도 여권은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안에 여분의 아기 기저귀와, 내 노트북이 있었고 남편의 백팩 역시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었다.
사실 내 노트북도 이미 사용한 지 3년 정도가 지나있었고 복직을 한 후 회사에서 지급한 노트북은 집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특별히 간절한 마음은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마음으로 교토 지하철 분실물 센터를 찾았고 이미 경찰서와 난바 분실물 센터 등에서 "교토 지하철 OO역에서 까만 백팩을 잃어버렸어요. 까만 백팩 안에는 노트북과 여권이 들어있습니다"라는 문장을 일본어로 외우고 있었다. 그래서 교토 지하철 분실물 센터에서 유창하게 그 문장을 말할 수 있었고, 분실물 센터 직원 분은 매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시면서 내 이야기를 들으셨고, 결국 우린 그 가방을 찾았다!
분실물 센터 직원분은 이미 그 가방이 내부에 도착한 것을 알고 계셨을 것 같은데, 우리가 와서 '검은색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하니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시면서도 차근차근 그 가방의 브랜드와 색깔, 안에 들어있는 여권의 개수와 이름 등을 물어보셨다. 정답을 모두 맞힌 후 우리는 내부 창고에서 검은 가방이 나오는 것을 봤고, 나와 남편, 20개월 아기도 함께 소리치면서 가방을 맞이했다.
이후로 아기는 집에서도 이 가방만 보면 "아빠아빠!" 하면서 꼭 챙기라는 메시지를 잊지 않는다.
이번 여행을 마치고 나뿐 아니라 멘털이 강한 남편 역시 멘털이 탈탈 털린 게 느껴졌다. 20개월 아기와 해외여행도 모자라 호텔 체크인을 잘못해 멍청 비용을 지불하고, 3명의 여권과 노트북을 분실하고, 결국 긴급 여권을 발행했는데 또 그 가방을 찾은 여정이라니.
남편은 "이제는 여행 가자고 안 할게"라고 말했다.
여권이 6개가 되자, 나는 드디어 여행을 가지 않을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