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달라짐을 매번 느끼는데, 이번에 친구들과 나눈 대화는 그중 가장 특이했다. 그 대화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리에겐 모두 무료 카지노 게임 같은 순간들이 있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싶을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나의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때 공부밖에 할 줄 모르던 나는, 당연히 중학교에서도 공부만 했다. 선생님들에게 인정받는 모범생이었고, 친구가 많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감사한 삶이었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인 나에게 ABC가 찾아왔다.
우리 반에는 흔히 일진이라고 불리는 학생이 있었는데, 그 무료 카지노 게임가 나의 짝이었다. 담임 선생님의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드라마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문제 학생과 모범생의 만남이었다. (드라마와 다른 설정이 있었다면, 내 짝은 여자였고 굉장히 왜소했다.)
그 친구는 늘 학교에 늦게 등교했고, 수업은 당연히 듣지 않았다. 그런 그 친구의 눈에는 내가 참 신기하게 보였던 것 같다. 늘 공부만 하고, 수업 시간에 졸지도 않고 꼿꼿하게 앉아 수업을 듣는 내가 이상해 보이기까지 했던 것 같다. 늦게 오는 짝과 변함없이 수업을 듣는 나의 날들이 흘러가던 중, 갑자기 짝이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수업을 열심히 듣는 나를 부르고 교복 셔츠를 걷어올려 나에게 ABC를 보여주었다.
무료 카지노 게임가 무엇인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건 바로 자해흔이다. 나는 그때 당시에 자해라는 단어를 알지도 못했다. 들어본 적도 없었다. 자신을 향하는 힘든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낼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던 것 같다. 그 후로 나에게는 무료 카지노 게임 같은 순간이 시작되었다. 나의 일탈이 시작된 것이다.
매일 나는 내 짝이 등교하기를 기다렸다. 언제라도 좋으니 일단 학교에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어려움을 담임 선생님께 알리고 늘 같이 앉겠다고 했다. 느지막이 학교에 도착하는 짝을 만나면 수업은 뒷전이 되었고 그 친구의 안부를 살폈다. 처음에는 조금 잔인하고 징그러워 보였던 그 친구의 상처를 매일 확인하는 일이 나의 의무처럼 여겨졌다. 여전한 상처에 왜 그랬냐고 따져 묻기도 하고, 그러면 안 된다고 혼내기도 했다. 조금 옅어진 상처에는 칭찬해 주면서 나와 그 친구의 시간은 쌓여만 갔다.
그렇게 잔소리를 하는 동안 나는 많은 수업을 흘려보내야 했다. 범생이가 수업을 듣지 않고 떠드는 걸 분명 선생님들은 아셨을 텐데, 그때 왜 그냥 지나가셨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무료 카지노 게임를 챙기느라 듣지 못했던 수업은 집에 와서 메워야만 했다. 엄마, 아빠가 떨어진 내 성적을 보며 슬퍼하지는 않았으면 했기 때문에. 그 덕분에 몸이 두 배로 바빴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게 열심히 그 친구를 챙기던 기억은 선명하다. 나에게 "무료 카지노 게임 같은 순간"이란 그런 것이다. 앞뒤 가리지 않고 친구가 정말로 건강했으면 하는 마음, 오늘도 내일도 아프지 않게 만났으면 하는 마음. 나 때문에 자해를 멈출 수 있다면, 몇 번이고 잔소리를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채워진 시간이었다. 그런데어른이 된 나에겐 이제 그런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어느샌가 나보다 더 중요한 타인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아주 짧은 찰나의 인연이었어도 나는 그 친구를 꼭 지켜내고 싶었다. 히어로도 아닌데, 생각해 보면 중학교 1학년 학생이 꿈꾸기엔 너무 거창했던 목표는 아닌가 싶다.
중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그 짝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한 학년이 11반이나 되는 큰 학교에 다녔던 나는 수많은 학생들 사이에서 그 친구를 자연스럽게 잊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중학교 졸업을 했고, 이제는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그 짝이 잘 지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소식을 알 방법도 없지만, 나는 내 짝이 잘 지냈으면 좋겠다.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