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원의 가치
“어떤 돈의 일부를 떼어 일정 기간 동안 모아 묵혀 둔 것으로, 더 나은 투자나 구매를 위해 밑천이 되는 돈”
'카지노 게임'의 사전적 의미다.
“카지노 게임을 어떻게 모아야 할까요?”
투자를 처음 시작하는 사회 초년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다.
부자가 되는 과정에서 '카지노 게임'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
22세의 청년이 또래보다 일찍 취업해서 한 달에 백만 원을 모은다고 치자. 또래에 비해 큰 저축 규모다.
원금 기준으로 1년이면 1,200만 원이고 10년이면 1억 2천만 원을 모을 수 있다. 물론 소득이 늘어나며 저축액도 늘 수 있지만, 자동차를 사거나 주거 비용도 증가할 수 있다. 이를 감안한 10년 동안의 평균 저축액이라고 생각하자.
2025년 1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약 10억 원이다. 전국 평균 또한 5억 원이 넘는다.
10년 동안 안 입고, 안 먹고 겨우 1억 2천만 원을 모았는데 서울은커녕 웬만한 지방 아파트 사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니 애초에 돈을 모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없을까?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는 청년들이 많다. 어차피 저축을 통해 집을 사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지금의 행복을 담보 잡혀 아등바등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단정한다.
주말마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맛집을 찾아다니고, 네일을 하고, 미용실을 들락거린다. 경험을 사는 것이니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기를 위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다며 스몰 럭셔리 쇼핑을 한다. 스몰이 하나둘씩 쌓이다 보니 웬만한 명품 값에 버금간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고 쓴 대가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알아주는 대기업에 다니는 지인이 있다. 연봉이 높다 보니 동료들의 씀씀이가 놀라울 정도라고 한다. 특히 미혼이라면 남 눈치 볼 일이 없으니 지갑을 여는데 거리낌이 없단다.
동료들끼리 한 사람당 10만 원이 넘는 '오마카세'를 즐기고, 소주보다는 값비싼 와인이나 양주를 선호한단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 번 그 맛을 들이면 쉬이 멈출 수가 없는 법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앞서 언급한 청년은 10년이 지나 32살이 되었다. 청년은 알뜰살뜰 모아서 1.2억 원이라는 종잣돈을 마련했다.
사실 1억 2천만 원이 '있는 청년'이나 '없는 청년'이나 당장 집을 살 수 없는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청년이 우연히 한 모임에서 만났다고 치자. 독서 모임일 수도 있고, 친목 모임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소개팅 자리일 수도 있다.
돈을 모으지 못한 청년은 같은 나이에 1억 2천만 원을 모은 상대를 보며 무슨 생각이 들까? 또한 부모 도움 없이 목돈을 모은 청년은 돈 한 푼 없는 상대 청년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우연히 만난 두 청년은 서로를 보며 다른 감정이 솟구쳐 올라옴을 느낀다. 분명 찰나였지만 순간적으로 파고든 뭔가가 있었다. 한 명은 설명할 수 없는 우월감을 느꼈을 테고, 또 한 명은 알 수 없는 굴욕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헤어지고 나면 다시 만날 일 없는 두 청년은 사실 그날 엄청난 경험을 한 것이다.
목돈을 모은 청년은 지금껏 잘 살아왔다는 위안을 얻은 순간이고, 돈을 모으지 못한 청년은 인생이 실패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온 순간이다. 돈을쓰는 순간은 분명 행복했는데 그 기억은 희미해진 지 오래다. 마음이 맞던 친구들은 어느새 연락이 뜸해졌고 '통장'은 '텅장'이 되어 잔고가 없다.
돈을 모으지 않은 청년은 이후로도 저축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뼈를 깎는 고통으로 자신의 생각을 바꿔 먹을 수도 있지만 극히 드물다. 청년은 같은 나이에 1억 2천만 원을 저축한 독한 사람을 보고야 말았다.
한 달에 백만 원은 작아 보였는데 1억 원이 넘는 돈은 커 보인다. 지금 시작한다 해도 10년을 모아야 그 돈인데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스스로가 한심할 뿐이다. 개뿔 독서모임은 괜히 나가서 마음의 상처만 입었다.
1억 2천만 원이 작다고 생각했는데, 어마어마하게 큰돈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명품 가방과 비싼 옷을 입은 상대를 보고 처음엔 위압감이 들었다. 부자인 줄 알았는데 지금껏 모은 돈이 한 푼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위압감은 금세 우월감으로 바뀐다.
꼴랑 이 돈으로 정말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잘하면 될 것도 같은 자신감이 몰려온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치부해도 좋다. 이미 벌써 부자가 된 것만 같다.
결코 카지노 게임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카지노 게임은 자신감이고 자부심이다. 30대가 되어 무언가를 시작해 보고 싶을 때 가장 든든한 나의 친구이자 빽이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한 청년은 가진 돈을 불리려는 생각에 집중할 것이고, 다른 한 청년은 인생에서 돈이 전부가 아니라며 ‘부’를 터부시 하고 살아갈 것이다.
한 청년은 부자가 될 것 같다는 희망을 얻고 살아가며, 또 다른 청년은 결국 부동산이나 주식은 폭락하여 휴지 조각이 될 미래를 그리며 살아갈 것이다.
종잣돈은 그 크기와 상관없이 사람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카지노 게임 숨겨진 무서운 비밀이다.
카지노 게임은 투자의 밑천이 되는 돈이기도 하지만 부자들의 생각으로 가는 밑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