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가끔 제자들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동창들끼리술을 마시다 보면 으레 학창 시절의 추억이 안주가 된다. 그러다 나와의 일화가 소환되면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며 전화를 건다. "선생님, 욕 한 번 해주세요." 안부 따위는 묻지도 않고 대뜸 엉뚱한 요구를 한다. 간청에 못 이겨 가족이 듣을세라 목소리 낮춰 욕을 해준다. "에이, 그거 아니잖아요. 찰지게 한 번 더 해주세요." 그냥 웃음으로 때우다가 전화를 끊는다.
생각해 보면 수업 시간에 욕을 많이 하긴 했나 보다. 아이들은 영어 시간이라 하지 않고 '욕어' 시간이라 했다. 물론 상대방을 비하하거나 모욕을 주는 따위의 진짜 욕이 아니다. 아이들과 래포가 형성된 상태에서 동지 의식을 갖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욕이다. 감칠맛 나는 톤으로 비속어를 섞어 말하면 아이들은 자지러진다. 도덕적이고 권위적이어야 하는 교사에게서 정반대의 모습을 발견할 때 아이들은 긴장을 풀고 마음의 빗장을 연다. 어쨌은 욕을 하는 건 비교육적이니 난 훌륭한 사표는 되지 못한다.
시대 변화에 보조를 맞추거나 최소한 뒤처지지 않는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교단에 선 교사들이 좌절감을 겪는 포인트가 여기 있다. 교직 경력이 쌓일수록 학식이나 교수 방법은 무르익고 세련되어 갈지 모른다. 하지만 무료 카지노 게임들과 나이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결국 이성적으로든 감성적으로든 세대 간 심리적 간극을 메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교실에서의 수업은 교과 지식의 전달 이전에 어린 무료 카지노 게임들과의 교감이자 격의 없는 대화의 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비도덕적이고 이상한 행동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시골 어느 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아이들의 학력은 너무나 낮았고 학업에 관심이 없었다. 반에서 1등을 해도 지역 명문대를 들어가지 못하는 수준이었고, 심지어 알파벳을 깨치지 못한 학생도 더러 있었다. 정상적으로 영어 수업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영어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매번 새로운 단원을 학습할 때면 숙제를 냈다. 그 단원의 처음부터 끝까지 교과서에 있는 모든 삽화에 색칠을 하는 것이었다. 이상한 숙제에 아이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기어이 색을 칠한다. 그렇게 무의식 중에 단원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스스로 넘겨보는 색다른 경험을 한다. 샤프로 대충 색을 칠한 학생도 있고 나름 색연필로 알록달록하게 칠해 오는 학생도 있다. 모두 칭찬 도장을 찍어 준다. 설마 이런 말도 안 되는 숙제를 검사하랴 하며 안 해 오는 학생도 있다. 그러면 나는 그들을 앞으로 불러 칠판을 잡고 엎드리게 한다. 그리고 교실 앞에 있는 소화기를 들어 엉덩이를 때린다. 아프지는 않다. 그냥 때리는 시늉으로 가볍게 소화기를 갖다 댄다. 난생처음 소화기로 체벌을 당한 학생들은 기꺼이 아픈 척 연기를 한다. 그들도 즐겁고 나도 즐거운 수업이 시작된다.
색칠 숙제는 그리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얼마 뒤부터 모든 교과서가 컬러로 발행되면서부터다. 소화기 체벌은 다른 이유로 그만두었다. 고3 담임을 하던 때였다. 어느 날 새벽 2시경 전화가 울렸다. 파출소라고 했다. 학생이 사고를 쳤는데 부모님 연락처는 말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으니 와서 수습을 하라고 했다. 술을 먹고 놀다가 성인 두어 명과 시비가 붙었는데 느닷없이 상가에 비치된 소화기를 들고 위협을 가했다는 것이 사건의 전말이었다. 다행히 피해가 발생하지 않아 잘 마무리되었다. 술에 취해 정신없는 녀석을 태우고 돌아오며 많은 생각이 오갔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보고 자란다. 그렇기에 오늘 사건의 책임은 나에게 있었다.거의 사용할 일 없는 소화기를 일상으로 소환한 것은 나였으니까. 그날 이후 수업 시간에 소화기를 사용하는 것은 그만두었다.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