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추억 May 02. 2025

카지노 가입 쿠폰가 그립다

어제는 위胃가 하루 종일 아팠다. 잠시 잠깐 독한 약의 부작용인 것을 안다. 언제부턴가 일시적인 통증에는 감사를 느낀다. 지나가니까.

어제는 위가 아파서 문득 윤석씨가 생각났다. 윤석씨는 내 20대 때 나를 스쳐간 인연이다. 25살에 만난 직장 동료였고 나보다는 두 살이 많았었다.

윤석씨는 잔소리 쟁이었다. 나는 윤석씨를 피하진 않았지만 윤석씨의 잔소리가 시작될 때면 윤석씨를 피했다. 요즘 사람 같지 않고 너무나 보수적인 윤석씨는 보통의 대한민국 엄마들의 잔소리보다 한 수 위였다. 또 얼마나 깔끔쟁이 인지 사무실 바닥의 머리카락이 그렇게 잘 보였는가 보다. 그 당시 나는 퇴근을 하면 개인적인 공부를 하느라 늦은 밤까지 깨어있곤 했다. 당연히 아침잠이 많았었고 아침마다 간肝의 피로가 느껴져 오늘 당장의 하루를 어찌 견딜까를 염려까지 했었다. 머리카락을 늘 제대로 다 말리지 못한 상태로 풀어헤치고 출근을 했다. 내 자리에는 한 올 한 올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곤 했다. 좀 많이 떨어져 있기는 했다. 그걸 지나치지 않는 윤석씨였다.

"추억씨, 머리카락이 이게 뭡니까? 머리카락 좀 어떻게 좀 해 봐요. 가만 보면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지저분하다니까. 거 머리 좀 잘 빗고 머리 좀 묶고 다녀요."

내 떨어진 머리카락이 그렇게 비위가 상할 일인가.

나는 그런 카지노 가입 쿠폰에게 늘 악담을 했다.

"어우 진짜 그놈의 잔소리! 나중에 누가 윤석씨를 데려갈랑가 모르겠지만 윤석씨 와이프가 저는 벌써부터 안쓰러워요. 윤석씨는 결혼하지 마. 윤석씨 부인 불쌍해."

그뿐만이 아니었다. 더운 여름날 옷을 시원하게? 입고 온 나에게 또 잔소리를 늘어놓는 윤석씨였다.

"추억씨, 옷을 입은 겁니까, 입다가 만 겁니까. 그렇게 입고 싸돌아다니면 밤에 위험할뿐더러 일단은 우리 사무실의 민폐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여미고 다닙시다. 말세네요 말세."

살짝 파인 민소매에 짧은 정장 반바지를 입은 나는 세상을 말세로 만들었다.

윤석씨는 내가 커피를 흘리거나 밥 먹을 때 깨작거리거나 책상이 너저분할 때를 순간 포착하고 그렇게 잔소리를 했다.

고마운 잔소리 없이 자란 나는 그런 진지한 잔소리에 투덜대면서도 속으로 웃겼다.

윤석씨랑 나는 사이가 좋았다. 보수적이고 잔소리가 심한 윤석씨는 다행히 잘 웃는 사람이었고 진급을 위해 자신을 어필하는 글을 써야 할 때도 나에게 부탁할 만큼 서로를 신뢰했다.

그런 윤석씨가 장가를 갈 때에 나는 윤석씨의 와이프에게 사람 하나 구제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굽신굽신 드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뭐라 뭐라 또 잔소리하는 윤석씨였는데 그 표정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윤석씨가 결혼하고 2년쯤 지났을까. 윤석씨가 단기간에 살이 쑥 내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겁이 났다. 건강검진 좀 받으라고 이번에는 내가 윤석씨에게 잔소리를 했다. 나는 윤석씨를 한 달여간 날마다 갈구다시피 했다. 피검사라도 잠깐 하고 오라고 들들 볶아 먹었다. 윤석씨도 속으로 겁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윤석씨는 고집을 피우다가 가까운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그 병원 의사는 당장 서울의 큰 병원부터 알아보라고 했단다. 바보 같은 윤석씨는 죄 없는 의사에게 성질을 냈다고 했다.

대장암 4기, 젊어서 그랬는지 전이도 빨랐단다.

윤석씨가 이곳 직장 생활을 접고 서울로 떠나기 전날 밤 윤석씨를 보러 윤석씨 집으로 찾아갔다.

윤석씨는 막 전주에 있는 병원에서 퇴원하고 집으로 와 있던 상태였는데 낯빛이 검었다. 윤석씨 부인의 손을 잡고 나는 윤석씨 결혼 전에 윤석씨에게 악담을 하곤 했던 나의 말이 떠올라 슬픈 죄책감이 들었다. 잔소리가 심한 윤석씨의 부인이 안쓰럽고 불쌍하다고 말했던 거 말이다. 이제 신혼에 불과한데 윤석씨의 부인이 정말 안쓰럽고 불쌍했다. 무심코 장난삼아 내뱉은 말의 씨앗이 떨어져 싹이 난 기분이었다.

오히려 담담한 두 부부의 얼굴을 보았다. 그게 내가 본 윤석씨의 마지막이었다. 나는 그날 윤석씨에게 해 줄 위로의 말을 찾다가 황당무계한 말을 지껄였다.

"윤석씨, 열심히 사는 것으로 하늘의 별들을 상으로 받게 된다면... 만약 그렇다면요, 내가 별 다섯 개 받았다 치면요, 그 별 다섯 개 다 윤석씨한테 줄 테니 마음 든든히 치료 잘 받아요."

윤석씨는 서울에서 수술을 했고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윤석씨 나이 서른이었다.

가끔 한 번씩 윤석씨 부인과 연락을 하고 지내다가 내가 순천으로 이사 오고 나서는 연락이 끊겼다. 우연히 그녀의 카톡 프사를 보았는데 또 다른 인연을 만나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어제 위가 아파서 윤석씨가 생각났고 오늘 새벽에 별들을 바라보다가 윤석씨가 그리웠다. 그 귀여운 잔소리가 그리웠다.

별들을 바라보다가 '나 윤석씨에게 열심히 산다고 했었는데...' 속으로 읊조리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현재 빈털터리, 별들을 모아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