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한 토막
구토하듯 울고, 악을 쓰고, 칭얼대기도 한다. 또 어떤 때는 재촉도, 잔소리도 담겼고, 간혹 기적처럼 향기까지 풍긴다. 이 정도면 다행이다. 마치 세상 끝에서 울리는 듯한 소리도 있다. 뒷머리를 당기는 예기치 못한 전화음은 대번에 심장에 파고들어 긴장의 파동을 울린 뒤 재차 정수리에 닿는다. 아버지 때도 그랬고, 친구 어머니 부음 때도 그랬다.
“아재요, 아버지 돌아가셨어요.”
그 봐! 벨 소리는 거짓말하지 않아. 조카 몇 마디가 사촌 형 얼굴을 눈앞에 데려놓았다. 세상 관심 밖에 선 이들, 먹은 것이 없어 게워 낼 것도 없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알음알음 찾아오면 내치는 법이 없었다. 응달에서 살아왔지만, 따뜻하게 전해지는 뜸이나 따끔한 침으로 살피길 주저하지 않았다. 돈은커녕 음료수 한 병 받는 따위도 없었다. 세월이 추억마저 갉아먹자, 친구들 도움에도 한계가 왔다. 대신 형수가 모진 애를 썼지만, 구멍 뚫린 항아리였다.
몸단장한 뒤 거실로 나오자 열어 놓은 창으로 청량한 가을바람이 밀려온다. 명절이 가까워져 온다는 뜻이다. 추억한다는 것, 가슴에 저절로 들어앉은 아련한 유년의 기억을 야금야금 되새김질하며 곰삭은 맛을 음미한다. 집을 나서기 전, 사촌 형이 먹다 남은 것을 빼앗다시피 가져온 한방차를 우렸다. 형 손맛이 코끝을 건드리고, 창으로 들어오는 가을 햇살이 침을 잡은 형 손가락을 투명하게 한다. 은빛 침 끝에 매달려 타임머신을 탄다.
아버지는 삼 형제 중 둘째였다. 명절이 되면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고 큰집이 있는 봉화 문단이란 마을로 아들을 앞세워 찾곤 카지노 게임 사이트. 큰집은 야트막한 산 중턱에 외롭게 서 있는 외딴집이었다. 제법 넓은 마당을 중심으로 마당 끝에는 아래채를 두 채씩이나 거느렸으며, 높은 봉당 위로 높게 올린 대청을 둔 팔작지붕 기와집이었다. 대문을 지나 마당으로 쭈뼛쭈뼛 들어설 때 생소한 불편함을 단박에 떨쳐버리게 하는 이가 사촌 형이었다. 훌쩍 큰 키에 흰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모습을 올려다볼 때면 마치 장승 같다고 생각카지노 게임 사이트.
큰집에는 만화책은커녕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과는 몇 마장 떨어진 외딴집이라 친구도 없었다. 먼데 하늘에 선을 그으며 흐르는 산등성이를 바라보다 저 아랜 무엇이 있을까 궁금카지노 게임 사이트. 호수같이 둥근 마을에 몸을 담그고 싶다는 어린 열망이 용기를 부채질카지노 게임 사이트. 망설이지 않았다. 신작로가 있는 마을까지 내려가는 모험을 단행카지노 게임 사이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또래 아이 네댓 명을 만났다. 시골 아이들끼리는 통하는 뭔가가 있어 자연스레 금방 친해졌다.
그들을 따라 더 멀리 모험에 나섰다. 아이들 손에는 눈썰매에 쇠 날 대신 통나무를 단면으로 잘라 바퀴처럼 단 놀잇감이 들려 있었다. 아이들은 잡풀과 잔디가 적당히 어우러진 언덕에 올라 그것에 몸을 싣고 용기 있게 아래로 굴렀다. 언덕 아래에는 벼를 수확한 후 남은 볏짚이 쌓여 있었다. 지구 중력에 몸을 맡긴 채 속도감을 즐기며 쌓아놓은 짚단에 머리채 처박았다. 아이들 요구대로 따라 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렇게 몇 번 바람을 가르며 미끄러지는 속도를 즐겼다.
놀이에 빠져 해가 저물어 가는 줄 몰랐다. 푸르스름한 이내가 깔리자 가슴속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아이들과 헤어진 후 서둘러 추석 상 준비가 한창인 큰집으로 향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런데 개 한 마리가 길 가운데 떡 버티고 서서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이냐는 듯 검열한다. 눈동자에 힘을 주고 마주했지만, 절간 입구 금강역사같이 생긴 놈이 도무지 물러설 기미조차 없다. 아연 등줄기에 서늘한 기운이 훑고 지나갔다. 주위에 아무도 지나가주지 않았다.
도망쳐야 카지노 게임 사이트.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다가 개울에 징검다리가 놓인 곳을 향해 뛰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사기충천한 놈이 왈왈 짖으며 달려든다. 뒤를 돌아보자 놈의 귀가 뒤로 날린다. 멈춰 돌아섰다. 냇가에 돌멩이를 집어 들고 던질 자세를 취카지노 게임 사이트. 놈이 멈칫 놀라는 듯카지노 게임 사이트. 팔매질카지노 게임 사이트. 내 손을 떠난 돌멩이를 약 올리듯 요리조리 잘도 피한다. 잠시 멈칫하는 사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다시 달려든다.
재차 달렸다. 그리고 멈춰 서서 돌을 던지고, 또 달리기를 몇 번 반복카지노 게임 사이트. 놈이 나랑 놀기가 지루했는지, 아니면 그놈도 돌아갈 길이 너무 먼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길가에 오줌발 질질 갈기더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서 간다. 억울카지노 게임 사이트. 돌을 집어 놈을 향해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돌이 땅바닥에 튀며 뒷다리에 명중카지노 게임 사이트. 이제는 놈이 도망쳤다. 다시 던졌지만, 놈은 이미 사정거리를 벗어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어둠과 적막만이 남았다. 아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입으로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으며, 가슴은 쿵쿵 뛰었다. 검정고무신 한 짝은 어디에서 벗겨진 것인지 어둠에 맨발이 희게 빛났다. 왔던 길을 되돌아 찾아봤지만, 어둠이 세상을 먹어 찾을 수 없었다. 어머니 화난 얼굴이 크게 다가왔다. 혼날 각오를 하며 신발 찾기를 포기했다. 어림짐작으로 방향을 잡아 걸었다. 하늘에 별 무리가 초롱초롱 날 놀리는 것 같았다. 먼데 산새 소리가 구슬피 들렸다.
한쪽 신발짝 소리에 맞춰 새가 이름을 부르는 듯카지노 게임 사이트. 점차 새소리와 분리되어 선명하게 들렸다. 익숙한 이름이 허공에 파도를 일으키며 밀려들었다. 지금도 까닭을 알 수 없지만, 눈물이 쏟아졌다. 가까이서 들려왔다. 대답 대신 소리쳐 울었다. 사촌 형이었다. 손전등 불빛이 얼굴에 닿자 밀리듯 풀썩 주저앉았다. 눈물 콧물 범벅된 얼굴을 손수건으로 알뜰하게 닦았다. 마지막으로 코를 팽 풀어냈다. 형이 더러워진 손수건을 내 윗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너 가져.” 한다. 형이 손바닥으로 내 볼을 감쌌다. 이토록 따뜻한 기운은 어머니 다음으로 두 번째다.
사촌 형 등에 업혔다. 화롯불인 양 가슴이 따뜻카지노 게임 사이트. 음성조차 따뜻카지노 게임 사이트.
“등에 얼굴 기대. 콧물 붙이지 말고.”
중학생이 된 어느 추석 전날, 여느 때처럼 큰집을 찾았다. 결혼한 사촌 형과 형수와 조카까지 반겼다. 사촌 형뿐 아니라 어린 시절에는 대궐과도 같았던 기와집이 그토록 왜소함에 놀랐다. 문득 고무신 기억이 떠올라 어머니 심부름 가던 길에 에둘러 그 길을 답습카지노 게임 사이트. 냇가 바위틈에 몸을 반쯤 땅에 담근 채 빛바랜 고무신을 보았다. 내 신발보다 큰 고무신을 보며 웃었다. 신발이 나를 앞질러 자라는가 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가슴에 황량한 바람만 몰아치는 것 같아 몸도 마음도 서늘해지는 계절이다. 사촌 형과의 인연은 이 세상에서 끝났다. 큰아버지 능력을 이어받아 재능을 펼쳤지만, 학위 국가로 변하면서 대를 이은 의술은 하등 쓸모가 없어졌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 악이 천사의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도움을 받고도 시기를 거두지 못한 사람의 밀고로 얼마간 단절된 세상에 분리되어 살아야 했다. 언젠가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했다. 가슴에 어떤 성수로도 씻기지 않을 상처를 안았지만, 그 속에서 많은 사람을 쑥뜸으로 펄쩍 뛰게 했던 것만 기억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주변인만이 느낄 수 있는 고독, 햇볕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응달지고 그늘진 환경이었지만 기쁜 것만 기억하고, 행복했던 시절만 떠올리고, 내 삶에 절정의 날이 남았다고 생각하면 힘이 난다던 형이 떠나갔다. 그가 남긴 춤사위가 세상 어디에선가 삶에 리듬이 되고, 누군가에게 흥이 되어 사랑의 힘을 발휘하리라.
부유물 둥둥 떠다니는 기억을 끄집어내 재차 생채기를 만드는 삶에 일침을 놔주고 온전한 영혼이 되어 떠났다. 파란 가을하늘 높이 새털구름이 사다리처럼 놓였다. 형을 떠나보낸 산 위에서 나는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