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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o습o관 Feb 20. 2025

05. 온라인 카지노 게임냐 본질이냐

수수께끼 풀릴까?

얼마 전 미국 전 오바마 대통령이 즐겨 찾았다던 브런치 식당에 다녀왔다.

같이 가는 사람 성화에 조사해 온 성의도 있어 아침댓바람에오바마 대통령이 즐겨 먹었다던 스테이크까지 꾸역꾸역 먹고 왔다.


식당에 들어서니 흡사 한국의 휴게소 느낌, 그도 아니면 대학 구내식당 느낌의 인테리어가 눈에들어온다.

그래. 원조라쟎아. 옛날느낌 나 줘야지. 번지르르 때 빼고 광내서 잘 나가는 브런치 레스토랑은 아니니까.

손님은 만석이다. 대학가 옆이라 그런지 젊은 친구들도 많이 보이고 유색 인종도 많이보인다.

딱 대학 구내식당처럼 쟁반을 옆으로 밀고 이동하며 주문한다.

처음 간 나를 제외하고 내 앞뒤로는 다들 주먹인사를 하며 메뉴판도 보지 않고 시킨다.

나는 대통령 추천 메뉴 1번과 3번, 그리고 대통령이 극찬했다던 잡곡 토스트를 시켰다.


메뉴가 나오고 토스트를 한 입 먹은 순간 나는 실소가 났다.

2장에 1500원 정도 하는 토스트. 장담하건대 홈메이드, 유기농, 저 숙성 48시간 발효 이런 건 절대 아니다.

모두가 다 아는 그 맛. 누가 해도 똑같은 그 맛. 그런 토스트였다.

여길 꼭 가야 한다던 사람이 다 먹고 나오며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그런다.

에이 브런치는 어디든 맛이 다 똑같구나.


이 브런치 식당보다 더 맛있는 브런치 식당을 찾기는 어렵지 않을 것 것 같다.

언뜻 보기에 따라 하기 어려운 레시피도 없고 특별한 메뉴도 없으니 맛을 베끼기는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똑같은 이름으로 가게를 100개쯤 분점을 내는 것도 어렵지 않아 보인다.

한국 같으면 여기 하나 원조 붙으면 나도 질세라 원조를 붙여서 몇 걸음마다원조가 줄을 서야 하는데 동네에 비슷해 보이는 건 딱 하나다.

다른 식당이 원조를 붙일 수 없는 이유는당연 오바마 대통령과의 일화고 상징성이다.

대통령이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당시 그가 즐기던 문화의 중심지였고 흑인 인권 운동가였던 오바마 대통령이 방앗간 드나들며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던 곳이었기에 의미 있었을 테다.


키오스, 전광판, 진동벨이런 거는 눈에 씻고 찾아봐도 없다. 또 다른 특징은 다른 가게들은 주방장을 제외하면 다른 일꾼들은 남미에서 온 사람들, 십 대들, 아줌마들도 있게 마련인데 여긴 하얀 요리사 복을 입고 서 있는 중년 이상의 남자 요리사만 10명 가까이 된다는 거다.맨 앞에서 주문을 받는 주인아저씨 말고는 별로 바빠 보이지 않는다.주문을 받고 쟁반을 밀면서 만나는 다른 아저씨들은 내가 배식대 시작에 뭘 주문했는지 듣지 못해서 내가 뭘 주문했는지도 계속 말해줘야 한다.

그런데도 이 식당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성을 나름 유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가격이 다른 브런치 가게보다 메뉴당 가격이2-3불씩 싸기 때문이다. 마치 구내식당처럼 저소득층, 학생들을 대상으로 제법저렴하지만 따뜻한 음식을 제공한다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말이다.


창조는 모방의 어머니라고 했다. 창조를 위해 모방하기 쉬운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다. 아무리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똑같이 모방했다고 해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모방 끝에 창조를 이루는 순간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대체할 수 있을 거라고 많이들 걱정한다.

요즘 학교에서 아이들과 읽는 책과 관련해서토론을 해보니 녀석들도 적쟎이 걱정을 하는 모양이다.

로봇이나 기계가 인간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대체하기는 어렵지 않은 것 확실해 보인다.

흔히 인간의 감정은 따라 하기 어렵지 않겠냐고 했지만 표정이나 언어에서 감정을 읽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로봇강아지도 개발되었다고 하니 공감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도 가능해 보인다.

따라 하지 못하는 것은 이제 온라인 카지노 게임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자극과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신체적 물리적 감정적 변화를 일으키고 이 변화가 생각과 사고에 영향을 주어 도덕적 윤리적 선택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다.

로봇이 고통의 정도를 인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꼬집는 강도가 세지면 수치로 나타낼 수 있을 테니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고통의 강도에 따른 감정적 변화, 반응도 알고리즘을 통하면 다양한 감정으로 연결할 있을 거 같다.또 감정과 상황에 따른 윤리적, 도덕적 선택을 하도록 프로그래밍하는 것도 가능할 거 같다. 인간도 교육을 통해 선택하게 되듯 로봇도 프로그래밍을 통해 선택하게 된다며 결과적으론 같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하는 거라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럴까? 정말 다른 것이 없을까?

인간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느낀다는 것이다. 고통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고, 죄책감을 느낀다.

느끼는 상태의 뇌파를 로봇에서 가르친다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건 느낀다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따라 하는 것이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이해한 것이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일수 없다.

내가 느끼는 것과 내 옆자리 앉은 친구가 느끼는 것이 같은 수 없다. 같은 장면도 같은 고통도.

느끼는 정도, 느낌의 종류도 다르고 그 이후의 반응도 다르다. 일반적인 느낌을 표준화시켜 프로그래밍했을 뿐이지 개별성, 다양성은 프로그래밍하는 순간 없어진다.

그러면 무작위적으로 프로그래밍한다면?

인간의 유전자가 확률의 법칙으로 결합되어 탄생하듯 무작위적인 조합을 만들어낸다면?

만약 로봇이 인간과 같은 신경, 피부 조직을 가지도록 프로그래밍을 했다면?

일부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복사했다고 할 거 같지만 마지막 과제가 남는다.

죽음과 가족.

로봇이 가족을 통해 탄생할 수 있을까?

애초부터 온라인 카지노 게임성, 경제성을 따져가며 만드는 도구인데 가능할까?

불로장생, 완벽한 개체를 버리고 로봇은 죽음과 가족을 선택할까?

죽음과 가족이란 개념을 역시나 프로그램으로 넣어줄 수 있겠지만 그것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만을 배운 것일 뿐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아니다. 정말로 느낄 수 없으니까.



우리는 본질보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쉽게 혹한다.

나는 대통령의 소박한 식성과 정처적 소통이라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보다 소박한 플레이팅과 흔한 맛이라는 눈 앞에 펼쳐진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실망했다.

모든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그대로 따라한, 심지어 더 훌륭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수행해 내는 짝퉁가방의 실용성과 가격대비 효율성을 눈에 보이지도 않고 아무런 이득도 가져다주지 않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로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아니 꼴랑 하게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 위대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가졌다 치자.

로봇족들이 그래서 뭐?라고 한다면?

본질만 앞세워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나 몰라라 한다면?

조선시대 후기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갖췄지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다하지 못하는 양반들의 최후는 계급의 몰락이었다.



더 싸고 빠른 인공지능을 위해 미친 듯이 열광하는 시기에 인간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아이들은 인공지능 시대에 영어는 배워서 뭐 하고 수학은 배워서 뭐 하고 책은 읽어서 뭐 하냐고 묻는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지키기 위한 온라인 카지노 게임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인간보다 더 위대한 기계가 있는데 인간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묻는다면?

인간 자체가, 존재자체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기 때문이 아닐까?

모두가 인정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인간을 세우는 교육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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