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니나를 발표한 직후, 문학적인 명성과 창조적인 영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51세 무렵, 인생의 대전환점을 맞는다. 작가로서 최고의 명성을 얻었지만,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인생의 허무를 느끼고, 상류층의 거짓과 위선에 회의감을 느낀 그는 "인간은 왜 사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진실을 어린아이와 민중도 이해할 수 있게 동화로 집필한 것이 <카지노 게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실린 10편의 단편이다.
1910년에 자신에게 명성과 풍요, 번영, 수많은 지식을 안겨 주었던 영지와 아내를 버리고 순례자가 되어 빈손으로 민중 속으로 들어가 그들에게 실천적 사랑을 실천하고자 했던 카지노 게임는 허름한 기차역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카지노 게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수록된 10편의 소설은 톨스토이가 자살 직전까지 갔던 정신적 위기를 맞으며 사상적 전환을 겪는 과정에서 나온 치열한 고민의 산물이다. 신약성경 복음서에서 건져낸 삶의 원리와 깨달음을 평범한 민중도 이해하는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그는 이전까지 사용했던 작품의 색깔을 완전히 바꾸었다. 톨스토이가 주장하는 기독교적인 윤리관과 무저항주의가 오롯이 담긴 아름다운 소설이다.
카지노 게임은 살아가는 것일까? 살아지는 것일까? 아니면 살아내는 것일까? 고단하고 팍팍한 삶 속에서 카지노 게임다움을 잃지 않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카지노 게임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있다, <두 노인에서는 카지노 게임을 살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이때의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한한 사랑이고 일방적인 사랑이다. 위기에 처한 이웃을 지나치지 않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실천적인 행위다.
사랑이 베푸는 것이라면 풍족한 카지노 게임만이 사랑할 수 있을까? 세 편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가난하고, 빈곤한 삶 속에서도 자신을 잊지 않고 살고 있다. 추위에 떨면서도 더 추운 이에게 외투를 벗어주고, 오랫동안 돈을 모아 성지순레를 떠났지만, 가는 도중 만난 이들을 살리기 위해 오랜 소망을 포기한다. 가진 것이 부족함에도 나눔을 실천하고, 포기하면서 도와준다. 그 안에 참 신앙과 구원이 있었다.
저는 카지노 게임 속에 사랑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카지노 게임에게는 자기 육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 지 아는 것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카지노 게임들이 자신에 대한 염려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랑 하나만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습니다. 사랑 안에 있는 카지노 게임은 하나님 안에 있고, 그 안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카지노 게임은 무엇으로 사는가 中
<촛불, <초반에 불길을 잡지 못하면 끌 수가 없다, <대자에서는 사소한 분쟁이 어떻게 큰 싸움으로 번져가는지, 이웃을 마음으로 용서하지 못하면 어떤 재앙이 오는지 보여준다. 당장은 악에 맞서 싸우는 것을 선택할 수 있지만, 악에 저항하지 않는 인내야말로 악한 자를 변화시킨다는 주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불합리, 불이익, 참으면 손해일 것만 같은 기분을 누르고, 인내하고 견디며 살라니. 도대체 언제까지 참아야 할까? 참지 않고 싸우면 둘 다 피투성이가 된다. 상대방이 던지는 쓰레기를 받으면 나는 쓰레기통이 되지만, 받지 않으면 상대는 쓰레기를 버린 카지노 게임으로 남는다. 상대에 일일이 대응하느라 내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다른 이의 마음에 신경 쓸 시간에 내 마음을 닦아 깨끗하게 만들고, 내 안에 믿음과 사랑을 단단하게 채워 넣으며, 내가 먼저 활활 타 오른다면 젖은 장작을 만나도 불길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대자는 아낙이 걸레를 빨고 나서야 탁자를 닦을 수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자신에 대한 걱정을 멈추고, 마음을 닦은 후에야 다른 이의 마음을 씻어줄 수 있는 것이었다. 대자는 바퀴테 만드는 카지노 게임들이 받침대를 고정시킨 후에야 바퀴테를 휠 수 있었던 것을 기억했다.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을 하느님에게 고정시키자, 불순종하는 마음이 순종으로 돌아섰다. 대자는 불이 활활 타오르자, 농부들의 젖은 장작이 타오른 것이 기억났다. 그의 마음에 불이 일자, 다른 카지노 게임의 마음에도 불이 일었던 것이다. <대자 中
<바보 이반과 <카지노 게임에게는 얼마만 한 땅이 필요한가는 인간의 탐욕과 탐심이 가져오는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다. 만족을 모르고 '조금만 더'라는 욕심이 죽음과 파멸을 가져온다. 99마리의 양을 가지고도 1마리의 양을 탐낸다. 인간의 욕심은 끝도 없다. 끝없는 것을 끝까지 가지려고 발버둥 친다. 시선을 밖에 두고 끊임없이 비교한다. 더 많이 더 많이 감당도 못할 거면서 욕심낸다. 만족을 모르는 카지노 게임에게 유혹은 달콤한 혓바닥으로 속삭인다.
톨스토이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카지노 게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실생활에 적용 가능한 행동강령으로 풀어냈다. 거대한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톨스토이는 러시아혁명의 폭력성과 편협성을 보면서 진정한 변화는 개개인의 변화에서 시작됨을 역설했다. 또한 톨스토이는 영혼의 거듭남과 부활이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힘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러시아 대문호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얻어낸 삶의 진리를 책 한 권에서 편하게 만날 수 있다니 감사했다. 인생이라는 고해의 바다에서 카지노 게임은 누구나 길을 읽고 헤맬 때가 있다. 그때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을 보며 방향을 잡는다. 고전이 위기에 빠진 삶에서 홀로 반짝이는 등대가 된다.
<카지노 게임은 어떻게 사는가는 흔들리는 당신의 마음을 붙잡고, 단단하게 살라고 말해줄 것이다. 끝이 없을 것 같은 바다도 가다 보면 육지에 닿는다. 무섭게 휘몰아치는 폭풍우도 언젠가는 물러간다. 바른 길을 가고 있다면 조금 헤맬 수는 있지만, 언젠가는 원하는 곳에 닿는다.
사족 : 종교가 뭐냐고 물어보면 나는 '불교'라고 답한다. 절에 다니며 불공을 드리고, 불경을 외운다. <카지노 게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으며 처음으로 성경이 읽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