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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o습o관 Feb 19. 2025

04. 카지노 게임냐 믿음이냐

수수께끼 풀릴까?

여러 군데 미역국을 먹고 연락받은 대학 등록 창구에서 아버지는 물었다.

"진짜 붙은 거 맞아요?"

수능을 망치고 상처가 날 대로 난 자존심에 그날 아버지 질문은 의심이었고 소금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날 아버지 나이가 훨씬 지나고 내 아이가 그때의 내가 되고 보니

그날 그 질문이 의심해서가 아니라 믿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딸, 속상한데 여기라서 붙여주는 거 맞지요? 그런 믿음.


종교는 진리라고 카지노 게임하지 말라하고

과학은 진리인지 자꾸 확인하고 설명해 보라고 한다.

그런데 종교도 과학도 찾는 건 궁극의 진리다.

진리에 가는 방법이 이렇게 다르다.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진리인데 우리는 카지노 게임은 싹부터 자르거나또는 카지노 게임을 밥 먹듯 하는 것일까?

우리가 의심과 믿음사이를 오가며 피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두려움이 아닐까?

틀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실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사실이 아닐지 모른다는 두려움

진리가 아닐지 모른다는 두려움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막연한 두려움.


카지노 게임하지 않고 믿으면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있다. 번뇌가 없다.

굳이 어려운 공부 해가며 증명할 방법을 배울 필요도 없다. 묻지도 말고 믿으면 끝난다.

그런데 카지노 게임 고개를 든다. 그러니 죄인으로 머리를 조아리는 수밖에.


믿기 위해 카지노 게임하면 몸과 마음이 고되다.

증거도 찾아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한다. 카지노 게임에는 끝도 없으니 불안하기 짝이 없다.

믿었다가 뒤통수 맞는 순간은 없고 싶으니까. 카지노 게임만이 살길이다.


요즘 학교에서 만드는 평가 항목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필수 항목이 비판적 사고 능력이다.

과학이든 사회든 심지어 국어 과목을 가도 진짜 정보가 맞는지, 의도가 무언지 비판해 보란다.

왜일까?

예전엔 아들은 아버지 말을 들으면 됐는데.

예전엔 애들은 선생님 말을 믿고 따르면 됐는데.

예전엔 조상님만 잘 챙겨도 됐었는데.

이제 다수가 알아버렸다.

아버지도 모르는 세상이 있다는 걸.

길이 하나가 아니라는 걸.

진리가 하나가 아니라는 걸.

그러니 믿는 이도 카지노 게임받고, 믿기 위해 카지노 게임하는 수밖에 없다.


카지노 게임으로 밥 먹고 사는 과학자들도 새로 등장한 카지노 게임을 등지고 자신의 이론을 맹신한다.

장하석 교수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에 보면 아인슈타인 특수상대성 이론을 만난 맥스웰도 뉴튼의 중력이론을 만난 데카르트학파들도 카지노 게임보다 믿기를 선택했다.

카지노 게임 고되질 때쯤 슬슬 믿고 싶어진다.

원래 믿기 위해 카지노 게임하는 거였으니까.

뭐 하나 그럴싸한 거리하나 있으면 믿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다.

그냥 믿은 것이 아니라 의심할 만큼 하고믿은 것이니 제법 단단한 믿음이 된다.

그것이 마음의 소리든, 듣고 싶어 하던 편향된 기사든, 조작된 데이터라고 하더라도.


카지노 게임 없는 믿음

믿고 싶어서 하는 카지노 게임

진리로 이르는 길 풀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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