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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r 05. 2025

푸른발에 걸린 삽화

<단편소설. 2

“할매, 할매, 온제 왔어?”

나는 할머니의 거죽만 남은 젖을 만지며 자꾸만 할머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우리 옥이가 할매를 자꾸 찾아서 선걸음에 왔니라. 니가 열이 많이 나서 걱정 했더이 인자 괜찮것다. 낮에 엉가들이 니를 몬살고로 굴더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카지노 게임 혼잣말처럼 나직이 말했다.

“고모는 괜찮더라. 갓난쟁이도 건강하고. 그란데 우짠지 맴이 싱숭생숭 한기라. 니가 자꾸 할미를 불러서 고모 집에 못 있것더라. 집에 오길 잘 했제?”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서 할머니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할매, 누가 죽을 끼라. 아까 대밭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확 덮치는데 죽는 줄 알았다. 그래서 아푼 기라. 할매가 집에 올 줄 알았어.’ 할머니는 조용조용 내 등을 토닥거려 주셨다.


다음 날 아침 댓바람이었다. 두레상을 펴고 밥을 먹던 중이었다. 갑자기 동네를 들썩거리게 하는 곡성이 들렸다. 할머니는 ‘이기 먼 소리고?’하면서 삽짝으로 튀어나갔고, 밥숟가락을 팽개치고 두 언니도 튀어나갔다. 나도 튀어나갔지만 내 짧은 다리로는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나는 ‘할매’를 부르며 울었다. 할머니는 내 울음소리에 놀라 돌아왔다. 허둥지둥 나를 업고 다시 곡성이 울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 집 삽짝 주변은 이미 동네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구루마를 끄는 황소는 느긋하게 꼬리로 제 등을 쓰다듬으며 먼 눈 바라기를 하고 서 있었다. 구루마를 에워싼 물레방앗간 집 식구들은 오열하고 있었다. ‘아이고 아이고 내 새끼 우짜노. 이기 무신 날벼락이고. 일어나 보거래이. 야야, 일어나 보거라.’ 물귀신처럼 머리를 풀어헤친 물레방앗간 집 양촌할머니의 통곡이 하늘을 덮었다. 양촌할머니는 구루마 옆에 퍼질러 앉아 꺽꺽 이상한 소리를 냈다. 할머니는 앞집 아저씨 옆구리를 슬쩍 밀쳤고 고개를 앞으로 쑥 내미었다. 그때 나는 보았다. 할머니 어깨 너머로. 구루마에 실린 거적 밑으로 나온 시퍼런 발 두 개. 맨발이었다. 강물처럼 검푸른 빛깔이었다. 나는 눈을 꼭 감고 와들와들 떨었다. 할머니의 손이 내 엉덩이를 꽉 잡았다.


물레방앗간 집은 우리 마을에서 가장 부자였다. 카지노 게임, 그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이 하던 물레방앗간의 머슴이었다. 해방이 되자 일본인이 두고 간 집과 물레방앗간을 차고 앉아 부자가 되었다. 아래위채 날아갈 듯 멋진 기와집이었고, 솟을 대문이 우뚝 섰지만 사람들은 그 집 앞을 지나다니길 꺼렸다. 소작농으로 사는 동네 사람들에게 그는 자린고비였다. 싸라기 쌀조차 고리채를 받았다. 카지노 게임은 보통사람보다 큰 키에 다부진 몸이지만 염소수염을 하고, 머리에는 유건만 썼다. 쥐꼬리만큼 붙은 허연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며 거만하게 뒷짐을 지고 다녔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업신여기며 ‘노랭이’라 부르며 조롱했지만 그 앞에서는 깍듯이 양촌어르신이라고 부르며 고개를 숙였다.


양촌어른은 동네 앞을 흐르는 도화강가에 물레방앗간 두 채를 가지고 있었다. 인근 마을 사람들은 모두 양촌어른의 물레방앗간을 이용하여 쌀, 보리쌀, 밀 등, 곡식을 빻았다. 자린고비로 소문난 양촌어른보다 양촌할머니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 집 살림을 주관하는 것은 양촌어른이 아니라 일찌감치 언문을 익혔던 양촌할머니였다. 양촌할머니는 이 씨 가문의 몰락한 양반의 후예라고 했다. 양촌할머니는 아녀자도 배워야 한다는 아버지 덕으로 집에서 천자문을 읽었고 일본인이 만든 공립 초등학교였던 일신학교를 다녔다.

양촌할머니는 열일곱 살에 지리산 함양 땅에서 산청 땅 우리 동네로 시집을 왔다. 양촌어른과 달리 후덕했다. 자그마한 몸집에 동글동글한 얼굴, 총기어린 작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나 범접하기 어려운 야무진 구석이 엿보였고 기품이 있었다. 뽀얀 피부에 미인은 아니었지만 귀여운 생김새였다. 어려서부터 사람들은 그녀가 채송화를 닮았다 해서 채송화라 불렀다. 양촌할머니는 시집을 와서도 채송화 마님으로 통했다. 그녀는 양촌어른 몰래 소작인들이나 가난한 이웃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했다. 그 집이 잘 사는 것도 양촌할머니 덕이라고 했다.


우리 동네에서 공처가 이야기만 나오면 단연 양촌어른이다. 양촌어른이 양촌할머니께 꼼짝을 못하는 이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지만 한 탯줄에 아들 다섯을 줄줄이 낳았기 때문이다. 여자는 출가를 하면 그 집안의 대를 잇는 것이 의무사항이었으니 말해 무엇 하랴. 사실 새댁시절 양촌할머니는 소박데기 될 뻔했다. 양촌할머니는 시집오자마자 병명도 없이 시름시름 앓았다. 물론 3년이 지나도록 태기도 없었다. 양촌어른의 부모님은 아들에게 집안의 대 끊어지게 생겼다고 첩을 얻던지 새장가를 가라고 닦달했다. 양촌할머니는 뿔났다. 친정으로 피정을 가버렸다.


양촌할머니의 친정 인근에 금오암이라는 오래된 절이 있었고 친정 부모님은 그 절의 독실한 불자셨다. 양촌할머니 역시 어려서부터 그 절에 다녔다. 금오암 주지 스님의 양딸이라고 알려졌을 정도다. 시댁에서 도망치다시피 친정으로 떠났던 양촌할머니의 의지 처는 부처님이었다. 날마다 그 절에 가서 기도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댁으로 돌아갈 염치도 없어 아예 그 절에 눌러앉아 삭발을 할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었다. 새댁은 싱숭생숭 하는 마음을 다잡으며 또 금오암에 올라갔다. 부처님 앞에 앉으니 서러움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새댁은 울면서 백팔 배를 했다. 백팔 배를 하다가 기진하여 부처님 앞에 쓰러졌다. 비몽사몽간에 꿈을 꾸었다.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작은 호리병 다섯 개를 주며 네가 있을 자리로 돌아가라 했다. 호리병 다섯 개를 품에 안고 깜짝 놀라 깼다. 백팔 배를 마치고 나와 주지스님께 꿈 이야기를 했다. 주지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채송화야, 이제 네 업이 다 풀렸나 보다. 사실 그 집안에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 있다. 그 귀신이 너를 붙잡고 안 놓아준 탓에 아팠다. 이제 너의 수호신장이 튼튼해졌다는 뜻이다. 너의 수호신장이 관세음보살님이라니 어찌 부처님의 가피가 아니겠나. 이제 모든 일이 술술 풀릴 것이니 시댁으로 들어갈 일만 있을 게다. 시부모님께 잘 하고 남편에게도 잘 해야지. 집에 가면 아마 좋은 일이 있을 거다. 다만 한 가지 잊지 마라. 첫 아들은 용왕님께 바쳐야 집안에 우환이 없을 게야. 잊지 마라. 또한 해마다 도화강에 용신제를 지내야 한다. 꼭 명심해야 하느니라.”


그 날 양촌할머니가 절에서 돌아오니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양촌어른이었다. 친정집에서 두 부부가 합방을 했다. 양촌할머니는 남편을 따라 시댁으로 들어갔다. 시댁 식구들의 눈칫밥을 먹는 것도 잠깐이었다. 입덧을 했고, 그해 겨울에 옥동자를 분만했던 것이다. 양촌할머니는 첫 아들을 안고 금오암을 찾아갔다. 용왕님께 바친다는 뜻으로 삼신 각에 아들의 이름을 올리고 금오암 주지스님 주선으로 정갈하게 제수거리를 준비해 도화강에 가서 용왕제를 지냈다. 아들은 튼실하게 잘 자라주었고 내리 4형제를 더 낳았다. 양촌할머니는 딸이 한 명만 있었으면 하다가도 이것도 오감타 싶어 욕심을 접었다.

“여자가 한을 품으모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안 카드나. 그 말이 딱 맞는 기라. 상후 어매가 오죽하모 집을 나갔것나. 노랭이가 올매나 며느리를 못 살게 굴었시모 그랬시까. 보물 훔쳤다는 것은 누명이고 아들이 집을 비우모 며누리 방에 들어갔다는 기라.”

“쉬,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요. 마님 귀에 들어 가모 우짤라꼬.”

사람들이 수군수군 했다. 나는 시퍼런 발을 더는 볼 수 없어 할머니 등에 얼굴을 파묻고 사람들 수군거림을 들었다. 양촌할머니의 큰 아들 이름은 용덕이다. 용왕님의 덕으로 태어난 아이라는 뜻이었다. 용덕이는 양촌어른의 뒤를 이어 물레방앗간 주인이 되었다. 그 용덕이가 방앗간 물레에 빨려 올라가 비명횡사를 한 것이다. 그 곳에 용덕의 아내는 없었다. 용덕의 아내는 시골에서는 보기 드물 정도로 미인이었다. 타지에서 들어온 여자였다. 읍내에 다방이 처음 생겼을 때 다방 아가씨로 들어왔다. 용덕이 첫눈에 반해 쫓아다녔고 양촌어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감행했다. 그들 부부 사이에 상후가 태어났다. 나랑 동갑내기였다. 그녀는 시댁에 들어왔지만 3년을 겨우 채우고 어린 아들만 남겨놓고 제 발로 시댁을 나갔다. 일설에는 양촌어른이 쫓아냈다는 소문이었다. 그것도 집안의 보물을 훔쳤다는 누명을 씌워 쫓아냈다는 것이다.


“용왕님 덕 좋아하네. 해마다 고사상이 떡 벌어지도록 치성을 드린 결과가 이겁니꺼? 상후 에미 쫓아내는 기 용왕님 덕입니꺼? 인자 용왕이고 지랄이고 없십니더.”

용덕은 술만 들어갔다 하면 집안을 발칵 뒤집어엎었던 것이다. 그 용덕이가 죽은 것이다.

그때 나는 상후를 봤다. 할머니 등에서 고개를 살며시 들고 그 집 대문간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졌다. 내가 할머니 등에서 비명을 지른 것은 달구지에서 쑥 나와 있는 시퍼런 두 발 때문이 아니었다. 대문간에서 웃고 있는 그 아이 때문이었다. 상후였다. 조부모 손에 자라는 그 아이는 집안 식구들이 모두 나와서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데도 너무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의 등 뒤로 검은 그림자가 우뚝 솟았다. 그 아이를 집어 삼키는 검은 동공이었다. ‘아악 아악!’ 나는 할머니의 등을 마구 두들기며 발악을 했다.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의 눈동자가 할머니와 내게 쏠렸다. 나는 기절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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