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마라토너.
몇 번의 고배를 마시고 브런치 작가가 카지노 게임다. 막상 글을 쓰려니 왜인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특별한 글을 써야 할 것 같았다. 편하게 이런저런 잡동사니 글이나 써오던 내가 브런치 북을 발행하려니 어렵게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부담 없이 써보자. 어깨에 힘 빼고 어쩌면 가볍게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보자.
“어쩌다 마라토너"는 운동에 그다지 재능이 없는 40대 러너의 시시한 이야기이다. 달리기 훈련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배울 것이 전혀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의 절반은 운동과 담쌓고 지내오던 사람도 인생 후반전에서 우연히 시작한 달리기로 풀코스를 4번이나 완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성장 이야기이다.
어쩌다 마라토너가 된 것은 40세의 나이이다. “불혹"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지나온 나의 인생 모든 것에 의문이 생기고 흔들린다고 생각되었던 때이다.
바로 중년으로 접어드는 그 순간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느 단편 소설*에서 인생을 수영 경기로 비유하였다. 그 소설 속 주인공은 자신의 인생을 70세 까지라고 생각하고 그 이후의 삶은 그냥 덤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그리고 35세가 되던 생일날, 수영 경기로 치면 벽을 차고 도는 "반환 점”을 돌았구나, 후반전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20대에 그 소설을 읽었는데, 인생을 전반기와 후 반기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어쩐 지 그 책을 읽은 이후로 나도 인생에서의 반환점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내가 35세가 되었을 때는 내가 생의 반환점을 돌았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가짐이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당시의 나는 일에서도 사회적으로도 진행 중이었고 나 자신도 성장곡선에 있었던 것 같다. 반환점을 돌면 성장 곡선에서 하강 곡선으로 진입해야만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내 인생은 80까지 일 지도 모를 일이잖아? 라는 생각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40세라는 나이의 무게는 그리 가볍지 않았다.
그 무게의 시작은 아버지의 췌장암 진단이었다. 아버지는 그 해 겨울, 76년의 삶을 마무리하고 돌아가셨다. 약 일 년의 시간 동안 췌장암 투병을 하시는 아버지와 함께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 등을 위해 병원을 오갔다. 내가 졸업하고 수련까지 했던 병원이었다. 같은 장소였지만 의사라는 높은 곳에서 내려와 환자 보호자라는 낮은 곳에서 겪는 병원은 너무나도 불친절했다.
사실 불친절한 것은 병원이 아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현대 의학이 환자를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그저 하나의 질병으로 취급한다는 그 익숙하면서도 낯선 불친절함. 익숙하다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었기 때문이고 낯설다는 것은 드디어 내가 그것을 당하는 환자 입장이 카지노 게임기 때문이다. 그 괴리감에서 오는 불편함이 병원의 불친절함으로 투사카지노 게임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의사가 된 철부지 막내딸인 나를 유난히도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하셨는데, 나는 막상 말기 암 환자의 보호자가 되자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결국 아버지는 자신의 삶이 곧 끝난다는 것을 끝끝내 깨닫지 못하고 의식을 잃으셨다. 그렇게 어이없게 아버지를 떠나보내고서야 후회했다. 하루라도 더 곁에 붙들어두려는 헛된 희망 속에서 발버둥 칠 것이 아니고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면하게 해드렸어야 했다고. 끝을 아는 마지막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지나온 76년 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삶을 스스로 마무리하실 수 있게 도와드렸어야 했다는 것을.
그렇게 아버지를 보내고서야 나는 내 생의 반환점을 돌았다는 것을 확실히 받아들이게 카지노 게임다. 생이 허무하 다고 느끼면서도 나는, 역설적이게도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강렬하게 했다.
"생은반드시 끝이 난다. 그러므로 후반전은 더 잘 살아가고 싶다."
아버지를 보낸 후 나는 후회와 슬픔으로 여전히 무력했고, 내 삶의 후반전이 시작카지노 게임다는 것도 직면하기 두려웠다. 그렇게 전반전이나 후반전이나 큰 차이 없이 지내오던 2022년 6월의 어느 날이었다. 내리쬐는 햇살을 맞으며 걷다 불현듯 뛰어 보았다. 얼마 가지도 못하고 숨이 차고 끈적한 땀이 흘렀다. 그렇게 헉헉대며 달려가던 나에게 불어온 한 줄기 바람.
그 후덥지근한 한 줄기 바람에 카지노 게임 행복하다고 느꼈다. 아무 것도 필요 없었다. 한 줄기 바람이 전부였다. 그것은 그냥 작은 행복이 아니었다. 가슴을 가득 채우는 행복한 충만감이었다.
그것은 참으로 아찔한, 살아있다는 행복이었다.
“아, 이것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카지노 게임 달리기를 시작하였다.
그렇게 나는 어쩌다 마라토너가 되었다.
*무라카미하루키_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 '풀사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