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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추억 Apr 30. 2025

교장 카지노 쿠폰 찐친

오늘은 아침부터 삼겹살을 구웠다. 딸아이 체험학습, 옛날 말로 가을 소풍을 해남으로 가는데 도시락을 삼겹살로 싸주라고 했기 때문이다. 저번처럼 소고기로 싸가라고 했더니 소고기를 싸갔을 때의 부작용을 말해주었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뺏어 먹어서 자기는 거의 못 먹었다는 것이다. 어제 딸아이 방과 후에 마트에서 도시락에 들어갈 것들을 샀다.

"엄마, 도시락 한돈 1등급 이상으로 싸주세요."

꽤 구체적인 요구사항이다. 유부초밥이랑 삼각김밥에 들어갈 재료를 사고 음료수도 샀다. 갑자기 딸아이가 도시락에 낙지 젓갈도 싸달란다. 주먹만 한 통에 들어가 있는 낙지 젓갈의 가격이 후덜덜하다. 너무너무 좋은 낙지, 귀족 낙지였는가 보다. 얼핏 보기에 4분의 1은 마늘이 들어간 낙지 젓갈이었다.

"하경아, 낙지 젓갈은 장날에 사자. 너무 비싸다."

"내일 당장 체험학습인데 어떡해요. 낙지 젓갈 없이 어떻게 체험학습에 가라는 거예요."

시무룩한 딸아이의 표정을 보고 그냥 낙지 젓갈을 샀다.

오늘 아침, 내가 싸 놓은 도시락을 확인하는 딸아이였다. 삼겹살을 싼 통을 보더니

"엄마, 여기 공간이 남았잖아요. 고기 몇 점 제가 더 채울게요."

오늘 아침, 딸아이는 아침 식사로 삼겹살을 먹고 등교를 했다.



그나저나 요즘 우리 딸, 새로운 친구가 생겨서 학교생활이 즐겁다.

그 새로운 친구는 얼마 전 새로 부임하신 여자 교장선생님이시다.

딸아이는 자유놀이 시간? (쉬는 시간은 10분이데 자유놀이 시간은 20분이란다.)에 친구와 교장실을 지나치다가 교장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단다. 교장 선생님께 딸아이는 인사를 드렸단다. 미스코리아처럼.

"안녕하세요~교장 선생님~ 4학년 2반 13번 추하경이라고 합니다~ 저를 기억해 주세요~"

얼굴 옆으로 손바닥을 펼쳐서 손가락까지 반짝반짝 흔들었단다. 그러자 그 옆에 있는 딸아이의 단짝 친구 j도 요즘 아이돌 가수처럼 과한 애교로 인사를 했단다.

"교.장. 선쌩님~ 저는 4학년 2반 ○번 j이 라고 해요~ 많은 관씸.싸랑 부탁드려염~" 하면서 눈을 꿈벅꿈벅 거렸다고.

교장 선생님은 딸아이와 친구를 잠깐 교장실에 초대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아주 흥분된 어조로 내게 들려주는 딸아이였다.

"엄마, 교장실 책상이 엄청 크고 의자가 엄청 푹신했어요! 아마도 우리가 교장실의 첫 번째 게스트였을 걸요? 교장선생님이 냉장고에서 마이쮸를 꺼내주셨는데 마이쮸가 아주 돌처럼 딱딱하더라구요. 어쩌다 옹달샘 이야기가 나와서 교장선생님이 옹달샘 노래를 부르셨어요. 깊은 산속 옹달샘~노래가 시작될 때 j랑 저랑 눈이 딱 마주쳤어요. 우리는 순간 눈으로 대화했어요."

"뭐라고 대화했는데?"

"내가 j한테 눈으로 '화음 넣을까?'라고 했어요. 나중에 보니까 j도 그 생각했대요. 요즘 j랑 나랑 노래에 화음 넣고 놀거든요. 제가 높은 음, j가 낮은 음이요."

그러나 딸아이는 초면에 차마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교장선생님은 옛날에 학교 다닐 때 두 시간을 걸어서 학교 다닌 이야기, 남자아이들이 사마귀를 구워 먹은 이야기(아마 메뚜기라 말씀하신 것을 딸아이가 혼동한 것 같다.)들을 해 주셨다고 한다.

그리고 옛날에 학교 다닐 때는 1학기에는 학교가 늦게 끝나고 2학기에는 학교가 빨리 끝났다는 말씀을 해 주셨단다.

"선생님, 1학기는 지나갔고 지금 2학기를 지내는 우리도 그렇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20분이 흐르고 딸아이와 친구는 교장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교장실에서 나왔다고 한다. 교장선생님은 또 놀러 오라는 말씀을 하셨단다.

"엄마, j랑 나 교장선생님과 찐친되었어요! 언제부터 찐친이 되었냐면요. 교장선생님이 깊은 산골 옹달샘 노래 부를 때부터!"

딸아이의 표정과 목소리를 들으니 무척이나 설레 보이고 행복해 보였다.

신분?과 연령을 초월하는 딸아이의 첫 번째 친구 이야기를 들으면서 친구는 참 기쁨이 되는 존재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나이, 성별, 성격, 문화 등등을 초월하여 나와 다른 누군가와 교감하며 친구가 된다는 것은 하루를 긍정적이고 심지어 설레게까지 하며 살게 하는 것 같다. 요즘 우리 딸은 교장선생님과 친구가 되어 학교생활이 설레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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