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게임, 완주를 향한 그 순수한 열망
“카지노 게임 풀코스를 달리는 일 따위는 다시는 하지 않겠어!”
35킬로를 넘어서면 이번에야말로 절대 잊어버리지 말자며 저 말을 되뇐다. 골인하면 바로 할 일은 다음 대회 취소이다. 자발작으로 게다가 돈까지 내고서 말 그대로 사서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정말 다시는 하지 않겠다며 다짐을 한다.
그런데 피니시를 통과하고 나서 물집이 생겨 너덜너덜해진 발을 신발에서 끄집어내어 아무 곳에나 털썩 주저앉아 간식으로 받은 빵을 씹다 보면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만족할 만한 결과였든 아니든 상관없다. 기록이 신통치 않으면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기까지 하다. 자, 이쯤 읽고 고개를 끄덕인다면 당신도 이미 주변에서 카지노 게임 중독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을 것이다. “런친자” “런치광이” “도른 자” ”런또라이 “ 등으로 불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로 말하자면, 올봄에 개최될 대구카지노 게임을 목표로 잡고 지난겨울 동안 나름의 훈련을 해왔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어쩌다 마라토너가 된 이후, 봄이나 가을에는 풀코스 대회를 하나 정도는 나가게 되었다. 대회가 다가오면 설레면서도 압박감을 느끼고 다시는 풀은 안 뛰고 싶다고 투덜대면서도 다음 시즌이 다가오면 대회 접수를 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것이다.
첫 카지노 게임이었던 서울 동아 카지노 게임을 나갈 때였다. “왜 카지노 게임인가 “ 라며 스스로 물어보았다.
“그냥 42.195km가 거기 있어서.”
그 산이 거기 있어서 올라갔다던 어느 탐험가를 흉내 낸 말이 아니었다. 대회가 10km 아니면 42.195km뿐이었던 것이다. 시골 사람이 대회라고 서울까지 가는데 10km 뛰자고 나가기는 그렇고 해서 덜컥 풀코스를 접수했었다. 말 그대로 “42.195km가 거기 있어서 “ 달린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풀코스를 해마다 두 번은 뛰어왔으니 그럴듯한 이유도 없고 왜 꼭 풀코스여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어쨌든 완주는 해 온 셈이다. 굳이 42.195를 달리는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렇게 정해져 있어서 달릴 뿐이었다. 그러니 풀코스가 35킬로쯤이라면 적당히 힘들고 끝날텐데 얼마나 좋을까 하며 늘 투덜대었다.
그러나 이번 대구 카지노 게임 때는 달랐다. 카지노 게임이 42.195km인 이유를 찾은 것이다. 카지노 게임은 35킬로미터 이후부터가 진짜였다. 장거리 훈련이 잘 되어 힘들지 않아서가 아니다. 정말 힘들기 때문에 진짜인 것이다. 35킬로 이후를 달려내기 위해 우리는 굳이 42.195km를 달리는 것이 아닐까? 내가 선택한 고통일지라도 막상 그 고통 속에서는 온전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어떤 괴로움인지 이미 다 겪어봐서 아는 스토리인데도 당할 때마다 괴롭다. 그런데 그런 극한의 상황 속에서 만나는 나약한 내 모습이야 말로 진정한 나를 마주치게 되는 것만 같다.
그것을 이겨내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런다고 상을 받는 것도 아니고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을 딱히 받는 것도 아니다 (또 뛰고 왔구나 정도의 반응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엔 해내고 싶은 “순수한 열망” 정도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 대가 없이 그저 해내고 싶은 열망. 아직 그런 열정이 내 마음속에 불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게 좋다. 그 순간만큼은 살아있는 것만 같다. 내가 온전히 나로서 숨 쉬는 것 같다. 누구 엄마, 누구 아내 등 이런 역할이 아닌 그냥 나 자신이다. 유년기 때 놀이터에서 숨바꼭질하고 미끄럼틀 타고 놀 때처럼, 친구들하고 고무줄 놀이할 때 아무 이유 없이 이기고 싶어 열심히 했던 그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그 순수한 열망은 하필 카지노 게임 35킬로 이후에 특히 되살아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지노 게임 대회는 더 이상 달려도 되지 않을 때가 가장 기쁜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이제 그만 달려도 되는 때야말로 너무나도 고대해 온 순간이다. 다른 어떤 것도 필요 없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이제 그만 달려도 된다는 것. 삶에서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고난 따위는 그만 달려도 되기만 한다면 별 문제가 안 될 것만 같다. 전부 다 티끌처럼 작은 일로 느껴진다. 이제 그만 달려도 된다면 말이다.
살다 보니 아무리 애를 써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고 극복하려 해도 극복되지 않는 일들도 있다. 그렇게 실타래처럼 엉킨 것들 속에서 지친 마음이 그저 단순하게 반복되는 달리기 몸짓 속에서 묘하게 위로를 받는다. 사실 해결은 아니다. 삶이 끝날 때까지 해결될 수 없는 근원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끝끝내 풀코스를 완주해 낸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그렇다.
그리고 여러 번의 카지노 게임을 통해 알게 된 또 하나는 멈추지만 않는다면 반드시 끝이 난다는 것이다. 어떤 페이스든 상관없다. 그 단순한 진실을 카지노 게임을 여러 번 해내고서야 알게 되다니 아둔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해도 할 수 없다. 카지노 게임 이후 나는 멈추지 않고 느려도 끝을 향해 나아가는 법을 배웠다.
마지막으로 풀코스를 뛰는 동안에 만큼은 나는 멋진 사람이 된다. 나는 늘씬하고 다리가 긴 20대의 젊은 대학생이 된다. 포니 테일을 하고 다리를 엉덩이까지 차올리는 멋진 롤링 자세로 뛰는 중이다. 나이키 광고에나 나올 법한 모델이 바로 내가 된다. 물론 막상 지인이 찍어준 사진을 보면 현실은 종종걸음으로 뒤뚱뒤뚱 뛰고 있는 중년의 여성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자아도취에 빠져 가장 멋진 내가 된다.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기어이 뛰어내는 내가, 너무 힘들어 멈추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완주한 나는, 너무나 멋진 사람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곧 깨어날 착각이라 하더라도 그 순간의 짜릿한 기분은 정말 행복하다.
“내가 제일 잘 나가!”
하늘을 바라보다 추운 겨울을 나려 남쪽 나라로 떠나는 철새 무리를 본 적이 있다. 이정표 하나 없는 드넓은 창공을 쉬지 않는 날갯짓을 하며 부지런히 날아가는 철새. 그 수천만번의 날갯짓에는 어떠한 이유도 없다. 그저 가야 할 곳에 가야 한다는 순수한 열정. 오직 그것뿐이다.
나의 달리기도 어떠한 이유도 없다. 도달하고픈 목표도 없다. 오로지 해내야 한다는 순수한 열망. 그걸 생각했을 때 타오르는 열정. 그것만이 전부다. 내 안에 아직 그런 열정이 있다는 것, 그것이면 된다.
자, 다시 대구 카지노 게임으로 돌아가자. 차가운 맞바람을 맞으며 39킬로 정도를 달려왔다. 저 멀리 대구 스타디움이 보이기 시작하면 시그니처로 악명높은 언덕이 시작된다. 3킬로미터만 더 가면 된다. 평소엔 쉽게 생각하는 짧은 거리인데도 영원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게다가 무지막지한 언덕은 아무리 올라도 끝이 없는 것만 같다.
“아, 진짜 올해 마지막 카지노 게임이야! 도착만 하면 당분간은 달리지 않아도 돼!”
도착 후 풀 밭에 퍼져 앉아 마른 빵을 씹으며 ‘다음번엔 더 잘 달릴 수 있겠는데?’ 라며 다음 대회를 생각하는 나는야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달리기가 미치도록 좋은, 그렇다. 나는 마라토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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