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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론산바몬드 Aug 27. 2022

카지노 게임 추천과 트렌치코트

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어느 날 그가 멋진 가죽재킷을 입고 나타났다. 그는 같은 과 선배였고 나와 같은 독서실에 살고 있었다. 오가며 눈인사만 하는 사이여서 그에 대해 깊이 아는 바는 없었다. 독서실에 거주하는 걸로 보아 나처럼 고학생이려니 생각했었다. 옷에 문외한인 내 눈에도 꽤 값나가는 재킷이었다. 필시 훔쳤을 거라 내심 결론 내렸다. 신고할 생각은 없었다. 협박하여 가끔 빌려 입을 요량으로 옷의 출처를 물었다. 그는 "샀어!"라고 너무나 당연한 듯 말했다. 그럼 옷이 아니라 돈을 훔친 것일까. 분명 그랬을 것이다. 좀 더 추궁하면 밥 사 먹을 돈이라도 뜯어낼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일었다. 나의 복잡한 표정을 읽었는지 그는 나를 독서실 옥상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귀가 솔깃한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는 매일 지하철 내에서 장사를 한다고 했다. 라이터에서 가죽 혁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공급하는 곳이 있다고 했다. 계절에 따라 주력 상품이 있으며 팔고 남은 것은 반품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제법 장사를 잘하는 축에 속하며, 하루 순수익이 40만 원가량이라 했다. 90년대 중반에 40만 원은 엄청난 거금이었다. 수업이 있어도, 몸이 아파도 장사를 나간다고 했다. 하루를 종 치면 40만 원이 뇌리에 남아 더 힘들다고 했다. 아, 그는 재킷 도둑이 아니라 거상 임상옥이었다. 그에게 비법을 물었다. 매일 40만 원을 벌고 가죽재킷을 걸친 내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첫째, 사람들의 귀가 얇은 시간을 공략해야 한다. 대략 오전 10시에서 12시 사이,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에 사람들은 남의 말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뿐만 아니라 그 시간에는 지하철이 상대적으로 덜 붐비는 시간이라 장사를 하기에 적당하다. 서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 누구에게나 시선을 받을 수 있다.


둘째, 파트너가 있어야 카지노 게임 추천. 사람들은 물건을 사고 싶어도 부끄러워 먼저 말을 꺼내기를 꺼려카지노 게임 추천. 따라서 먼저 물건을 사는 바람잡이가 필요하다. 하루 4만 원의 일당을 주면 중년의 아주머니를 고용할 수 있다. 장사치가 물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마치면 그녀가 과장된 말과 몸짓으로 물건을 구입하며 사람들을 자극카지노 게임 추천. 그리고 그녀는 다음칸으로 미리 이동하여 대기카지노 게임 추천.


셋째, 시의적절한 멘트를 날려야 카지노 게임 추천. 사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도 마치 누군가가 구매의사를 밝힌 듯 반대편을 응시하며 "거기 손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등의 대사를 날린다. 이 한마디는 바람잡이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물건에 더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게 마련이다.


넷째, 부끄러움을 극복해야 한다. 조용한 지하철에서 자신에게 쏠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당당히 받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생계를 위해 물건을 판다는 인상을 주어 동정심을 유발하려 해서는 안 된다. 좋은 물건을 파는 상인의 떳떳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다섯째, 지하철에는 공안이라 부르는 도시철도 사복경찰이 있다. 그들에게 붙잡히면 즉심에 회부되어 그날 하루를 공치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물건을 압수당한다. 그러니 공안을 분별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하고, 공안을 만나면 달아날 수 있는 민첩함이 있어야 한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요령을 들었지만 지금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나도 장사를 해야겠다는 생각만이 간절했다. 선배에게 몇 만 원을 빌렸다. 우선 소액의 돈으로 시작해 목돈을 마련할 요량이었다. 청계천 시장을 돌며 적절한 품목을 찾다 대나무로 만든 깔창이 눈에 들어왔다. 한 짝에 200원, 두 짝을 천 원에 팔면 600원이 남는 장사였다. 들고 간 가방에 깔창을 가득 쟁여 넣으며 카지노 게임 추천을 입을 꿈에 가슴이 부풀었다. 그땐 몰랐다. 이미 대나무 깔창을 쓰기엔 부담스러운 가을 초엽이라는 것을.


서울과 인천을 오가는 도시철도에 올랐다. 지하철 연결문을 열고 들어설 때 받는 사람들의 시선은 참으로 무거웠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날리는 멘트는 나도 몰래 떨렸다. 예상외로 사람들은 지갑을 잘 열지 않았다. 선배의 비기를 동원해 보아도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간혹 신발을 던지다시피 벗으면서 깔창을 넣어보라고 하는 이도 있었다. 자존심 상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팔리면 감사했다. 매 주말마다 지하철을 누볐지만 한 달이 넘도록 절반도 채 팔지 못했고, 원금 회수마저 아득해졌다. 가죽재킷의 꿈은 서울과 인천만큼 멀어졌다. 꿈은 이루어진다던 히딩크의 뺨이라도 때려야 했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 전이었다.


남은 물건을 들고 동인천 근처 시장에 전을 펼쳤다. 이윤은 고사하고 거의 원가로라도 물건을 팔아야 했다. 그렇게 또 몇 날을 시장에서 보내고서야 깔창을 처분할 수 있었다.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을 절감했다. 선배에게 빌린 돈을 갚았다. 그리고 내겐 천 원짜리 몇 개만이 남았다. 선배의 가죽재킷을 즈려밟고 싶었다. 학교 공부보다는 이재에 눈 뜬 선배는 그 후로 임용고시도 포기하고 학교와 독서실에서 사라졌다.


대학 구내 문구점 앞을 지나가는데 가게 주인이 나를 불렀다. 내일 다시 올 수 있겠냐고 했다. 지하철에서 장사하는 걸 보았다고 했다. 열심히 사는 모습이 애처로웠다며 아들이 입다가 작아서 못 입는 카지노 게임 추천가 하나 있는데 주겠다고 했다. 이튿날 사장님에게서 회색빛 트렌치카지노 게임 추천를 받았다. 난생처음 입어 보는 카지노 게임 추천였다. 핏이 살아 있는 것이 내가 봐도 멋있었다. 친구들도 잘 어울린다며 새 옷을 샀냐고 물었다. 얻어 입었다고 부러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틀 뒤 나는 아무 주저 없이 카지노 게임 추천를 휴지통에 버렸다. 옷을 주신 사장님께는 무척 죄송스러웠지만 다시는 카지노 게임 추천를 입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카지노 게임 추천를 입었을 뿐 여전히 나는 가난한데 아무도 내게 밥을 사 주지 않았다. 카지노 게임 추천를 살 만큼의 경제적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살기 위해 밥을 얻어먹어야 했다. 다시 땟국물 흐르는 군복 바지에 얇은 셔츠를 입고 가을바람에 떨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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