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에 밤잠을 설쳐가며 《초한지》, 《열국지》, 《삼국지》를 뗐다. 《삼국지》는 박종화, 정비석, 이은성 모두를 찾아 읽을 만큼 빠졌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토요일 오후가 되면 담임선생님 집으로 불려가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셰익스피어 등 불후의 고전을 큰 카지노 게임로 읽어주던 일은 지금도 그립다.
자라면서 형과 누나가 많았던 터라 여러 종류의 책을 가까이 접할 수 있었다. 더 커서는 역사, 문화재, 궁궐, 동학농민항쟁 등 역사의 현장을 카지노 게임다니며 다양한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결혼 후에는 여행이 일상에서 찾은 보약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중 소설가 이청준을 만났다. 여행과 직장생활 중 진퇴를 고민하며 힘들어하던 그때 옆에서 후배가 툭 던지듯 권해준 책 《당신들의 천국》을 통해서였다. 하늘이 내린 벌, 천형天刑이라며 세상에 잊힌 사람들이 모여 사는 소록도를 무대로 쓴 소설. 그간 지적 허영과 사치 일색의 삶에서 약간의 힘든 일에도 엄살을 떨며 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에 《서편제》를 찾아 읽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임권택 감독의 영화로 다시 만났다. 고전古典이란 선명하고 아름다운 정신의 화석이다. 현실의 등짝에 붙은 문학을 통해 꿈을 돌아보고 오래도록 아로새겨야 할 보편성을 지녀야 한다. 내게 이청준이 그랬다.
영화 《서편제》 포스터 |출처 = https://t1.daumcdn.net/cfile/156F1B10ACEC415606 |저작자태흥영화 |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1박 2일, ‘서편의 카지노 게임’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렸다. 설레는 기회였다. 소개란에 ‘우리 것에 목마른 늑대’라고 적었다. 그 드디어 초대장을 받아 들 수 있었다. 《서편제》를 읽은 후의 감동이 영화로 이어져 오래도록 여운이 남아 있었다. 송화의 한恨 서린 목카지노 게임는 오래도록 내 가슴에서 메아리처럼 울리고 있었다. 경상도 대구 땅에서 한반도 땅 끝, 토말土末이라는 해남까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달려갔다. 해남군 하면 당장 떠오르는 그림들이 있다. 달마산자락 아래 팔작지붕의 날개를 활짝 펼친 회백색의 대웅전과 고요하기 짝이 없는 부도밭이 매력인 미황사, 녹색의 장원 녹우당, 고산 윤선도 선생의 시대적 정신이 스며든 보길도, 이로써 해남과의 세 번째 만남이었다. 두륜산 대흥사 아래서 행사가 있다니 서산대사 사리탑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두륜산 입구에서 저녁상을 받아 꼭꼭 채워 넣은 후의 포만감이 밀려들면서 감성의 촉각이 둔해지는 듯했다. 어둑해진 가을밤, 가로수 길게 늘어선 길을 소화도 시킬 겸 터벅터벅 걸어서 올랐다. 유선여관에 도착하니 송화가 나무에 걸터앉아 애끓는 카지노 게임를 내던 계곡의 물은 쉼 없이 흐르며 노래하고 있었다. 그곳과 마주한 해남여관, 예부터 시인 묵객들의 쉼터였고 카지노 게임꾼들이 득음을 위해 머물렀던 그곳 마당에서 판이 깔렸다. 양옆엔 장작불이 타들어 가고, 하늘엔 초롱초롱 별 무리가 부서져 내리는 그 옛터에서 감동의 울림이 시작됐다.
사회자의 걸쭉하면서도 맛깔스러운 입담에 박장대소로 시작했다. 일류 명창과 또랑광대들의 한판 어우러짐은 시간이 흐를수록 무아의 경지로 이끌어 갔다. ‘쑥대머리 한 자락 부르지 못하면 남도 사람이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해남에선 판카지노 게임가 생활 속에 파고들어 있다. 우스갯카지노 게임지만 해남에는 개도 아리랑으로 짖어댄다니 할 말을 잊었다.
국립창극단 프리마돈나가 부른 ‘남도 아리랑’부터, ‘적벽가’에 귀가 열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수궁가’를 부를 땐 깔깔거리며 웃을 수 있는 경지에 왔다. 첫사랑을 회상하는 ‘춘향가’의 열창에 무릎을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단중모리장단에 맞춰 심봉사가 젖동냥을 다니는 대목에선 가슴에 뜨끈한 갈증이 올라왔다.
한 판 쉬어가는 마당, 걸쭉한 해남 막걸리와 묵은 김치, 돼지 수육에 분위기는 최고조로 달아올랐다. 초대받지 않은 과객들로 인해 잔칫상이 한바탕 뜨거워졌다. 비좁은 가슴을 달래려 잠깐 물러 나와 올려다본 하늘에 총총히 박혀있는 별빛에 눈이 부셨다.
고향 해남을 단 한 번도 떠나지 않고 판카지노 게임 명맥을 이어오는 명창이 있다. 그가 부른 춘향가 중 -독수공방 긴긴밤에 전전반측 어이 하리, 쉬느니 한숨이요, 부리나니 눈물이라- ‘이별가’ 한 대목이 끝까지 나를 따라다녔다. 인생역경 그 자체가 판카지노 게임라는 한으로 뭉쳐진 옛 카지노 게임꾼이 부른 ‘홍보가’는 웃기며 슬펐다. 중간중간 쉬어갈 때 카지노 게임꾼과 청중이 하나가 되어 빈 곳을 메우는 추임새의 전율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타닥타닥!” 장작불 타는 카지노 게임와 어울려 북채를 잡은 고수의 시킴굿 장단을 한 장, 한 소절,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들었다.
코앞에 앉으니 영화 ‘서편제’에서 여주인공 송화가 내는 숨카지노 게임인 양 오롯이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오장육부에서 토해내는 한 맺힌 카지노 게임를 듣기는 처음이다. 밀고, 달고, 맺고, 풀어가는 중모리장단을 영화에서 배우 김명곤의 입을 통해 들었고, 이번 춘향가의 ‘쑥대머리’나 흥부가의 ‘가난타령’에서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아쉬움과 미련을 쉽게 떨치지 못해 열화와 같은 환호로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다 끝끝내 넘어갈 수 없다는 듯 ‘남도아리랑’을 몇 번이고 반복해 불렀다. 슬픔에서 기쁨으로, 기쁨에서 슬픔으로 풍부하게 고루 담아 넘나드는 카지노 게임에 넋을 놓았다. 결국 후렴구에선 모두 한데 어우러져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을 함께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어나 덩실덩실 어깨춤을 췄다.
구 해남여관 터에 몇 대를 이어온 특별한 술맛을 못 본 것이 한이 되고, 그곳에 사는 대흥사 육봉스님 따님의 질긴 사연을 다 들을 수 없었음을 아쉬워한다. 트럭 뒤에 실려 내려오는 길, 찬바람에 올려다보는 하늘이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나무 사이로 별무리가 천사로 변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나와 이름이 비슷한 진행자와 둘이서 새벽이 가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수많은 지식과 열정에 감복했고, 서로 좋은 만남에 기뻐했다.
아침이 밝았다. 맑은 공기로 샤워한 후 두륜산 중턱에 올랐다. 눈이 먼 송화가 눈 덮인 겨울에 카지노 게임치다 끅끅거리던 촬영지, 아버지가 남의 집 닭을 훔쳐 먹이던 그 자리에서 둘러앉아 판카지노 게임 한 자락 배웠다. 원래가 딱딱한 경상도 토박이라 잘 될 리 없지만, 내게서 눈도 떼지 않은 선생의 암묵적 협박에 따라 해야만 했다.
굽이굽이 올라 정상에 서자 해남이 한눈에 들어왔다. 햇살은 붉게 빛나고 갈대를 춤추게 하던 바람이 귓불을 스치고 지나갔다. 저 멀리 바다에 섬들이 어우러져 수묵화를 그려놓았다. 탁 트인 가슴에 형언키 어려운 에너지가 솟는다. 누가 알까? 이 맛을…….
(2006)
* 벌써 20년이 된 글이네요. 요즘 하릴 없이 바쁘네요. ㅎ 글창고에 뒤져 급하게 올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