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로 부터의 멀어짐
입 밖으로 꺼내놓지 못한 간절한 바람이 있었다. 그것은 다시 걷고 싶다는 것. 튼튼한 두 다리, 걷기에 부족함 없는 신체 조건을 가진 삼십 대 후반이 다시 걷고 싶다니, 무슨 말일까 싶을 것이다. 3년 전, 삶에서 크게 한번 넘어졌다. 그 후로 나는 걷는 게 두려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코로나19가 극성이던 어느 4월, 꽃바람 살랑이는 밤공기가 걷기에 딱 좋았던 날이었다. 필라테스에서 평소보다 무리한 탓인지 집에 가는 언덕길에서 숨이 점점 가빠졌다. 어두웠고 길가 화단의 커다란 돌들이 위협적으로 보였다. 무거워진 다리는 더 이상 걸음을 뗄 수 없게 되었고, 숨은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오그라든 손발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강하게 어필했다. 과호흡. 그것이 시작이었다.
돌이켜보니 그 시기의 나는 퇴근하면 몸이 부서질 듯 피곤했고, 그럴수록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며 저녁 운동을 나갔다. 크고 작은 일 앞에서 궁지에 몰린 카지노 가입 쿠폰처럼 마음은 무거웠고, 무엇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혹은 무엇으로부터도 외면당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이 모든 것이 쌓이고 쌓여 한순간에 넘어진걸까?
그 후로 나는 걷는 게 두려운 사람이 되었다. 조금만 숨이 가빠와도 카지노 가입 쿠폰 과호흡이 올 것 같은 공포감이 엄습했다. 아이와 동네를 걸을 때도 손금에서 땀이 스며 나왔다. 결국 필라테스도 그만두었다.
걷기를 생각하면 겁이 났지만 가장 큰 감정은 슬픔이었다. 운동신경도 없고 강철 체력도 아니지만 걷는 것만큼은 무척 좋아하던 나였다. 백화점을 백 바퀴 돌 수 있었고, 도보 40분의 통학 거리를 가뿐히 다니던 시절도 있었다. 실내든 실외든 빠릿빠릿 걸으며 구경하는 걸 즐겼다. 내게 걷기는 세상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들여다보는 즐거움이었다.
그랬던 걷기가 아킬레스건이 된 것이다. ‘조금이라도 숨이 차면 또다시 증상이 나타날 거야’하는 공포심이 두 다리를 묶었다.
다행히 두려움의 시간은 흘러 지나갔다. 그 사이 전문가와 가족의 도움, 그리고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삶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 외상 후 성장을 경험할 만큼 어떤 면에서는 더 깊어지고 단단해졌다. 특히 요가를 배우면서 내 몸을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걷어냈다. 이제 걷기만이 남아있었다.
나트랑에 가면 걷고 싶었다. 걸어보고 싶었고, 걸어 내고 싶었다. 러너가 목표 거리를 늘려나가듯 나도 점점 더 멀리 더 오래 걸어 나가고 싶었다. 예전의 지칠 줄 몰랐던 여행자처럼 나트랑 구석구석을 누비길 꿈꿨다.
기대 섞인 다짐으로 마주한 나트랑은 내게 다양한 길을 펼쳐 보였다. 시내에는 크고 작은 길들이 실타래 몇 개를 풀어놓은 듯 여러 갈래로 늘어져 있었다. 한 번씩 다른 방향을 선택해가며 이국적인 풍경 구석구석을 카지노 가입 쿠폰 재미가 있었다. 아침부터 오픈 준비로 분주한 카페, 신발을 잔뜩 꺼내놓은 신발가게, 선명한 색감이 눈부신 과일가게, 어떤 음식을 팔지 궁금해지는 식당 등 모든 것이 내가 봐온 것과 닮은 듯 달랐다.
학교 앞을 지날 때면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곳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등하교하는지, 아이들은 어떤 표정을 짓는지, 학교 앞 풍경은 어떤지 말이다. 오토바이가 가장 흔한 교통수단인 만큼 부모님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통학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고(엄마의 마음을 담아 느리고 안정적으로 달리는 오토바이에 마음이 뜨끈해졌다),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활기찬 소리도 듣기 좋았다. 점심이 훌쩍 지난 오후에는 자전거 뒤에 아이스크림 통을 실은 아저씨가 교문을 바라보며 하교 시간을 기다리는 듯 보였다. 이내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고 몇몇은 아이스크림의 시원한 유혹에 환하게 화답하겠지.
새로운 풍경에 눈과 마음을 빼앗겨서일까? 걷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잊은 채 그저 한 명의 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예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신이 난, 하지만 아직은 조심스러움의 경계에 서 있는.
한 달 살기를 하며 요가도 하고 시내 곳곳을 걸어 다닌 덕이었을까? 시간이 지나며 어느 정도 용기가 충전되었다. 이제 저 태양 아래서 걸어봐도 되겠다 싶었다. 여느 아침처럼 아이를 등교시키고 요가 수업에 다녀왔다. 한 템포 숨을 고르고 카지노 가입 쿠폰 방을 나섰다. 책 한 권과 물병, 그리고 흰 운동화와 함께. 그리고 카페가 즐비한 시내 쪽 방향이 아닌 반대 길을 향했다.
바다로 향하는 길! 운이 좋게도 숙소에서 10분 정도 걸어 나가면 해변에 다다랐다. 큰 도로를 사이에 두고 뒤에는 도심 속 크고 작은 건물이 가득한 반면, 정면에는 높다란 야자수가 초록 잎사귀를 한가로이 흔들고 카지노 가입 쿠폰. 멀리서부터 드러난 그 모습이 무척 반가웠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나라에 온 것을 한순간에 실감 나게 하는 그 풍경!
나트랑 해변에는 야자수가 양쪽으로 드리운 산책길이 곧고 길게 뻗어있었다. 끝과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그야말로 야자수 그늘 아래 실컷 걷고 싶어지는 길이었다. ‘드디어 왔구나!’ 운동화를 신은 두 발에 힘을 주고 걷기 시작했다. 태양의 열기로 달아오를 시작할 시간이었지만 든든한 야자수 그늘 덕분에 그 뜨거움이 피부로 전달되지는 않았다. 커다란 잎사귀들이 우산처럼 머리 저 위에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눈 앞마저 초록으로 채우고 있었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로 바다가 담겼다. 파도가 시원스레 철썩였고, 반짝이는 윤슬 사이로 수영을 즐기는 카지노 가입 쿠폰들의 웃음이 눈부시게 부서졌다.
그렇게 멀리 떠나온 곳에서 나는 카지노 가입 쿠폰 걷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국과 베트남, 단순히 거리의 멀어짐이 아니었을 것이다. 과거로부터의 멀어짐, 꼭 쥐고 있던 불안감으로부터의 멀어짐이었다. 그리고 단순히 두 다리로 걷는 행위만이 아니었다. 깊은 어둠을 통과하고 다시 해볼 수 있겠다는 희망찬 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