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oo 아닌가요?
어렸을 때 동창을 어딘가에서 우연히 만날 때가 있다.분명 아는 사람 같은데 누구지? 누구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한참을 보다 아~~ 하고 떠오른다. 기억보다 키가 커졌거나 몸이 조금 불어 있을 수 있다. 머리모양과 화장으로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얘기를 하다 보면 말투에서 웃는 얼굴에서 예전 모습들이 되살아난다. 그럴 때 던지는 한마디
-너 하나도 안 변했다
얼굴에 주름이 지고, 흰머리가 낯설지만,그 친구라고 생각하는 순간 열다섯이 된다. 분장 같은 거다. 본질은 가만히 두고 세월이 얼굴에 몸에 색칠을 한다. 저마다의 색으로 주름이 그려진다. 화장을 벗기면 드러나는 민낯처럼 말에서 행동에서 사람이 드러난다. 촌에 사는 친구들은 촌에 말을 쓴다. 아무리 아닌 척 해도 촌에 말은 드러난다.
-어떵살맨?
-진짜 오랜만이다.
-무사 결혼할 때 연락안핸?
-뭐하러 완?
이름보다 별명이 먼저 기억나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 친구의 별명은 "칸쵸"였다. 과자이름 "칸쵸"처럼 귀여운 이미지는 아니었다. 깐쵸는 까불래기의 줄임말이었다. 촐람생이보다는 친근한데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성격이 급해서 말이 빨랐다. 빨리 나오는 말은 자주 막힌다. 카지노 게임는 그럴 때마다 팔을 크게 흔들며 아 그거 있잖아. 그거.라고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는데, 신기하게도 카지노 게임의 행동을 보면 그게 뭔지 다 알 것 같았다. 말보다 몸으로 말하는 걸 더 잘했다. 키가 크고 손발이 긴 카지노 게임는 걸을 때나 뛸 때 팔다리가 따로 놀았다. 멀리서 봐도 카지노 게임가 뛰어오는 걸 알 수 있었다.
카지노 게임는 우리 반에서 꼴등을 도맡아 하는 아이였다. 수업시간에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떠들어서 혼났고, 지각과 결석을 밥먹듯이 했다. 담임이자 사회선생님은 힘이 넘치는 서른 살 남짓한 유부녀였는데 숙제를 많이 냈다. 선생님은 숙제검사를 철저하게 했는데, 숙제를 하지 않은 아이들은당구큐대로 손바닥을 때렸다.
처음 5대부터 시작해서 숙제를 해 올 때까지 5대씩 올라갔다. 사회시간은 일주일에 두 번 있었는데 카지노 게임는 한 번도 숙제를 해 온 적이 없었다. 나중에 50대가 되었을 때 사회선생님은 카지노 게임 앞에서 한숨을 길게 쉬었다. 얼굴이 빨개진 선생님이 온 힘을 다해 50대를 채웠을 때 맞은 카지노 게임는 담담했고, 선생님은 진이 빠져서 종이 울리자마자 교실을 빠져나갔다.
-너 무사 숙제 안 하맨? 그냥 내꺼 보고 해.
-내부러. 안하잰
-담임 화 났잖아.
-어떵안해.
카지노 게임는 못 한 게 아니라 숙제를 안 한 거였다.수업시간에는 잠을 자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장난을 치며 겨우겨우 버티던 카지노 게임가 제일 신난 시간은 점심시간이었다.
깐쵸가 도시락통을 꺼내면 덩달아 우리들도 신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깐쵸의 도시락은 다른 친구들과 레벨이 달랐다.
카지노 게임의 도시락은 엄마가 밭에 가져가는 찬합이었다. 나는 양철도시락의 반은 밥을 담고, 나머지 반에 김치나 멸치를 싸곤 했는데 늘 밥이 모자랐다. 그래서 카지노 게임의 밥으로 꽉 찬 찬합을 보면 소리를 질렀다.
-맛있겠다.
깐쵸는 숟가락을 들고 달려오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보며 가방에서 커다란 유리고추장통을 꺼냈다.잘 익은 파김치냄새가 교실에 퍼졌다. 맨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까지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진한 김치냄새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깐쵸는밥을 많이 먹었고, 친구들은 파김치를 집어먹으며 엄지 척을 올렸다.
카지노 게임의 도시락에는 햄이나 소시지가 없었다. 마늘종장아찌, 마늘장아찌, 오이와 당근과 막된장, 어떨 때는 포기채 배추김치를 가져오기도 했다. 카지노 게임의 가방은 먹을 것으로 꽉 차서 책이나 노트가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카지노 게임가 숙제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카지노 게임에게는 숙제보다 파김치가 중요했다.
일 년 내내 카지노 게임의 도시락 덕분에 배가 불렀다. 3학년때 다른 반이 되자 진심으로 아쉬웠다. 30년이 지나 만난 카지노 게임는 여전히 말이 많고, 웃으면 눈이 없어지는 순한 얼굴이었다. 아들이 공부를 안 해서 걱정이라며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다고 말을 하는데 피식 웃음이 났다. 중학교 때 책상 위로 날아다니던 카지노 게임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기억은 희미해질지언정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에 보자.라는 뻔한 인사를 하고 헤어지고 난 후 저녁에 오랜만에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깐쵸를 만났다는 얘기를 했다. 친구는 깐쵸와 쌍꺼풀모임을 하고 있다. 친구는 웃으며 깐쵸가 대학교수와 결혼을 해서 우아하게 산다는 말을 했다. 깐쵸와 대학교수라니. 어, 그래서 계속 학교얘기랑 영어과외애기만 했구나. 난 깐쵸랑 파김치랑 마늘종 장아찌 담그는 방법 등을 얘기하고 싶었는데.
문득 점심시간종이 울리자마자 젓가락 들고 카지노 게임를 에워쌌던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 누가 햄이라도 싸고 오면 괜히 신났던 그때. 작은 것에도 얼마나 크게 웃었던지 낙엽도 우리가 무서워 쉽게 떨어지지 못했던 열다섯의 그 시절 우리는 찬란하게 빛났지만 아무도 그걸 몰랐다. 몰라서 더 아쉽고, 지나가서 더 그리운 그 시절의 우리.
늘 부족했고, 고단했으며, 불평불만으로 가득했던 단발머리의 내가 깐쵸 덕분에 살아났다. 그래, 나 그렇게 살았는데. 함께 했던 추억이 있어 시간이 만들어놓은 간격은 금세 메워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뿐. 다음에 우연히 만나면 또 반갑게 인사하고 그러나 그뿐, 각자의 자리에 맞춰 살고 있는 옛 친구들은 그리움의 대상일 뿐이다. 추억 말고는 공유할 거리가 없는 우리는 그렇게 반가워하다 아쉬워하며 헤어졌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별명대신 이름을 불렀지만사실 깐쵸라고 부르고 싶었다. 깐쵸. 만나서 반가워.. 아이들은 숙제 잘하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