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Umbria
폴리냐노아마레의 절벽에 계속 머무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 이틀 만에 떠나왔다. 더 머무를 수 없었던 것은 전적으로 남편의 결정이었고, 이미 정해진 일이라 이 시점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카지노 게임로 여행하는데도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만큼 머무를 수 없다니. 게다가 남편이 하도 서두르는 통에 점심을 먹자마자 출발했는데 얼마 못 가 고속도로에서 큰 사고가 발생하는 바람에 가장 뜨거운 시간인 두 시쯤 고속도로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기약 없는 사고 처리를 기다리는 동안 뜨거운 지열이 올라오는 도로 위, 에어컨도 없고 선팅도 없는 차에 앉아서 더위를 견뎌내야 했다. 차들이 가득한 도로에 갇혀 아래에서는 햇볕에 달궈진 아스팔트가 절절 끓고, 머리 위에서는 해가 작열하는 상황. 카지노 게임의 앞유리가 워낙 커 무릎 위로는 완전히 햇볕에 노출되어 있던 우리는 그야말로 전기구이 통닭 신세가 따로 없었다.
뜨거운 고속도로에 갇히게 된 것은 남편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시원한 폴리냐노아마레의 절벽과 푸른 바다를 굳이 굳이 한낮에 떠난 것은 남편 탓이어서 원망이 솟구쳤다. 하필 마실 물도 없었던 상황에서 진이 다 빠진 상태로 한 시간 반 만에 겨우 그곳을 벗어났고, 탈수 직전에 휴게소를 발견해서 물을 사 마실 수 있었다. 그렇게 네 시간 반 걸려 오후 늦게 풀리아 주 끄트머리에 있는 해변가 오토캠핑장에 도착해 다음 날 바로 풀리아 주를 떠나 몰리세 주(Molise) 로 들어섰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내다본 창밖에는 올리브밭이 펼쳐지다가 포도밭이 펼쳐지다가 다시 올리브밭이, 또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이지만 나도 모르게 저 멀리 작게 보이는 바다에 눈길이 갔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기 불과 며칠 전 한여름의 어느 날, 다들 바다로 떠날 채비를 할 때 우리는 풀리아 주 해변을 떠나 더 깊이 내륙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몰리세 주를 그대로 통과해 오후 늦게 아브루초 주(Abruzzo)에 들어섰다. 아브루초 주에서도 그저 달리기만 하다가 저녁에 한 오토캠핑장에 도착해 하룻밤을 보냈다. 온 가족이 수제맥주 양조장과 바와 오토캠핑장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카지노 게임이 이곳에서 만든 맥주를 두 병 사 왔기에 창밖을 보며 마셨다. 오토캠핑장이 언덕 위에 있어 풍경을 감상하기 좋았고 낮은 언덕들과 산등성이마다 올라앉은 작은 마을들이 귀여웠지만, 나는 카지노 게임에게 화가 나고 풀리아의 바다가 그리워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탈리아의 여름 휴가는 7월 15일에 시작되어 공식적으로는 한 달, 사실상 한 달 반쯤 이어진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 사람들이 이탈리아 해변으로 몰리는 기간이다. 우리는 이 시기의 극단적인 인파와 성수기 물가를 피해 중간에 시어머니 댁에서 여행을 잠시 쉬기로 했었다. 그렇다고 해도 풀리아에서 며칠 더 머무르다 사람들이 많이 몰릴 때쯤 돌아가도 됐지만, 휴가철이 시작되자마자 휴가를 떠나는 피노와 시어머니를 대신해 집에서 강아지와 고양이를 돌보기로 카지노 게임이 이미 약속을 해 버려서 휴가철이 시작되기 전에 급히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됐다. 나와는 상의 없이 이미 결정된 일이었다. 꼭 우리가 아니라도 매년 부탁하던 사람이 있었는데도.
오래 준비하고 많은 것을 희생해서 이제 겨우 장기 여행을 떠나왔는데 한 달 반도 안 되어 급하게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너무 속상했다. 가뜩이나 체류허가증 문제로 한 달을 버린 상태에서 성수기에 여행을 쉬는 것도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는데, 굳이 그럴 필요 없는 일로 여행을 일찍 접고 카지노 게임에 드는 장소를 가장 좋은 때에 서둘러 떠나와야 하다니..
북부에서 풀리아 주까지 카지노 게임로 내려가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우리가 힘들게 이탈리아 끝까지 내려가서 풀리아 주에 머물렀던 시간은 겨우 일주일 남짓, 남쪽 해안에서 기록적인 더위와 습도에 시달린 데다가 대부분이 이동 시간이라 제대로 풀리아의 해변을 즐길 수 있었던 시간은 너무 짧았다. 결국 시간과 돈을 들여 더운 여름에 고생해서 이탈리아 남부 해안까지 가서는 해변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 하고 가장 더울 때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이미 결정된 일이고 이제 와 약속을 물릴 수 없으니 속상해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너무 속상했다. 게다가 이런 일이 나와 상의 없이 결정되었다는 것.. 나는 이 사실을, 전날 풀리아를 떠나자는 남편과 실랑이 끝에 듣게 된 참이었다. 추궁해 듣게 된, 미리 말을 안 한 이유는 ‘어차피 휴가철에 돌아가기로 되어 있으니까’였다. 휴가철이 시작되기 전에 반드시 돌아가야 되는 것과 휴가철에 천천히 상황을 봐서 돌아가는 것은 엄연히 다른 건데! 그동안 시어머니 댁에 머무르면서 피노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두 분께 도움이 되고 싶었던 남편의 마음은 이해한다. 게다가 이때는 아직 다음 해에 유럽으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돈을 최대한 아끼던 중이기도 했으니, 남편은 그게 서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거겠지.. 그래도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결정을 하고 약속을 하면 안 되는 거잖아! 마음속에 전쟁이 일고 분통이 터지다가 마침내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어차피 이제 와서는 다 소용 없는 일이다.
다음 날, 여전히 속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로 카지노 게임에 실려 점심 때쯤 움브리아 주(Umbria)에 도착했다. 움브리아 주에서 가장 먼저 간 곳은 마르모레 카지노 게임(Cascata delle Marmore). 나는 들어 본 적 없는 곳이었지만 남편이 보고 싶다고 해서 갔다. 2,000년 전 로마인들이 로마로 물을 끌어오기 위해 만든 인공카지노 게임라고 해서 살짝 솔깃하긴 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직 마음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고, 그래 봤자 인공카지노 게임잖아 하는 마음으로 그냥 차에 있으려고 했다. 에어컨만 있었으면 차 안에 그냥 있었을 것이다. 차를 최대한 그늘에 들어가게 세워 뒀음에도 한낮의 뜨거운 날씨에 카지노 게임 안의 온도는 점점 올라갔고, 결국 나는 가볍게 산책이나 할 요량으로 운동화를 신고 남편을 따라나섰다.
특별할 것 없던 길은 무성하게 우거진 숲으로 이어졌다. 숲속을 걷는 것만으로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참 걸어 카지노 게임를 발견했는데 수량이 너무 적었다. 에게, 이게 카지노 게임야?
남편은 수문 여는 시간을 기다려야 된다고 했다. 우리는 사람들을 따라 카지노 게임가 보이는 전망대로 갔다. 하루에 두 번 수문을 여는데 시간은 계절마다 다르다고 해서 그저 기다렸다. 우리가 갔던 7월에는 2시 40분이었다. 네 번의 사이렌 소리가 연이어 나며 점차적으로 카지노 게임의 수량이 늘어나더니 3시 20분 정도가 되니 세찬 물보라와 함께 크고 선명한 무지개가 반짝 떠올랐다. 아.. 그 순간의 감동이란, 이렇게 가까이서 무지개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눈을 뗄 수 없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장관이어서 그저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실체 없이 아른거리면서도 손에 잡힐 듯 선명하고 생생한 빛깔을 홀린 듯이 바라보는 동안, 마음에는 그저 경탄만이 가득했다.
한참을 홀린 듯이 카지노 게임와 무지개를 바라보고 있다가 카지노 게임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걸었다. 이곳의 여러 하이킹 코스 중에서 우리는 카지노 게임 아래쪽으로 쭉 걸어 내려가 길을 건너 맞은편 산에 올라가서 카지노 게임 전체를 관망하는 코스를 골랐다. 내려가는 길에 카지노 게임 중간쯤 물줄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길이 있어서 가 봤다가 홀딱 젖고 말았다. 물살이 어찌나 센지 물안개 정도가 아니라 거친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 같았다. 이게 인공카지노 게임란 말이지, 카지노 게임의 기세에 감탄하며 우거진 숲길을 걸어 내려갔다.
맞은편 산을 오르는 것은 힘들었지만, 그곳에서 보는 카지노 게임는 훨씬 아름다웠다. 요즘과 같은 중장비도 없던 시절에 사람 손으로 만들어낸 카지노 게임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물안개를 뿌리며 굽이굽이 꺾어져 내려오는 물줄기와 울창하게 자라난 짙은 녹음에서 대자연의 신비와 위용이 느껴졌다. 세차게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에 마음속 깊이 고인 부정적인 감정들이 모두 쓸려 내려가는 듯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으로 인한 좌절감도, 원치 않는 시기에 갑자기 끝나버린 여행에 대한 아쉬움과 남편에 대한 원망도 하얗게 쏟아지는 카지노 게임수에 씻겨 내려갔다.
물보라에 흔들리는 초목처럼 흔들흔들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오는 길, 무겁게 고여 있던 마음에도 물길이 생겨 흐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이 카지노 게임를 함께 보기 위해 그곳을 떠나와야 했던 거겠지, 그런 낭만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어떤 풍경은 이전에 일어난 모든 일을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만들기도 한다.
“돌아가자.” 그제야 웃으며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