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7일 출근길
집을 나서며 몸을 휘감는 바람이 싱그럽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바람은 얼굴에 시원하게 와닿고 머리칼을 흔들며 지나갔다. 헝클어지며 얼굴을 건드리는 머리칼이 간지러우면서도 상쾌했다.
'아, 좋다!'
사람들은 이제 겨우내 입었던 오리털 파카를 벗고 코트를 입거나 후리스나 점퍼를 주로 입었다. 개중에 입은 오리털 파카도 조금은 얇게 보였고 자기 몸의 열기에 파카를 벗어 옆구리에 낀 모습도 보였다. 이제 계절은 겨울을 벗어난 것이 분명하다. 얼마 안 있어 꽃 피는 계절이 올 것이다.
2호선 신당역을 내려가 걸었다. 8-3번 출입구에 젊은 카지노 쿠폰가 서있었다. 8-4번 출입구 앞에는 서있는 사람이 없어서 그 앞에 섰다.
여자는 자주 빛으로 번지르르 빛나는 사각의 숄더백을 메고 있었다. 옆에서 보니 자기 몸 만한 크기의 가방이었다. 체구가 작고 키도 작았다. 검은색 코트를 입고 검은색 구두를 신고, 머리칼은 부시시하게 조명 빛을 반사하며 어깨 밑까지 내려왔다.
카지노 쿠폰를 타고 객실통로로 들어섰다. 승객들이 별로 없는 한산한 카지노 쿠폰를 타게 되었다. 앉을자리도 있었다.
'웬일이지, 많이 한산하네…'
여자는 출입구 부근에 섰다. 스무 살 중반이나 될까. 앳되어 보이는 얼굴에 별다른 특색이 없었다. 여자는 약간 서성대는 모습이었다. 지하철 노선을 보기도 하고 카지노 쿠폰가 정거장에 서면 출입문 밖을 보기도 했다.
여전히 카지노 쿠폰 안에 서있는 승객들은 드믄드믄했고 무료한 상태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오늘부터 읽기로 한 <죄와 벌이다. 표지를 넘기자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로지온 로마노비치 라스콜니코프(로쟈, 로젠카) 휴학 중인 대학생.
아브도치야 로마노브나 라스콜니코바(두냐, 두네치카) 라스콜니코프의 여동생.
폴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라스콜니코바 라스콜니코프의 어머니.
……
읽기가 어렵다. 24명의 등장인물 중 반 정도를 읽다가 눈을 떼야만 했다. 어질어질하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카지노 쿠폰 옆으로 한 남자가 서있었다. 둘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언제 탄 거지?'
남자는 카지노 쿠폰와 비슷한 또래였다. 카지노 쿠폰와 마찬가지로 검은색 코트에 검은색 슬랙스 바지를 입었다. 머리는 적당한 길이로 풍성했고 얼굴과 체구가 작은 편이었다. 큼직한 숄더백을 어깨에 걸쳤는데 이것저것 많이 넣었는지 가방 끈이 팽팽해 보였다. 가방 끈이 연결된 부분은 가방의 무게 때문에 주름지어 있었다.
작은 얼굴에 고만고만한 키. 나이도 비슷하고 복장도 비슷. 마치 이란성쌍둥이라면 속을 까.
그렇다고 카지노 쿠폰의 표정이 밝거나 흥분되는 모습은 없었다. 사무적인 모습에 가까웠다.
'뭐지? 어떤 사이인 거지?'
남자는 얼굴에 웃음기를 띠고 입을 크게 벌리며 얘기를 건넸다. 즐거운 것이 분명했다. 카지노 쿠폰는 두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고 있었는데 남자가 한 손을 카지노 쿠폰의 옆구리 사이에 걸치기도 했다.
카지노 쿠폰는 남자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을 해 주었다. 주로 남자가 얘기가 많았다. 남자는 또 한 손으로 카지노 쿠폰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다. 남자의 행동은 자연스러웠고 카지노 쿠폰는 미소를 머금으며 편한 눈길로 남자를 응시했다.
'요것 봐라.'
이들은 연인이 분명했다.
이들이 만났을 때, 남자가 8-3번 출입구로 들어섰을 때 남자의 표정이 어땠을지 궁금했다. 또 카지노 쿠폰의 얼굴은 어땠을까.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2호선 8-3번 출입구. 시간은 07시 ○○분, 정확하게 ○○분.
시간이 흐른 뒤에 젊은 남녀는 이 순간을 같이 추억하게 될까. 따로 떠올리게 될까. 그들의 꽃피는 봄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