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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나 Apr 20. 2025

회복은 완치가 카지노 게임 이해의 다른 말

병이 아닌 삶을 이야기하는 치료


치료는 삶이 내게 건넨 가장옹골찬수업이었다


내 마음은 대나무 껍질처럼 얇고 거칠었다. 바람에 휘청일 만큼 연약했다.


그때 나는 빨리 낫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아픈 몸과 마음을 견디며 버텨낸 시간이 쌓일수록 문득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고통을 감내하는 일은 어려웠지만그 시간을 통해 나는 잊고있던 나를 만나게 됐다.

치료는 병을 고치는 데만 머물지 않기를.

이왕이면 그 과정을 통해 더 배우고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이

나를 성장시키는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


몸은 아픈데

나는 머릿속에서 긍정의 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때때로 압박이 되었다.

'좋아져야만 한다'는 강박

그리고 '좋아지겠다'는 말 뒤에 숨은

절박함두려움


나는 그 안에서도 길을 찾으려 한다.

좋아지는 것만이 목적이 카지노 게임

아파도 살아가는 나를 인정하는 것.

그것도 카지노 게임이라는 걸지금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정신질환이 치료하기 어려운 이유는 신체 질환과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율신경실조증'을 겪으며 이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조금 흔들린다고 어떤 날은 많이 무너졌다고 해서
"나는 정신병이야!"라고 너무 쉽게 낙인찍을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하다 보면 우리 안에 있는 ‘인간다움’조차 병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음주 측정기처럼 마음 상태를 보여주는 기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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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의 진료방 책상에는 수많은 책들이 쌓여 있다.

그 모습만 봐도 느껴진다.

이분은 환자들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효과가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직접 찾아보신 수많은 서적과 논문, 그 결과가 치열한 노력의 산물임을 느낄 수 다.


또한 무조건적인 지시가 아닌,

"나 역시 때때로 그렇다"는 담담한 말씀과 함께

몸소 보여주신태도는 진심 어린 공감과 신뢰를 .



사실, 환자에게 무관심한 의료진이 적지 않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의료진만의 문제라고 단정할 수없지만원장님의 진심은또렷하게 다가온다.

그 마음이 자랑스럽고, 또 감사하다.


이건 단지 병을 고치는 일이 카지노 게임

몸에 대해 생각하고

공부해 나가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컨디션이 괜찮은 날엔 좀 엉뚱하게도

가끔은 설레기도 했다.

나를 알아가는 이 시간이.


/@mirinakim/55


지난번 올렸던 4화 참고 부탁드립니다.




병과 싸우는 것이 카지노 게임 병을 사이에 두고 의사와 환자가 나란히 앉아 토론한다.


여긴왜 아플까요?”

“지금 감정은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죠?”


나도 묻고, 듣고, 치료가 끝나면 얼른 폰에, 혹은 집에 돌아와 그날의 말씀을 노트에 적는다.


그렇게 나는 배워간다.

치료도 받고, 공부도 하고일석이조다.


요즘 나는 부쩍 ‘행보칸 환자’라는 자격을 지닌 사람이라는 걸 자주 느낀다.

내가 완벽해졌거나 고통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누군가가 진심으로 나를 궁금해하고 이해하려 하며 내 고통을 함께 짊어져보려는 마음으로곁에 있다는 것.

사실만으로도다시 살아갈 수 있다.



삶의 모든 불행과 행복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온다.


언제나 계산된 방향이 아니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틈에서 흔들고, 또다시 일으킨다.

생각지도 못한 무력감이 불쑥 찾아오고
그 무력함에 마음을 멈춰야 할 때가 온다.

애써 찾으려 할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아주 작고 잔잔한 일상 안으로 얼굴을 빼꼼 내민다.

그래서 삶은
기대보다 여백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채우려 하기보다 비워두는 용기가 필요하다.



통증이 사라지는 것보다 나를 카지노 게임하는 일


나를 바라보는 여러 자아들이 함께하고 있다.

통증이 찾아오고, 감정이 출렁일 때마다 예전처럼 무작정 흔들리지는 않지만 겁이 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예전에는 아프고 힘들기만 했던 시간들이 통증조차 내 편이 되어주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조급해하지 않고 조금은 흘려보내면서.


그렇게 나는 오늘도 다시 한번 되뇐다.


조금씩 흔들려도 괜찮다고.

나는 계속 나아가고 있다고.

완벽한 카지노 게임만을 바라지 않겠다고.


흔들리면서도 때론 포기하고 싶을 때도 나를 놓지 않는 삶은모순처럼 느껴졌지만 그 자체가 카지노 게임이라는 걸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



세상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신비롭고 품격 있는 인간’이라는 표식을 달고 살아가는 것처럼스스로를 규정한다.


남들과 다르다는 우월감일 수도 있고 다가오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일 수도 있다.


이따금씩 이글거리는 마음은 치열한데 겉으로는 고요한 품격을 가장한 채 버티고 있는 중이다.




통증은 내 안에 있는 약함을 드러낸다.


숨기려 해도, 버텨보려 해도 어김없이 찾아와 나를 멈추게 한다.

그 멈춤 덕분에 나는 나를 다시 들여다본다.

통증이 있다는 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이고 약하다는 건 때로 가장 단단한 힘이 될 수 있다.


'약한 것을 단점이라 여기지 않는다.'

약함이 나를 살게 했다.

무너질 줄 아는 내가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도 있다.



원장님께서 치료를 일주일 쉬고 오라 하셨을 그 시기,또다시 힘이 빠지는 무기력에 눌려 동네 정신과를 다녀왔다.


그렇게 여차저차, 3주가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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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12월 9일, 인스타에장황하게 썼다.


통증에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는 큰일이라도 한 듯 내심뿌듯했다.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이유로 혼자만의 싸움 같지 않아졌다.

마음에 무게중심이 생긴 듯했다.


100% 진심이었냐고 묻는다면...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이렇게까지 진지했던 건 카지노 게임고 당시에는

그냥 ‘한번 이렇게 해보자’는 마음이 컸다.




조금은 양심에 찔렸다.

진심이라기보단 진심인 척해보려 했던 그 마음이 어딘가 찡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론그런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어떤 마음으로 시작했든,나는 기어이 고통의 시간을 기록했고,그 감정을 말로 꺼내기 시작했으며, 그것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까지 했으니까.

그것은내가 나를 도우려 애쓰고 있다는 작은 증거였다.



원장님께서정신과에 잘 다녀왔냐며 무슨 약을 처방받았냐고 물으셨다.

이러이러했다고 말씀드리니어디 병원이냐고,서울이냐고 물으셨다.


"그 정신과 원장님너무좋으신 분 같아서기분이 다 좋네요.

그거 다 ***님 복이에요."


환자에 대한 신뢰의 표출이 카지노 게임진심으로 기뻐하셨다.

좋은 의사가 또 다른 좋은 의사를 칭찬하시니,
이렇게 좋은 의사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는 감사함이 다시 한번 차올랐다.


나를 잘 봐주시는 의사가 두 분이나 있으니 이보다 든든한 건 없었다.

꼭 이겨낼 수 있겠다는 용기가 더욱 피어올랐다.



치료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
안도하듯 흐뭇하게 웃으시던 원장님의 눈가가
어쩐지 촉촉해 보여 나는 그 눈을 피하고 말았다.
그 장면이 스치듯 다시 지나갔다.


나는 마음의 짐을 덜어드린 것 같아 기뻤는데
그 기쁨 뒤에 뭉클함이 따라왔다.
무언가 다 닿지 못한 마음이 말 없는 눈빛으로 오고 간 것 같았다.


말보다 진한 위로.

아마도 그날, 말없이 의사, 환자 서로의 마음을 조금은 알았던 것 같다.
그날, 나는 치료가 병을 고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흔들릴 때마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잊지 못할 장면이었다.





통증을 관리하며 나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학회에서의 시간은 내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뜻깊고 귀했다.

쏟아지는 지식을 받아 안으며 왠지 이제 뭐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레벨 업의 끝판왕’에 도달한 듯했다.


경험했다는 것만으로도 퀘스트 하나를 완료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유감스럽게도, 수십 개의 고통이 무겁게 덮쳐왔다.

하나의 고통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고통이 겹쳐 찾아왔다.
몸뿐 카지노 게임 마음에도 병이 번져가던 시기.
병상첨병이라 부를 만큼, 겹겹이 아팠다.
말 그대로 병 위에 병이 덧붙는 나날이었다.


우리 삶이 언제는 내 맘대로 된 적이 얼마나 있었나.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데
삶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그렇게 속상해할 일도 아니었다.


그땐 몰랐다.
흥하면 쇠하기도 하고
무너지면 다시 일어서기도 한다는 걸.


반대되는 것들이 함께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면
삶은 조금 더 가벼워진다는 걸.

당장 나의 일이 카지노 게임서 비겁하게 외면했는지도...



치유는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서로 다른 시간에 도달한 나와 몸의 간극을 이해하는 일이었다.


그 간극을 통해 배웠다.

감정과 통증이 나를 어떻게 이끌어가는지를.



정상에 올랐을 때 느끼는 희열은 직접 올라가 본 사람만이 안다.

그 찰나의 기쁨을 위해 사람들은 끝없는 오르막을 선택한다.


내가 생각하는 치료 과정은 등산과 같다.

치료도, 어떤 배움도 그렇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 돌부리에 차여 넘어지는 고통...

숨이 턱까지 차는 지점들이 수도 없이 찾아온다.

무릎을 꿇고 싶고, 내려갈까 싶은 유혹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고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면 어느 순간 시야가 탁 트이고내가 지나온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제야 알게 된다.


치료는 병이 아니라 나 자신을 다시 이해하는 일이었다.




카지노 게임은 '원함'이 아니라 '이해'의 다른 말이다.
좋아져야만 한다는 강박 뒤에는
불안을 밀어내려는 절박한 저항이 있었다.


좋아지는 건 어쩌면 내가 나를 카지노 게임해 가는 험한 여행일지도 모른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지금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먼저였다.

‘좋아지고 싶다’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진짜 카지노 게임 그 마음조차 들여다보면서
왜 아팠는지, 왜 힘들었는지, 왜 그렇게 애썼는지를 카지노 게임하며 시작되니까.

원하면 쫓게 되고 이해하면 내 품에 안게 된다.
원한다는 건 바깥을 향한 눈이고
이해는 나를 향한 눈이다.

몸은 여전히 아픈데,
머릿속에서 긍정의 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그것은 나를 지키기 위한 애쓴 마음이었다.

아파도 괜찮다고, 내가 나를 카지노 게임하고 있다고,
그렇게 카지노 게임하고 있다고,그 시절 나에게 속삭여주고 싶다.

지금 고통의 숲을 걷고 있는 그대들에게도.


언젠가 내 마음과 몸이 같은 계절에 머무르게 된다면 그때는 애써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겠지.

나는 오늘도 내 안의 계절을 지나며 카지노 게임이라는 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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