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발라드의 시작, 무료 카지노 게임(2)
1986년 11월, 우여곡절 끝에 ‘김현식과 봄 여름 가을 겨울’에서 나온 무료 카지노 게임는 1987년 8월, 자신이 전 곡을 작사, 작곡, 편곡한 솔로 앨범을 세상에 내놓는다. 이 앨범이 바로 유재하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앨범인 <사랑하기 때문에. 이 한 장의 음반이 얼마나 영향력이 크고 위대했는지는 다시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수많은 후배 뮤지션들이 그의 곡들을 앞 다투어 리메이크했으며 가장 좋아하는 혹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음반으로 꼽고 있다. 김동률은 유재하의 죽음으로 한국의 발라드는 100년 이상 퇴보되었다고 말했으며 정재형은 유재하의 후배가 되고 싶어 한양대 작곡과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신승훈은 유재하를 추모하기 위해 일부러 그의 기일인 11월 1일을 자신의 데뷔일로 잡을 정도였다.
그동안 한국 대중 음악계에 작사, 작곡을 하며 직접 노래를 부르는 싱어 송 라이터는 많이 있었지만 유재하처럼 앨범에 수록된 전곡을 작사, 작곡했을 뿐 아니라 악기 구성과 편곡, 코드 진행, 거기에 노래와 앨범의 콘셉트까지 모두 혼자서 해낸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그는 클래식 작곡 전공자답게 그 어렵다는 관현악 오케스트레이션까지 했고 피아노, 키보드, 기타 등을 스스로 연주했다. 이렇게 혼자서 만들다시피 한 음반의 퀄리티가 매우 높았다는 점, 그리고 대중적으로도 인정을 받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점까지 생각한다면 유재하라는 뮤지션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의 앨범이 나온 1987년, 그의 나이는 불과 25세였다.
오케스트라 반주는 무료 카지노 게임가 대학 후배들에게 직접 부탁했다고 하는데 반주를 하기 위해 녹음실에 온 후배들은 처음에 대중음악 반주인 줄 모르고 왔다가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는 매우 당황했다고 한다. 지난 편에 언급한 대로 당시에는 클래식 음대생들이 대중음악과 연결이 되면 바로 퇴학을 당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료 카지노 게임와 한양대 작곡과 동기이자 1982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잃어버린 우산’으로 동상을 수상한 가수 우순실은 대학가요제에 출전했다는 이유로 제적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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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카지노 게임는 불안해하는 후배들을 잘 다독이면서 앨범 녹음을 무사히 마쳤다. 당시 대중음악에선 거의 들을 수 없었던 클래식 악기의 우아한 선율이 무료 카지노 게임가 만든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 위에 흐르면서 그의 앨범은 시대를 초월한 세련되고 감동적인 음악으로 탄생했다. 클래식으로 훈련되고 팝으로 단련된 그의 독창성과 위대함은 대중음악뿐 아니라 대중음악을 금기시하던 클래식 음악계가 대중음악을 바라보는 시선까지도 바꾸어 놓았다. 그의 음반이 세상에 나온 이후 클래식을 접목한 대중음악이 우후죽순 등장하기 시작했고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대중음악 제작에 참여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lY18JiWbyo
그의 앨범에는 그가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경음악 ‘Minuet’를 제외한 총 8곡이 수록되어 있다. 앨범이 나오고 2개월이 채 안된 상황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방송이나 공연 등 유재하의 다른 활동 영상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 앨범에 실린 곡들은 유재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단 8곡’이기 때문에 모두 너무나 소중한 노래들이다. A면에는 ‘우리들의 사랑’ ‘그대 내 품에’ ‘텅 빈 오늘 밤’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이 수록되어 있고 B면에는 ‘가리워진 길’ ‘지난날’ ‘우울한 편지’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유재하의 노래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4곡이수록되어 있다. 무료 카지노 게임는 1집 앨범 발표 전 이문세에게 ‘그대 내 품에’와 ‘그대와 영원히’ 두 곡을 만들어 줬는데 그중 ‘그대 내 품에’와 조용필에게주었던 ‘사랑하기 때문에’, 김현식에게 주었던 ‘가리워진 길’ 등 세 곡을 본인 앨범에 다시 실었다. 이문세, 조용필, 김현식 등 당대 최고 가수들이 불렀던 곡을 자기 앨범에 다시 실었지만 유재하의 섬세한 편곡과 슬픈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새로운 감성의 곡으로 재탄생했고 팬들에게는 ‘유재하의 노래’로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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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세곡을 제외하고 새롭게 선보인 5곡도 매우 뛰어난 퀄리티를 보여주고있다.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이나 ‘지난날’에서 보여준 독창적인 코드 전개도 후대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유재하의 8곡의 명곡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우울한 편지’는 클래식 악기로 재즈의 연주 구성을 표현해 낸 시대를 앞서 간 명곡이다. 그의 음색은 전통적인 발라더들의 필수 항목이라고 여겨지는 부드러움이나 맑음과는 거리가 있으며 오히려 날카로움과 탁함에 가깝다. 하지만, 그런 그의 음색이 그의 음악과 어우러지는 순간 사람들은 그 음악과 음악이 가지고 있는 감성에 훅 빨려 들어간다. 그의 목소리에는 그런 슬픔의 힘이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h_45wR4hks
한국 대중음악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첫 앨범을 발표한 지 2개월이 막 지난 1987년 10월 31일. 무료 카지노 게임는 웬일인지 잘 가지 않던 동창회를 간다며 집을 나섰다. 다음 날 새벽, 술에 취한 친구가 몰던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친구의 차는 중앙선을 침범했고, 마주 오던 택시와 정면충돌하고 만다. 안타깝게도 그와 친구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음주운전에 대해 관대했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일어난 참사였고 그는 당시 25세, 너무나 꽃다운 나이였다.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에 실린 곡들은 유재하 자신의 자전적인 사랑 이야기였다. 유재하가 곡을 바친 주인공은 바로 해당 앨범의 기악 파트 중 바이올린, 오보에, 플루트를 담당한 여성 연주자. 그녀는 유재하의 초등학교 동창이었는데 초등학교 시절부터 짝사랑했던 그녀를 대학에서 기적처럼 재회했고 그녀를 대학에서 재회한 후 쓴 곡이 ‘사랑하기 때문에’였다. 유재하는 결국 그녀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지만, 비운의 사고를 당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원래 유재하와 그녀는 약혼 후 함께 영국으로 유학을 갈 예정이었는데, 유재하가 충격적인 사고를 당했고 결국 사망 1년 후, 그녀는 결국 홀로 영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 어느 날 템즈 강변에 있는 한 술집에 들어갔을 때, 놀랍게도 '사랑하기 때문에'가 흘러나왔고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이 앨범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냐고 물어보니 술집의 매니저는 어느 한국 유학생이 이 음반을 선물하면서 자주 틀어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했다.
뛰어난 퀄리티의 음악에 비운의 사고와 안타까운 사랑이야기가 더해지면서 유재하의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는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는 25세의 짧은 생애 동안 단 한 장의 앨범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럼에도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가장 위대한 영향을 남긴 인물로 평가받는다. 2018년,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서 이 앨범은 1위로 뽑혔으며, '한국 대중음악 사상 가장 중요한 단일 작품'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세련미를 갖춘 음악에 슬픈 음색, 절제를 아는 세션, 사색적인 노랫말과 분위기 등은 정말 압권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유재하의 음악은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누군가는 유재하를 가리켜 한국 대중음악사상 최초로 한 사람의 가수가 작사, 작곡과 편곡, 프로듀싱을 ‘혼자서’ 완수해 낸 뮤지션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그가 그 모든 것을 '혼자서'뿐만이 아니라 '제대로'해냈기 때문에 세대를 넘어 큰 사랑을 받는 것이리라. 김민기가 <이한열 열사 추모식에서 불리는 ‘아침 이슬’을 들으며 ‘아, 이 노래는 이제 나의 노래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음악적 감동은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불리는지에 달려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의 음악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면, 이제 그의 음악은 그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https://www.youtube.com/watch?v=MSAWTVYwoT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