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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전기지민 Feb 03. 2025

시어머니에게 배운 일주일

시어머니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일주일이 아니라 8일을 시댁에 있었다. 그 이유는 나는 지방에 살고 있고 내가 정기적으로 내원하는 병원은 서울에 있는데 시댁이 병원 부근에 있기 때문이다. 남편과 같이 병원에 내원하고 나서 차로 당일에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기 힘들어서 이틀간 나 혼자 시댁에 머물렀다. 남편은 출근하러 내려갔고 이틀 뒤에 다시 올라왔다. 3~4일만 지내려 했는데 설이 겹치면서 8일이나 시댁에 있게 되었다. 낮에는 친구를 만나거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저녁은 시부모님과 식사를 하고 시간을 보냈다. 아들도 없이 며느리와 함께 하는 일주일이 그들에게는 어땠을까. 일단 나는 배운 게 많은 시간이었다. 그들의 삶이 내게 많은 걸 보여주었다.

(시어머님과 시아버님은 시엄마와 시아빠로 부른다.)


두 분의 하루는 대략 이러무료 카지노 게임.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근처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하신다. 그리고 간단한 아침을 먹으며 두 분이서 담소를 나누신다. 함께 사신지 35년이 넘었는데도 매일 아침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나 보다. 아침 7시에 두 분의 이야기 소리에 잠이 깨곤 무료 카지노 게임. 이전에는 장사나 식당 일을 하셨는데 지금은 두 분 다 요양보호사로 일하신다. 아버님이 7시 40분에 출근을 하시면 어머니는 설거지 및 정리를 하시고 바로 출근을 하신다. 내가 8시쯤 일어나면 어머님은 출근하려다 말고 내게 인사를 하신다.


"민아. 일어났어? 엄마가 너 깰까 봐 설거지 안 했는데 지금 하고 나가야겠다. 고구마 에어 프라이어에 돌려놨으니까 이따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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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은 본인을 엄마라고 부르신다. 나도 그녀를 엄마라고 부른다. 시엄마는 내가 깰까 봐 설거지도 못하고 아버님과의 대화도 조용하게 하신다. 현관문을 닫을 때도 집에 신생아가 있는 것처럼 조심히 닫으신다. 나는 세안을 하고 어머님이 집에 두신 과일이나 고구마를 먹고 아침을 시작무료 카지노 게임. 나는 아침에 밥을 차려 먹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엄마는 매번 밥 먹을 거냐고 물어보신다. 내가 먹는 식단은 밥으로 치지 않으신다. 시엄마가 일하는 곳은 집과 멀지 않아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신다. 그녀는 올해 58세이지만 자전거도 타고 무거운 것도 잘 들고 음식도 잘 만들고 누구보다 건강하다. 나는 그런 그녀가 대단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시엄마는 말이 많고 사람을 좋아하고 정이 많다. 누구에게든지 친절하려 하고 신앙심이 깊다. 어딜 가든 무얼 하든 감사하다는 말을 항상 한다.

내가 친구를 만나고 지하철을 타고 귀가한 날이었다. 임산부인 나는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도 받기 어렵고 계단이 너무 힘겨워 집에 오자마자 쓰러졌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시아빠는 밥을 먹으라고 재촉무료 카지노 게임. 시엄마는 좀 쉬게 놔두라며 시아버님을 말렸다. 시엄마는 항상 그랬다. 걱정이 되지만 묻지 않았고 내가 스스로 선택하게 두는 편이었다. 밥을 먹으라고 재촉하지도, 어딜 다녀왔냐고 묻지도 않았다. 집에 귀가하면 밝은 얼굴로 내게 인사무료 카지노 게임.

"다녀왔어? 어디 갔는지 왜 전화 안 해줬어. 말 안 해도 돼. 민이만 행복하면 돼. 얼른 들어가."


내게 질문을 하고도 답을 듣지는 않았다. 말 한마디를 하면서도 내가 곤란할까 봐, 피곤해할까 봐 배려무료 카지노 게임. 나는 시엄마의 행동과 말에서 배려와 사랑을 느꼈다. 매번.

'나도 저렇게 해야지. 궁금해도 조금 참고 상대가 먼저 말해줄 때까지 기다려야지.'

그녀는 내가 저녁을 뭘 먹고 어딜 다녀왔는지 궁금해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궁금증을 알지만 그저 웃어 보였다. 그녀는 내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말을 길게 붙이지도 않았다. 내게 거실로 나와서 같이 티비를 보자고도 하지 않았다. 방 안에서 뭘 하는지 궁금했겠지만 방문을 열지도 않고 밖에서 할 말을 무료 카지노 게임. 나는 그런 그녀의 조심성에 미안하고 고마웠다. 내가 고마움을 표현하려 해도 그녀는 웃으며 넘어갔다. 그녀에게 배려와 희생은 당신에게 기본적인 일이었다.


나는 매우 예민한 상태였다. 집이 아닌 곳에서는 잘 자지도 못했고 작은 소음에도 깼고 소음이 없어도 새벽에도 여러 번 깼다. 엄마가 해놓은 반찬은 잘 먹지도 않았고 챙겨 온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영어공부를 무료 카지노 게임. 시동생까지 세 명이 사는 시댁에서 아무도 거슬려하지 않았지만 나만 예민무료 카지노 게임. 문 닫는 소리, 이야기 소리, 티비 소리, 핸드폰 알람 소리, 너무 밝은 빛에 반응무료 카지노 게임. 그런 나를 배려하기 위해 가족들은 소리를 죽이고 생활무료 카지노 게임. 내가 말하는 건 모두 맞춰주려고 노력무료 카지노 게임. 나는 그들이 나를 위해 조심하는 것을 알고도 미안함을 숨겼다. 내가 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객식구가 갑자기 들어와서 집안을 들쑤셔 놓은 것이다. 그들은 내게 서운한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해줬다.


명절 당일이었다. 아침에 가정예배를 드리고 서로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씩 무료 카지노 게임. 나는 이번 기회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제가 잘 자지도 못하고 소리에도 예민한데 가족들이 배려해 줘서 지난 며칠간 참 고마웠어요. 저도 받은 만큼 배려하며 살게요."

말이 잘 나오지도 않았다. 눈물이 났다. 어떤 말을 해야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지 어떤 방법도 이 세상엔 없는 것 같았다. 가끔은 마음이 너무 크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어떤 단어도 부족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눈물은 모든 말하지 못한 문장을 대신해 흘러내린다. 시댁 식구에게 마음을 열기까지 5년이 걸렸다. 매번 부담되고 불편했던 이곳이 이제는 내 친정처럼 가깝고 친근무료 카지노 게임. 이렇게 좋은 집안에 시집을 와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무료 카지노 게임.


시부모님은 명절 당일이면 산소에 가고 싶어 무료 카지노 게임. 차도 많이 막히고 사람도 많겠지만 당일에 가야 마음이 편하다고 무료 카지노 게임. 시어머님은 십여 년 전에 처음 산소에 시할머니를 모셔 두러 왔던 그 기억을 잊지 못해서 지금도 오신다고 무료 카지노 게임. 그날은 벚꽃이 흩날리던 날이었다고 한다. 구불구불한 길을 차로 오르며 분홍분홍한 꽃잎이 날리는 것을 보며 처음 산소에 오셨다고 무료 카지노 게임. 지금도 그 기분을 잊을 수 없어 올 때마다 그 향수를 느낀다고 무료 카지노 게임. 나는 차 안에서 밖을 보며 처음 이곳에 오셨을, 지금보다는 주름이 없고 젊었을 시엄마를 생각무료 카지노 게임. 그때의 시엄마는 꿈이 가득하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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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엄마의 인생은 녹록지 않았다. 그녀는 충청남도 홍성에서 2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시할머니는 사랑을 줄 줄 몰랐고 시엄마에게도 너그럽지 않았다. 그래도 시엄마는 밝고 아름다운 청년으로 자랐다. 스무 살이 되어 서울로 상경해 일을 했다. 그녀가 스무세 살이 되던 해에 하숙집 주인은 자기 아들과 결혼하라고 부추겼다. 시엄마는 그때 처음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해 그 집에 살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첫 아이(시언니)를 가지게 되고 3년 후 둘째 아이(지금의 내 남편)를 가지게 된다. 어느 날 친절하던 시할머니는 시엄마에게 차가워졌다. 어쩔 수 없이 시부모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단칸방으로 이사를 해 조그만 가게를 시작했다. 이름은 동부슈퍼였다. 원래 있던 슈퍼를 그대로 인수해 이름도 바꾸지 않고 10년을 장사했다. 그들은 여행 한번 가지 못하고 매일 문을 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셋째(여자 시동생)가 생겼다. 시엄마는 장남에게 임테기를 사 오라고 시켰다. 두 줄을 확인하던 날, 시아빠는 본인은 실수한 적이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했다. (그리고 시아빠는 정관수술을 하게 된다.) 시부모님은 더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그들은 비행기 한번 타보지 못한 채 35년을 살았다. 그 사이 첫째와 둘째는 결혼을 했고 셋째는 대학에 입학해 공부를 했다. 시엄마는 그 세월 간 못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했다. 셋을 낳으면서 한 번도 산후조리원에 가신 적 없으셨고 무통 주사를 맞지도 않으셨다. 그녀의 몸은 부서져라 고생을 했지만 자식들에게 어떤 부채감도 주지 않았다. 지금은 아니지만 젊은 시절 시아빠는 혈기 왕성했고 아이 둘을 때리기도 했고 도박을 하기도 했다. 시엄마는 그때의 아빠의 실수를 한 번도 나무라지 않았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다 지난 일이니 괜찮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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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모님을 모시고 저수지 근처의 한 카페에 갔다. 나는 시엄마가 밝고 긍정적인 마인드와 건강한 인간관계에 대해서 본받고 싶다고 말무료 카지노 게임. 엄마는 이렇게 말무료 카지노 게임.

"사람은 49대 51로 생각해야 해. 만약 단점이 49%고 장점이 51%이라면 딱 그 2% 때문에라도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거야. 그 2가 있어서 그 사람을 내 삶에 두는 거야. 단점이 너무 큰 게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내치지 않고 좋은 관계를 맺고 사는 게 엄마 마인드야."

엄마는 이래라저래라 가르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은 그렇게 산다고만 말할 뿐이었다. 평소 그녀는 손해를 본 적이 많지만 사람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았다. 누가 빼앗더라도 그냥 내어주는 사람이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다. 인생에서 스치듯 만난 인연이라도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냥 스치는 사람이었다고 해도 함부로 대하지 않고 큰 인연을 대하듯 조심했다. 나는 그녀의 삶의 태도가 미련하고도 아름다웠다. 그녀는 늘 누구든 상처를 주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자신이 조금 힘들고 아프더라도 누구의 마음에도 상처를 내지 않으려 했다. 나는 그렇구나, 하며 끄덕였다. 그저 계속 끄덕였다. 그녀의 인생이 이해되지 않고 해석되지 않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녀가 하는 모든 일에 마땅한 이유가 있다고. 나는 그녀를 가만히 보다가 저수지로 시선을 옮겼다. 수심이 얼마나 깊은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나는 헤아릴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그 나이가 되어도 그 깊이는 절대 알 수 없으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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