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에는 집과 직장을 오갈 뿐이다. 주말에도 외출은 거의 하지 않는다. 가끔 옛 직장 동료나 몇 안 되는 친구들이 만나자는 연락을 해오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룬다.
가끔, 이렇게 살아도 될까—라는 의문이 든다. 이토록 철저히 고립된 채 살아도 괜찮은 걸까? 관계에서 얻는 중요한 무언가를 죄다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말년에 주변에 아무도 없는 채로 고독사를 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돌발상황이 빗발치는 바깥세상과 속내를 가늠할 수 없는 타인—그것은 예측할 수 없고 위험하며 혼란을 야기한다. 소심하고 내구성 약한 인간으로서는 본능적으로 비켜서게 된다.
또한 나는 대부분의 인간이 장착하고 있는 정신적 필터 같은 게 선천적으로 결여되어 있었다. 무심한 말 한마디, 스치는 시선, 미묘한 뉘앙스, 숨어있는 본심과 감춰진 욕망까지— 모른 척하거나 지나쳐도 되는 것마저도 예민한 감각 촉수에모조리걸려들었다. 두뇌는 사정없이 밀어닥치는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느라 항시 과부하 상태였다.
그러니까 모든 문제의 발단은, 내가 태생적으로 덜 떨어진 인간이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억울한 지점은 여기에 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그냥 이렇게 태어나 버렸을 뿐이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라는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면,솔직히 말해 이 의문은 단 한 번도 깨끗이 해소된 적이 없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늘 미래의 나를 그리며 살아왔다. 마흔 살 넘어까지 독불장군처럼 혼자골방에 틀어박혀 살게 될 거라고는예상하지 못했다. 이것은 전혀 기대하지 않은 모습이다.
그러니까 이 나이쯤 되면, 당연히 결혼도 하고자식 낳아 어지간히 키운모습을 짐작했다. 그도 아니면,책도 몇 권 내고 글로 밥벌이를 하는 그럴듯한 작가로 사는 모습을 꿈꿨다.
두 가지 삶은 여전히 오지 않은 미래의 상태로, 현재의 나와 한없이 동 떨어져 있다. 여전히 오지 않았다는 표현은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는 뉘앙스인데—맞다. 비루하게도 나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영혼의 동반자를 만나고 싶다거나 작가가 되겠다는 그 반짝이는 희망을, 청춘이 다 지나간 낡아버린 마음 한구석에 여전히 품고 있다.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희미해져 간다.갈수록 또렷해지는 건, 내가 늙어가고 있고앞으로 더 늙을 일만 남았다는 점이다.
그렇다. 카지노 게임에게 밝고 충만한 미래 따위는 없다.
나는 옛날처럼 방구석에 틀어박혀 혼자 사부작대고만 있다. 변한 건 하나도 없고, 더 무서운 사실은카지노 게임 기질은 점점심해져 전보다 더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나를 보면 아직 늙지 않은 젊은 카지노 게임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절망과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나를 반면교사 삼아 이제라도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결심할지도 모른다.
몰입할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이 막막한 시간을 잘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딱히 하고 싶은 게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 나는 좋아하는 게 없는 모양이라고 쉽게 단정 짓기도 했었다.
하지만 누군가,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봐. 정말 없어? 제대로 찾아본 거 맞아?라고 묻는다면, 물론이지! 하며거침없이 반박할 수는 없었다. 솔직히 말해,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치열하게 들여다보고싶지 않았다. 어려운 시험 문제가 눈앞에 놓여있는 것처럼골치가 아팠다. 그냥 누군가 재밌다고 하거나, 많이들 카지노 게임 것을 따라 카지노 게임 편이, 훨씬 쉽고 편했다.
유행하는 취미생활은 이것저것 다 찔러봤다. 요가와 필라테스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한창 인기가 있을 때 나도 그 무리에 섞여 열심히 강습을 들으러 다녔다. 다음엔 러닝이 인기라고 해서, 한동안은 매일 한강공원에 뛰러 나갔다. 사람들이 그룹으로 달리는 모습을 보고 어쩐지 멋져 보여서 러닝크루에도 참여했다. 독서토론 모임 플랫폼이 붐을 이루자 비싼 참가비를 꼬박꼬박 내가며 주말 오전을 바치기도 했다. 수채화와 캘리그래피를 배웠고, 온갖 자잘한 원데이 클래스도 섭렵하고 다녔다. 그 어떤 것도, 열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흥미도 금세 사라졌다.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나는 결국 남이 만들어 놓은 선택지 안에서 적당히 고르고 있었을 뿐이다.
어느 한계점에 다다랐는지, 외롭다, 지루하다 따위의 말만 되뇌며 챗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갇혀 지내기가 시험 문제 풀기보다 더 괴롭게 느껴졌다.벼랑 끝에 몰린 기분으로 여태껏미뤄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즐거울까?
언제 마음이 가장 편안할까?
정말 좋아카지노 게임는 것은 내게 어떤 감각일까?
왜 이 일은 유독 힘들까?
나를 지치게 카지노 게임 것은 무엇일까?
어릴 때 좋아했던 것들, 시간을 보낼 때 유난히 몰입했던 순간들을 떠올려 봤다. 무심히 넘겼던 취향과 성향도 들여다봤다. 처음에는 재밌다가 나중에 시들해지면, 왜 그렇게 되었을까? 곱씹어 봤다. 대체적으로 즐거운 활동이라도 어떤 부분이불편하거나 거슬리면그냥 넘기지 않았다. 예외 없이,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내가 중간에 흥미를 잃는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원인은 그것에의미가있다고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도파민을 즉각적으로 분출시키는 흥밋거리는 특히 그랬다. 그것들은마취제 같아서 잠깐동안 괴로움을 잊게 할 뿐이었다.망각의 세계에서 빠져나오면,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어떤 감정도근본적으로해소되지 못한 채 남아있었다. 그걸 실감할 때마다 깊은 공허감이 들었다.
나에게는 의미가 중요했다.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기본이지만, 단발적인 쾌락이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만족과 서서히 쌓이는 충족감을 원했다. 현실을 외면하는 방식이 아니라 동행하고 싶었다. 너저분한 쓰레기 더미 같은 삶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서 한 줌의 의미랄까 본질이랄까 뭐가 됐든 가치 있는 무언가를 건져 올리고 싶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런걸 고민카지노 게임과정에서나를 괴롭히던 불안의 실체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카지노 게임이란 녀석은,혼자든 함께든, 카지노 게임든 바깥순이든, 내향인이든 외향인이든 — 누구에게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인생이란 도무지 계획한 대로,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합격을 확신했던 시험에서 떨어지거나공들여 일한 프로젝트가 한순간에 엎어지기도 한다. 오랜 관계는 예고 없이 틀어지고, 기대하던 내일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찾아온다.
무엇보다 내게 가장 카지노 게임한 순간은 아직 닥치지 않은, 한 치 앞도 모를 미래를 떠올릴 때였다. 그러니까 그 감정 속에는항상무언가 갈망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 나는 늘 가능성이라는 넓은 영역에 뿌리를 두고 뭔가를 끝없이 소망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원하는 것을 손에 얻기 위해, 꿈을 꾸고 희망을 품었다. 허름하고 초라한 현실을 버틸 수 있는 것은 그 덕분이다. 하지만 그 갈망의 끝자락에는 늘 불확실함이 서성였다. 흐릿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꿈은, 나를 설레게 만들면서 동시에 카지노 게임하게 했다.
나를 살게 하는 희망과 나를 죽게 하는 불안은 그렇게 맞닿아 있었다. 둘 중 하나를 떼어낼 수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불안을 없애려 했지만, 그러려면 아무런 꿈도, 희망도 품지 않아야 했다. 그렇게 말라비틀어진 상태로 살 수는 없었다. 나는 여전히 꿈꾸고, 희망을 품고 싶었다.
불안은 없앨 수 없는 것. 그저 살살 어르고 달래 가며 함께 가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나는 받아들였다.
어릴 적,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글 쓰는 직업은 꽤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진짜 이십 대 후반에 소설을 써보겠다고 덤벼들었는데 막상 해보니하나도 멋있지 않았다. 맨날책상 앞에 몇 시간이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어야 하는 게 제일 괴로웠다. 작가로 사는 일이 평생 고3 수험생처럼 지내야 하는 거라니, 눈앞에 까마득했다. 그런데다 나름 심혈을 기울이는데도 형편없는 글만 써지니열등감만 차곡차곡 쌓였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서 왜 이토록 쓰는 일이 괴로울까? 나는 정말 글쓰기를 사랑해서가 아니고, 그냥 글 쓰는 모습이 멋져 보여서, 좀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것이었다. 쓰는 행위와 과정을 즐기는게 아니라 남에게 인정받는 순간만을 동경하고 있었다.
나는 얼마 안 가 나가떨어졌다. 작가라는 꿈은, 마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장래 희망란에 대통령이 되겠다고 적은 것만큼이나 사유 없고 치기 어린 어린 시절의 꿈 정도로 취급하며 의식 저 멀리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글쓰기에서 한없이 멀어진 삶을 살았다.
캐나다에 와서 한동안 거주의 문제, 먹고사는 문제와 같은, 생존이 달린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바쁘게 살았다. 마음에 한 톨의여유가 없었다.일상이 지루한 느낌이나 삶에서 의미를 찾고 싶은 욕구는 사치스러운 감정으로, 끼어들 틈이 전혀 없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암흑의 시기가 점점 끝이 나고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낯설었던 이 나라에 얼추 적응을 했다. 영주권도 땄으며, 안정적인 직장 생활도 하게 되었다. 이민 초기에 목표로 삼았던 것을 대부분 성취한 셈이다. 그것들을 다 이루고 나면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하리라 믿었다. 막상 그게 현실로 펼쳐졌는데 기대와는 달랐다. 행복하기는커녕 어쩐지 더 막막하기만했다. 그동안은 한 지점을 향해 앞뒤 안 보고 경주마처럼 달리기만 하면 그만이었는데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목적지를 잃은 배처럼 표류하는 기분이 들었다. 평탄한 하루하루는 권태롭고 무료하기만 했다.
이곳에서는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된다. 말은 통하지 않고, 마음 맞는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이 낯선 타국은 고국에서보다 훨씬 불안을 일으키는 요소가 산재했기 때문에 바깥에 나가 혼자 뭔가를 도전하거나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 안에 하고 싶은 말들은 자꾸만 쌓여가는데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
어느 날갑자기,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할 수 없다면 글로 쓰자, 그런 마음이 저절로 생겨났다. 오래전에 해본 적이 있었으니 딱히 시작이 어렵지 않았다. 대단한 글을 쓰겠다는 열의도, 잘 써야 한다는 욕심도 없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도 않고, 바깥에 나가거나 사람을 만날 필요도 없고,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그만이니, 참으로 간편했다.글쓰기는 과거보다 지금의 내 처지에 딱 맞는 활동이되어 있었다.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싶은 신세 한탄을 글로 썼다. 누군가에게 꼭 털어 넣고 싶은 말을 글로 쏟아내고 나면 얹혀있던 체기가 가시는 것처럼 가슴이 뚫렸다. 방구석에 틀어박힌 채로도 바깥세상과 연결된 느낌이 들었다.
이전의 글쓰기가 뭔가를 성취하고 능력을 인정받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지금의 글쓰기는해방창구이자 소통의 장이 되었다. 혼자인 내게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평범한 일상과 스쳐 지나가는 생각과 휘발되어 버리는 감정이 글을 통해 비로소 생명을 얻었다.한 줌의의미를 삶 속에서 건져 올리는법을 마침내 찾은 것이다.
타국 살이의 외로움과 지루함이 내게 선사한, 유일하면서 대체불가능한 기쁨이 바로 이것이다.
집 나간 탕아나 다름없는 나를 도로글쓰기앞으로데려가 준것.
내가 글쓰기를 사랑하는 사람이어서, 좋아카지노 게임 척 흉내 내는 가짜가 아니어서, 그걸 확인하게 되어기쁘다.
혼자 있는 시간이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고독이 더 이상 버겁지 않고 나를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조용한 친구처럼 다가온다.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내 삶이 문제 투성이라고 느끼지만, 그냥저냥 잘 살아간다. 카지노 게임을 안고도 괜찮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러니 젊은 카지노 게임들아. 좋아카지노 게임 일을 찾아봐.
대충 아무거나 붙잡지 말고, 생각이라는 걸 좀 하면서 말이야.자신도 좀 들여다 보고, 내 감정이 뭔지도 알아가면서.
그렇다고 너무 힘주진 말고. 힘이 들어가면 오히려 제풀에 나가떨어질 수 있으니일단 가볍게 시작해.
과정을 즐기라는 말이 있잖아. 말이 쉽지, 그렇게 되기가 어디 쉽나싶어서 나는 참 듣기 싫었거든.
그런데 즐긴다는 건,단순히 재밌고 행복한 감정 상태에 머문다는 뜻은 아닌 것 같아.
우리가어느 지점을통과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것.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몰랐던사실을 알아가는 것.
그러면서 전보다 깊어지는 나를 인식하는 것.
이런 경험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가 '과정을 즐긴다'는 의미에 가까울지 몰라.
그러니 미완의 상태와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약해빠진 너, 모두그 자체로 괜찮다. 잘못된 게 아니라 당연한 거다.
우리는 계속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을 거야. 행운과 불운이 떠미는 대로, 불안과 희망을 동력 삼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겠지. 너와 나는 생의 소용돌이 속에서 카지노 게임인 채로도그럭저럭 잘 버텨낼 거야. 여태껏 그래왔던것처럼. 토닥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