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민망하고 발칙한 속내를 털어놓겠다고 글을 시작했는데
오늘은 건방진 얘기로 시작하려 한다.
그는 나의 대변인같다.
부족한 나의 필력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나를 어찌 그리 세밀하게 표현해 주는지...
그래선지, 그의 글은 전부 나를 위한 글처럼 읽힌다.
그의 추구가 나의 추구와 같고
그의 삶의 결이 나의 결과 같고
그의 일기도 나의 일기를 들킨 것같다.
심지어 그가 나를 바로 옆에서 관찰하는 것도 같다.
나는 소로우와 카페에 마주 앉아 얘기하고 글쓰며
그의 정신을 내게 담아 배우고 따르고..
그렇게 그와 함께 살고 있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진짜 신날텐데!!!!! 대박인데!!!!!!!!!!!! 완전 좋겠는데!!!!!!!!!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나는 급기야...
소로우와 동거중이라는 망상에도 빠지고
그의 죽음을 예견한 글에서는 혼자 장례식도 치르는...이상행동(?)도 서슴치 않고...
혼자서 소로우와낄낄대다 훌쩍대다를 반복하는 나는 진짜 또 건방지지만 소로우를 닮았고 소로우가 너무 좋아 소로우는 나의 진정한 동반자로 나와 같이 산다고 여긴다. 오죽했으면 소로우의 '월든'과 '시민불복종'은 원서로 읽고 내가 번역까지 다시 했을 정도니까... 소로우에 대한 나의 추앙은 나도 놀랄 정도다.
시대를 초월해 과거의 그가 지금의 나를 이리 데리고 사는 이유는 그가 남긴 '글'이 그와 나를 이어주기 때문이다.심지어 나는 죽으면, 소로우와 그의 절친인 에머슨, 채닝까지,그들이 만날 때 나도 끼워달라고 졸라볼 요량이다.
이렇게
시대, 인종, 환경 모두를 초월해 연결짓는 수단이 있다면 '글'이 아닐까.
'글'속에 담긴 '삶'이 아닐까.
'삶'속에 담긴 자신만의 '사상'이 아닐까.
무수한 책을 읽고 위대한 기억의 힘카지노 게임 사이트 제 아무리 정신을 꽉 채운들 그것이 자신의 색채를 띈 사상카지노 게임 사이트 정립되지 않는다면 그저 지식의 탐식과 탐닉일 뿐 그 무엇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다가 사이사이 성현들에게 묻는다.
겸허히 묵묵히...
당신같은 통찰을 나도 지니려면어느샘물을 마시면 되냐고,
당신같은 과감한 표현을 해내려면어디에서 열매를 따오면 되냐고,
당신같이 글에 영혼을 담으려면 어디에서 나를 씻어내야 하냐고...
그렇다고 나는 돌다리를 수선하고 있는 저 사람들 옆을 지나가기를 꺼려하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에 시(詩)는 없는지, 또 나의 반성의 재료는 없는지 알아볼 것이다. 숲과 들등 자연의 광대한 모습만을 보려는 것도 일종의 편협함이다. 위대한 지혜는 사람들의 일상과 관련되지 않을 수 없다(주2).
이렇게 한탄과 탄식과 갈구로 묻는 내게 소로우는 그저 내 주변을 보라 한다.
그저 지나가는 사람, 사물... 모두를 자세히 들여다보라 한다.
내가 갈구하는 모든갈증의 해갈은이미 내 곁에 존재한단다.
아....나는 사람들의 일상에 크게 관심이 없다. 그들이 뭘 먹고 어디를 가고 왜 웃는지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나는 그래선지 사람만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항상 먼저 자리를 뜨거나 침묵하거나 애써 자리의 숫자를 채워주는, 그저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나다. 나의 이러한 성향이 한탄과 탄식의 원인일 수도 있겠다 싶다.
소로우의 말처럼 나는 편협했던 것이다.
'고립'을 원하니까, '고독'이 좋으니까, '혼자'가 편하니까그렇게 적당히 사람들에게서 멀어져 글을 쓰면 되는 줄 알았는데물리적 독립은 중요치 않았다.관심에 관여에, 관찰을 통해 사람과 사물과 사태와 관계를 맺고 관조의 시선을 찾아내야만 하는 것이었다.
넓고 멀리 볼 수 있는 시야와 그 지점에서 세심한 것을 들여다보는 작은 시선이 함께 요구된다.
모든 것은 무심한듯 연결되어 있다. 무관한 사태와 사물, 그 어떤 것도 서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 없을터인데 나는 주변을 들여다보기에 소홀하여 연결지점에 구멍이 나니 나의 사상을 정립해가는 글쓰기에서도 난감한 순간에 자주 부딪혔던 것이다.
광대한 것만을 보려는 편협함에서 벗어나
일상에서 그 접점을 날카롭게 포착해야 한다.
그렇게 나의 글이 나와 모두를 연결지어 공감을 끌어내는 글이라면 좋겠다.
어떤 언어든 뱉어내고야 마는혀에서 모두를 위한 소리를 만들 수 있는공명의 시선카지노 게임 사이트
상세한 설명, 서술보다는 추상적인 울림카지노 게임 사이트 실체를 그려내는 통찰의 시선카지노 게임 사이트
하나만을 상세히 묘사하는 것이 아닌,전체에서 연결된 하나를 포착하는 온전(whole)의 시선카지노 게임 사이트
대다수가 표현하는 단어가 아닌 내가 창조한 언어로 보편에 스며드는 독자적인 시선카지노 게임 사이트
적당한 거론카지노 게임 사이트 무방할지라도 그 '적당'이, 읽는 이들의 혼을 떨게 할 수 있는 영혼의 시선카지노 게임 사이트
나의 글이 나를 데리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주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내 공간을 벗어나 다른 곳카지노 게임 사이트 발길을 내미는, 내 시간을 이.유.없.이. 쓰는 것이 아주 못마땅한 나도 10분씩 들여다보기, 이유없이 어슬렁거리기, 가는 길 되돌아 오며 본 것과 되돌아가며 보는 것의 차이체크하기 등등 내 나름카지노 게임 사이트 나를 훈련시켰다. 우두커니 앉아있으며 귀만 열어도 보고 가만히 서서 귀는 닫고 눈만 떠보기도 했고... 이런 안하던 짓을 통해 내 글이 깊어진다면... 나는 눈과 귀를 트이게 하고 싶었다.
분명 나는
이상과 현실이 먼 거리에 존재함을 안다.
경박한 삶과 신성한 삶의 거리가 먼 것도 안다.
반복되는 일상과의도로 의지를 다지는인생이 먼 거리라는 것도 안다.
'지금의 나'와 '내가 원하는 나'도 자로 잴 수 없는 먼 거리에 존재하는 것도 안다.
무심한 것과 신성한 무관심은 다른 차원의 정신이라는 것도 안다.
이렇게 먼 거리를...
나만이 지닌 하나의사상의 궤로 꿰려면
이것을 무시하면 저것카지노 게임 사이트 연결시킬 수 없기에
여기서만 보면 더 큰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의도를 포착할 수 없기에
일상만 즐기는 편협은 거대한 조화를 담아낼 수 없기에
삶의 궤도에서 지금을,
대자연의 궤도에서 사람을,
인생의 궤도에서 현상을...
그리 담아내어야만 한다.
점 하나를 바라보더라도 거대한 시선카지노 게임 사이트부터의 날카로움을 보탠 응시여야
그 점 하나와 우주의 연결을, 그 점 하나가 우주의 일체를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가치를 담아낼 수 있다.
그래야 나의 정신에서 발현되는주장을 설득카지노 게임 사이트, 아집을 사상카지노 게임 사이트 초월시켜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경계를 너머 무한한 사상의 바다로 나의 글이 길을 내게 할 수 있다.
나는 이제부터 일상에서 작은 일탈을 해보련다.
무관심한 것카지노 게임 사이트 애써 눈길주고
낯선 것들에 오래 귀를 기울이고
드문 것들을 귀하게 들여다보며
그것들이 품은, 이미 '자체로서 존재'하는사랑과 아름다움에 내 가슴이 어찌 진동하는지나는 느껴보련다.
인생은 하나하나의 행위를 점점이 이은 선, 곧은 자로 줄을 그은 선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도약을 했으냐에 관계없이 그 선은 늘 직선이다. 우리의 인생은 극히 사소한 일을 얼마나 잘했는가에 의해 평가받는다. 인생은 이 사소한 일들의 최종적인 손익 결산이다(주3).
내 시야에 다 담지 못하는 하늘의 시선카지노 게임 사이트
발밑을 기는 개미의 걸음에 찬사를 보낼 것이며
내 시야를 모두 채워버리는 바다의 시선카지노 게임 사이트
파도에 밀린작은 물방울의 앙증맞음에 폴짝 뛰어볼 것이며
내 시야에 쏙 들어온 저어기 먼 달의 시선카지노 게임 사이트
사람의 내면에 반짝이는 영원성을 포착할 것이며
내 시야를 홀딱 반하게 한 화려한 꽃의 시선카지노 게임 사이트
향기맡는어린아이의 빠알간 순수함에 감동할 것이며
내 시야에 담은 적 없는 땅속 깊은 뿌리의 시선카지노 게임 사이트
돌틈사이 새싹의 강인한 신비로움에 경탄할 것이며
내 시야에 추상카지노 게임 사이트 담긴 과감하고 장엄한 우주의 시선카지노 게임 사이트
내 앞에 있는 이의 활짝 열린 치아에 함께 환할 것이며
내 시야에 영롱한 자극을 무한정 선사하는 영혼의 시선카지노 게임 사이트
까만 눈동자의 미세한 떨림에 함께 떨 것이며
내 시야의 배경이자 바탕이자 근본인 심연의 시선카지노 게임 사이트
내 세포 곳곳에서 꿈틀대는 사소함들을 끄집어낼 것이며
또한,
내 시야에 단 한번도 보여진 적 없는 '내 글을 읽는 모두의 시선'카지노 게임 사이트
내 글 곳곳에서 꿈틀대는 어휘들을 매만질 것이다.
나는 그렇게
큰 시야에 작은 시선의 날카로움을 담은 글의 창조자이고 싶다.
아니, 영혼의 매개자이어야 한다.
창조되어야 할 글이 나를 통해 나오고야 마는,
거대한 하나의 궤를 잇기 위한 작은 점카지노 게임 사이트서의 글 한편...
내 글은내가 쓰는 것이 아닌, 나를 매개하여 창조되는 글이길 바란다.
나의 비옥도를 높여 나의 삶을 도구로 어떤 글이든간에 먹음직스럽게 버무릴 수 있길 바란다.
그렇게, 누군가의 영혼에 양분카지노 게임 사이트 흡수되길 바란다.
이 작은 시도가 한가함에 젖은 감상의 낭비라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이 작은 시도로 인해 내 틀이 깨지고 온전한 나의 원석을 드러낼 수 있지는 않을까?
이 작은 시도의 끝에오로지 나와 내 글이 일치되는 궤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 작은 시도가 전체 궤도의 연결을 위한 분절된 행위라고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작은 시도가 '나'라는 도구를 통해 세상에 필요한 '글'이 탄생되는 찰나라고감히 인정해도 되지 않을까?
훌륭한 문장은 어쩌다 우연히 쓰여지지 않는다.
글에는 어떠한 속임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쓴 최상의 작품은 그의 인격의 최상을 나타낸다.
모든 문장은 오랜 시련의 결과이다(주4).
주1 헨리데이빗소로우[ Henry David Thoreau ] : 미국 사상가 겸 문학자.
주2,3,4 소로우의 일기, 헨리데이빗소로우, 1996, 윤규상역, 도솔출판사
https://cafe.naver.com/joowonw/12681
[지담연재]
월 5:00a.m.[감정의 반전]
화5:00a.m.[엄마의 유산]
수5:00a.m. [나는 시골로 갑니다.]
목 5:00a.m.['성공'과 '부'에 대한 소고]
금 5:00a.m.[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토 5:00a.m. [대가에게 배우는 글쓰기]
일 5:00a.m.['성공'과 '부'에 대한 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