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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디김 Feb 11. 2025

유전을 지닌 카지노 게임

아이들과 남은 시간 D-9년, 두 번째 이야기

저녁 9시쯤. 외출을 하고 돌아오니 카지노 게임는 전자레인지 앞에 서서 타이머가 멈추길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에 출근 복장 그대로다. 역시 퇴근 후에 씻지도 않고 허기부터 채운다. 내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맘껏 먹방타임을 가진 것이다.


“여보, 저녁 못 먹었어? 뭐 해 먹는 거야?”


“계란찜. 내가 간편하게 요리하는 법을 알아냈어.”


잠시 후 타이머가 멈추고 카지노 게임가 머그컵을 꺼냈다. 머그컵에는 폭신폭신한 계란찜이 담겨 있었다. 숙제를 하고 있던 아이들은 눈빛이 달라지더니 전자레인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 입만 달라고 아우성이다. 셋이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세 카지노 게임 또 먹방타임이네. 그럼 그렇지. 내가 없는 틈만 생기면 봉인해제지. 그런데 계란찜이 참 예쁘게는 담겼네. 이건 어디서 배운 거야?”


“유튜브에 계란찜 영상이 떴더라구.”


“그런 영상이 왜 떴을까?”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나는 맨날 건강 영상이나 패션 영상 같은 게 뜨는데 말이야.”


“글쎄. 나도 몰라 그냥 뜬 거야.”


“그냥은 무슨, 허구한 날 먹방 영상 보고 있는 거 아니야? 오빠 영상 올라오는 거 보면 먹방 아니면 유치한 개그 영상 같은 것만 뜨던데. 지난번에는 한동안 계란찜을 밥그릇에 해 먹더니, 이번에는 머그컵에 만들어 먹는 영상이 떴나 봐?”


카지노 게임는 흠칫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바로 두 번째 계란찜을 만들고 있다. 저렇게 몇 번은 반복할 태세이다. 1인 가구도 아니고 도대체 머그컵에 무슨 짓이지? 애초에 큰 그릇에 하지..


세 남자가 좀비처럼 머그컵 하나에 달려드는 것을 뒤로하고 나는 샤워를 하러 욕실로 향했다. 샤워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려고 보니 역시나 여러 가지 먹방 실험을 했는지 설거지거리가 더 늘었다. 보너스로 눌러버린 계란찜의 흔적까지.. 어휴.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군. 계란찜 용기가 되어버린 머그컵에 물을 채워 넣었다.


“여보, 여기 와봐!”카지노 게임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왜? 나 바쁜데. 설거지하고 있잖아.”


“왜 내 베개만 이렇게 된 거야?!”


베개? 오호, 그걸 지금 발견하셨어? 짐작이 간다. 나는 설거지를 멈추고 침실로 갔다.


카지노 게임는 침대 옆에 서서 의문의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리고 그 의문스러운 표정을 만든 대상은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비교라도 하듯 나의 베개와 나란히 있는 카지노 게임의 배게. 카지노 게임의 베개는 개화기 시대부터 물려 내려온 베개인지 색이 누렇고 거멓게 변해 있었다. 분명히 나의 베개와 같은 색이었을 것이다. 누렇게 변해버린 것은 베개뿐만이 아니었다. 침대시트 중 반을 딱 잘라 카지노 게임가 누웠던 자리만 누렇게 물들어 있었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기에 나는 이제 놀랍지 않다. 물론 불가사의한 광경을 처음 접했을 때는 놀라서 소리까지 질렀다. 비명에 가까운 소리는 1초도 지체 없이 터져 나왔다.


그 사건은 신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침대시트를 정리하고 있는데 초록색 이불패드 아래 새하얀 침대시트가 절반만 초록색으로 물든 것이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옷을 벗지 않고 그대로 누운 것처럼.어떻게 침대시트 절반이 초록색이 되었지?카지노 게임의 몸에서 초록색 물질이 나오나? 카지노 게임는 헐크나 슈렉의 동종인 것일까?


“역시 여보는 유전이 아직도 풍부해. 몸 자체가 중동이라니까!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기름이 많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 채식을 좀 해 보는 것은 어때? 베개며이불이며 이거 어떻게 세탁을 하나...”


"아니.. 기름이 아니고 땀 일거야. 사람 몸에서 기름이 이렇게 나올 수가 있나..? 카지노 게임들이 원래 땀이 많잖아."


"그런데 꼭 기름때 같아. 결정적으로 세탁이 안 된단 말이야. 세탁기에 돌려도 소용이 없다니까. 땀이면 어느 정도 제거가 되지 않아?"


나는 말을 하면서도 비위가 상하고 머리가 지끈거려 양 검지 속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계란찜 먹방만 보지 말고 기름인지 땀인지에 쩔은 침대시트는 어떻게 세탁하는지 좀 봐봐. 이거는 옷처럼 부피가 작은 게 아니라서 과탄산수소에 담가놓을 수도 없어. 이 거대한 것을 도대체 어디에 담그냔 말이야? 우리 집에 그런 큰 대야도 없고. 여보를 위해서는 검은색 베개나, 검은색 시트가 필요한데 말이야. 드라큘라나 누울만한 그런 시커먼 베개나 시트는 팔지를 않아. 그런 사업을 해보는 것도 좋겠어. 남자들 중에는 당신처럼 몸 전체가 중동인 사람들이 많을 거 야냐? 그런 중동계를 위해 검은색 베개와 검은색 시트를 파는 거지. 나 같은 여자들은 아마 구매할 거 같아. 아, 이 시트 버려야 할까?”


아이들을 대화 소리를 듣고 역시 재미난 구경거리는 절대 놓칠 수 없다는 듯 경쟁하듯 침실로 들어왔다. 달려오면서도 소리를 지르듯 웃고 있다.


“우웩! 이게 뭐야?! 아빠, 어떻게 이렇게 더럽게 된 거야? 저번에도 엄마가 아빠 베개커버 버렸는데 이번에도 또 버리는 거야?”


쌍둥이들은 이제 서로 배까지 잡고 깔깔대고 있다. 숙제고 공부고 아예 잊은 듯하다. 집중력을 흐트러트리는 데는 역시 제이가 최고다. ‘제이의 퇴근이 늦어질수록 아이들의 학습 집중력이 높아진다’ 이런 데이터는 장기간에 걸쳐 켜켜이 쌓여 믿을 수 있는 통계결과가 되었다. 역시 제이의 귀가가 늦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제이는 집을 너무 좋아한다. 놀고 오라고 해도 집으로 직행이다. 아이들의 학습에는 바람직하지 않다.


“당신이 고기를 그렇게 좋아하고 주말마다 치킨에다가 계란에다가 온통 육식을 해서 몸에 기름이 풍성한 거 아닐까? 이 기회에 채식을 좀 해 보면 어때? 내가 저번에 3개월간 완전한 비건을 해봤잖아. 요즘은 비건식품이 많아서 그리 어렵지도 않아.”


카지노 게임는 아직도 침대 위의 베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넋이 약간 나간 듯하다(본인도 본인의 정체를 의심하는

듯. 슈렉? 헐크?).


“엄마, 우리는 이제 채식 안 할 거야. 나는 고기가 그렇게 맛있는 줄 몰랐어. 집에서 채식할 때 학교에서 급식을 5번이나 타 먹었어.”


서준이가 또박또박 반박한다.


“급식이 얼마나 좋니? 영양사가 영양소를 고려해서 짜 놓은 식단이니 골고루 많이 먹어. 그것도 다 엄마, 아빠가 낸 세금으로 먹는 거니까 엄마가 차려준 거나 마찬가지지. 그런데 5번을 타 먹는 것은 좀 심하지 않니? 고기도 먹고 싶으면 맘껏 먹으라니까. 엄마는 자궁근종도 있고, 건강 때문에 채식을 하는 거라 했지? 너네는 건강하고 성장기니까 아무거나 먹으라고 했잖아.”


“엄마가 매일 두부만 해주잖아. 고기도 좀 사다 놓으란 말이야.”


“식물성 단백질이 얼마나 좋은데? 너 저번에 본 다큐 벌써 잊은 거야? 잊은 것 같은데 다시 한번 같이 보자. 엄마도 요즘 해이해졌는데 채식이 얼마나 좋은지 다시 한번 세뇌당해야겠어. 세뇌에는 다큐가 최고야."


“아냐, 나는 절대로 안 볼 거야. 그거 보면 또 채식에 빠져들게 돼.”


“어휴, 알겠어. 고기는 꼭 사다 놓을 테니 하던 숙제나 마저 해.”


카지노 게임들은 다들 이렇게 기름인지 땀인지 정체 모를 엄청난 양의 물질이(배게와 시트를 버려야 할 정도로) 몸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렇다면 정말 드라큘라가 누울만한 검은색 베개와 시트사업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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