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그 냄새 그대로였다. 열다섯에 집을 나와 반년의 시간을 카지노 게임 속 남영동에 자리를 틀었지만 무엇이 기억에 남느냐고 누군가 내게 물어본다면 말문이 턱 막힐 듯하다. 어쩔 수 없이 늘 새벽 같은 정적의 고요함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해야지. 물론 카지노 게임은 소음들로 넘쳐 났겠지만 내 귀에는 그냥 조용,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었다는 상대적인 이야기가 정확하다. 바퀴벌레가 한밤중 내 굶주린 배를 타고 서둘러 지나가던 일을 말해야지. 지하철의 바글바글했던 사람들도 바퀴벌레 같았다는 말은 할까 말까 망설여진다. 어느 외국인 노동자의 요리 냄새, 다진 마늘을 기름에 엄청 볶는 냄새가 1단계이고 거기에 그 나라 향신료가 섞이는 냄새가 2단계이고 거기에 입혀지는 닭요리 냄새가 3단계이고 그 냄새가 주식主食처럼 내 내장을 절이는 게 4단계였다. 그 외국인 노동자가 내게 건넨 소주 한 잔과 그가 한국인 사장에게 배웠다는 욕 한 바가지를 들려줄 때에 숨이 넘어갈 듯 웃었던 내 미안함과 부끄러움도 기억에 남는다고 이야기해야겠지.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아이스크림 만원 어치를 사 와서 그중 오천 원어치를 먹고서는 잠들곤 했었던 이야기와 퇴근 후 몰래 들어간 어느 교회에 홀로 앉아 손등으로 눈물을 찍고 있었는데... 잠시 후 예배에 사람들이 몰려든 이야기도 해야지. 목사와 신도들의 악 지르는 기도에 놀라서 분명 하나님은 청력이 좋지 않으실 거야 하고 그곳에서 뒷걸음질 친 이야기를 꺼내야지. 카지노 게임과 남영동 사이에는 쉴 만한 곳도 놀만한 곳도 없었다고, 특별한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밖에. 카지노 게임과 남영동 사이에서 나는 해거름을 본 적이 없다. 카지노 게임과 남영동 사이에서 나는 떠오르는 해를 본 적이 없다. 카지노 게임과 남영동 사이에서 비 한 방울 맞지 않았다. 없는 기억을 털어 내고 있다.
그 시절 전혀 보이지 않던 남산 타워에 마흔이 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