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시간은 40분
하느니 못한 질문이 많다. 곪고 삐딱한 이 심보를 어제의 입국 심사관 탓으로 돌려본다. 으레 드는 생각이 있다. "서류까지 다 작성한 마당에, 뭔 질문이 이리 많은지." 하는...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들.관공서나 입국 심사대에 서면 늘 드는 생각이지만, 곱씹어보면 역시나 비뚤어진 건 내 마음인 것 같아 괜스레 씁쓸하다.
공항에서 하루, 호텔에서 하루를 보낸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뒤로 하고 이번 카리브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인 그레나다로 향한다. 트리니다드로부터 160km 떨어져 있는 소앤틸레스제도의 작은 섬에는 영국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다. 12만 명 남짓한 국민들은 공용어로 영어를 사용하고, 도로의 좌측으로 차를 몰며, 세 개의 네모난 핀으로 구성된 230V 타입의 G 플러그를 쓴다. 그럼에도 이 섬의이름은 스페인어로 석류를 뜻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라나다(Granada)'와 비슷하다. 이유가 문득 궁금해졌다.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궁을 찾은 것도 벌써 3년 전이던가. 세계 분쟁사의 배후에는 십중팔구 영국이 있는 것처럼, 신대륙 개척사에서는 스페인을 빼놓을 수 없다. 카스티야의 여왕, 이사벨 1세의 후원을 등에 입은 콜럼버스는 신대륙 탐험에 나섰고, 그가 발견한 여러 섬 중 하나에 성모의'원죄 없는 잉태'를 일컫는 '콘셉시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현재 몰타나 거제도와 비슷한 크기의 작은 섬. 하지만 이후 항해사와 선원들이 섬을 스페인의 도시 이름 '그라나다'를 따 부르기 시작했고, 그 이름이 그대로 정착되었다 전해진다. 그러고 보면, 나는 스페인의 그라나다, 니카라과의 그라나다, 카리브해의 그레나다를 모두 여행한 셈이다. 여하튼, 영국이 섬을 지배한 후에는 그라나다의 영어식 발음인 '그레나다'가 공식 명칭이 되었다고 한다.
별명은 '스파이스 온라인 카지노 게임.'
혹사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미신까지 더해져, 대항해 시대의 '검은 황금'온라인 카지노 게임 꼽힌 육두구. 그레나다에는 한때 검은 황금의 맥이 흘렀다. 맥이 끊긴 건 2004년의 허리케인 이후. 이전까지 세계 2위의 육두구 생산국이었던 그레나다는 이후 산지의 90%가 증발해 버려, 현재는 국가 GDP의 40%를 관광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향신료 향긋한 그곳의 물가는 만만치 않아, 아마 난 오늘도 들고 온 파스타로 저녁을 때우게 되겠다.그럼에도 "혹시라도. 다음에 온다면. 만에 하나." 따위의 단어들을 의미 없이 중얼거리며 공항으로 향온라인 카지노 게임 셔틀버스에 몸을 싣는다.
오늘의 비행시간은 30분. 타히티에서 경비행기를 탄 이후로 가장 짧은 비행시간이다. 이곳 카리브해에는 시에스타의 잔재라도 남아있는 것인지, 비행기들이 죄다 이른 아침 혹은 늦은 저녁에 뜬다. 7시 50분 이륙, 8시 30분 착륙. 대략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
여러 항공사*들이 섬과 섬을 잇는다. 배는 거의 운항하지 않고, 인터넷에 정보도 거의 없으며, 찾아보니 매일 배편이 있는 것도 아니다. 비행기 표의 가격은 하루 전에 사나 일 년 전 사나 비슷하나, 대략 40분 비행에 150불 정도로 결코 저렴하지는 않다.
이른 아침임에도 비행기는 거의 만석이다. 기종은 에어버스사의 Atr 7. 소형 터보프롭 협동체 여객기로 지난 학기 수업시간에 배운 바에 따르면 항속거리는 1400킬로미터 즈음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켈리 교수님은 도대체 왜, 이 기체의 메인도어가 (어차피 하나뿐이니 그냥 도어려나) 후미에 있다는 점은 알려주지 않은 걸까. 내가 배운 학문의 유용함은, 160킬로미터 날아갈 비행기가 최대 1400킬로미터 날 수 있다는 사실과, 승객들의 자리를 이리저리 조정하는 승무원을 보며 "그래 중요하지. 무게중심." 하는 한숨뿐이다. 7개월 전, 나는 단 일분이라도 빨리 내려 해변으로 달려갈 요량으로 모든 비행기의 모든 좌석을 앞으로 몰아두었다. 그런 나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자각하며 비행기에 오른다. 탑승교도 없고, 터벅터벅 걸어서 계단을 오른 후맨 앞까지 가 털썩 앉아 잡지를 꺼내 읽는다. '앤티가 바부다에는 다양한 축제가 열리는군. 생각보다 더 많은 섬을 예상보다 많은 페리가 잇고 있군.' 온라인 카지노 게임 감회도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매년 3월 열리는카니발을 제외하면 관광자원이 적은 트리니다드 섬의해안선은 카리브해의 모래사장이 아닌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이어져 있다. 동해의 해안선, 마데이라의 해안선이다. 카리브해의 터쿼이즈가 아닌 동해의 아득한 푸르름. 여기서 가장 유명한 해변은 야자수가 깔린 마라카스(Maracas) 해변으로 수도에서 40분 정도 거리에 있다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데, 비행기로 1시간이면 그림 같은 해변들이 펼쳐진 카리브해의 다른 나라로 날아갈 수 있으니, 현지인 말고 찾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책이라도 읽을까 휴대폰 화면을 켜니, 더치 DJ San Holo의 Lift me from the ground가 덩그러니 떠있다. 앨범 커버는 벌새. 새 관찰로 유명하며, 자생온라인 카지노 게임 벌새가 19종이나 되는 국가의 국적기(항공사의 상징마저 벌새)에서 벌새가 그려진 앨범의 노래를 듣고, 땅에서 올려져 하늘을 유영하다니 참으로기막힌 우연이다.
지루하고 따분해생각이 꼬리를 문다. 전공이 항공우주공학이어도 비행기에 타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 생각은 비슷하다. '떨어지면 어떡하나. 내 재킷을 낙하산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여권을 찢어서 입에 물고 죽는 게 나으려나.'온라인 카지노 게임 아무 의미 없는 생각들. 화장실에서 죽을 확률보다 비행기 타다 죽을 확률이 높다는 핀잔을 들은 어떤 사람이 이후에는화장실 가는 것마저 무서워졌다는 이야기를 읽고 피식 웃는다. 절묘한 우연들이 겹친다.
뜬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기장은 착륙을 고지한다. 나는 입국신고서를 작성하고, 잠시 눈을 감는다. 드문드문 눈에 띄는 암초들, 바다와 색으로 이어진 하늘을 뒤로하고 비행기는 모리스 비숍(Maurice Bishop, GND) 공항에 착륙한다.
부자들의 전용기 걸프스트림 몇 대가 눈에 띄고, 나는 짐을 챙긴다. 흑인이 아닌 사람이라고는 나와 백인여자 하나. 미국인치고는 옷맵시가 괜찮고, 포트오브스페인 공항으로 취항온라인 카지노 게임 영미권 항공사는 영국항공과 에어캐나다뿐이니, 아마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서 출발한 캐나다인이겠다 싶어 여권을 슬쩍 본다. 역시 캐나다인이다. 성격상 "멀리서 오셨네요."라고 말 붙이는 일은 꿈에도 없었으면 하고, 그저 이런저런 소회를 나눌 사람 하나 없다는 게 조금 아쉬울 따름이다.
ATR 72의 방향타 뒤로 또 다른 카리브해의 섬 중 하나인 세인트키츠 네비스의 문양을 새긴 비행기가 날아간다. 찾아보니 불과 일주일 전, 세인트키츠 네비스의 로버트 L. 브래드쇼 국제공항에서 국기를 도장한 인터캐리비언 항공기의 공개식이 열렸다고 한다. 테렌스 드루 총리가 참석했다는데, 국가수반이 항공기 공개식에 참석하는 나라라면 지자체와 비슷하겠다는 게 나의 감상.카리브해까지 와서 바다는 아직 구경도 못하고 잡상식만 늘어가고, 괜히 기분이 언짢다.
걸어 입국 심사장온라인 카지노 게임 향한다.미국, 캐나다, 영국인의 경우 자동입국심사대를 이용할 수 있으나, 어차피 입국심사관을 만나야 하고, 그렇다고 질문이 적은 것도 아닌 듯하다. 한국인이라 무비자*이니 준비할 건 없다.
들어가자마자 시선을 사로잡는 건 누런 벽에 걸린 동판*. 생각 없이 읽다 나온 이름에 뜨악한다. 피델 카스트로. 엘 코만단테.군대 훈련소에서는 첫날 동기들 사이에서 북한 간첩온라인 카지노 게임 오인받았고 (아무도 말을 안 걸었다), 세르비아에서도 반 노숙자 몰골에 "북에서 왔냐"는 어이없는질문을 받기도 했으니 문제 될 건 없으려나 잠시 고민한다.
'입국 신고서까지 작성한 마당에 하느니 못한 질문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라는 불평은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잘못된 게 없다는 생각을 이어 붙이기를 한참, 입국 심사관이 내게 손짓한다.
"와이 어 유 히어 (왜 왔니?)"
아시아인이 대관절 카리브해에 올 이유가 관광/여행 말고 무엇이 있을까. 아무렴 남의 집에 꽃이라도 찾으러 왔겠는가. 카리브해에서 입국심사관에게 건넬 말은 단 하나뿐이다. 여행.
"아임 히어 투 트래블. (여행하러)"
"베케이션? (휴가?)"
"예아. (그런 셈이지)"
"하우 롱 어유 스테잉? (얼마나 머물러?)"
길다 길어. 주소까지 읊어야 할판인데, 아니나 다를까 물어본다.어제의 불친절한 입국심사관 때문일까, 단순 아침을 못 먹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바다에 있어도 바다가 그리운 내가 카리브해까지 날아와 아직도 파도를 못 쐬었기때문일까.
주소를 보여주고. 웃으며 두 마디 덧붙인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호핑. 웟 엘스 캔 잇 비 (섬 호핑이죠. 그것 말고 뭐겠어요?)"
사실이 그렇다.카리브해에서 입국심사관에게 건넬 말은 단 하나뿐이다. 다시 한번 던지는 쓰잘데 없는 질문: "웟 어유 히어 포 (뭐 하러 왔어)"에 마지막으로 답한다.이미 짐작이야 수천 번도 더했겠지만 되짚어준다. 원하는 답을. "아일랜드 호핑."
라면을 왜 챙겨 온 건지 묻는 입국 심사관에게 최대한 표정을 숨기고 "투 잇 (먹으려고요)". 답변한다. 그보다 더 어리석은 질문이 있을까. 스프 봉지에 마약이라도 담아오길 기대온라인 카지노 게임 걸까. 또다시 웟 엘스 캔 잇 비다. 정말이지 하느니 못한 질문이 많다.체크인은 오후 3시, 공항 한 구석의 시계는 아직 오전 9시를 가리킨다.해변에 가 바닷바람이라도 맞으면, 곪고 뒤틀린 심사가 조금이나마 달래 지지려나. 여기는 그레나다. 나의 72번째 국가. 그리고 나는 망망대해 위 작디작은 섬에 덩그러니 혼자다. 오늘도.
*동카리브를 주력으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 리아트(LIAT),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포트오브스페인을 허브로 지역 대부분을 커버온라인 카지노 게임 캐리비안 항공(Caribbean Airlines), 영국 해외 영토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를 기반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역내를 운항온라인 카지노 게임 인터 캐리비안 항공(InterCaribbean Airways), 세인트마르틴 근처를 운항온라인 카지노 게임 윈에어 (Winair, Windward Islands Airways), 그리고 세인트빈센트를 거점으로 활동온라인 카지노 게임 SVG Air와 무스티크 항공 (Mustique 항공) 등 나름 다양한 항공사들이 존재한다.
*미주권에서 볼리비아를 제외하고는 모든 나라가 무비자라 봐도 무방하다. 미국 및 캐나다는 사전신청을 요하고, 도미니카공화국과 니카라과는 사전 서류 작성을 요하지만 카리브해 섬들은 대개 입국신고서에 그친다.
*포인트 세일린스 국제공항은 1960년부터 1983년까지 그레나다 정부와 쿠바 정부 및 국민의 지원온라인 카지노 게임 건설되었으며, 1998년 8월 1일 쿠바 공화국 대통령 피델 카스트로에 의해 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