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는 많이 냉소적이다. 좀 심할 정도로. 얼마전에, 아빠뻘 되는 지인이랑 전화 통화를 했다. 난 별 생각없이 나의 생각을 이야기했는데, 지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인 : "용규야, 그건 너무 냉소(cynical)적인 말이야."
부모도 나에게 종종 말한다. 넌 너무 카지노 게임(cynical)적이라고. 밝게 웃고 싶고, 다정하게 말하고 싶다. 천성(天性)을 거스르고 싶다.
타인을 대할 때 다정하고, 세심하고, 꼼꼼하며, 웃어준다. 하지만 이것은 생존(survive)을 위한 후척전 social skill이지, 내 진의와 진심이 아니다.
카톡 말투도 이모티콘이나, 하트 reacting, "ㅎㅎ"라는 것을 왜 붙이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수능 평가원 국어 지문도 문학보다 비문학을 훨씬 더 사랑했다. 군더더기 없는. 칼같은.
원래 메시져 말투도 "ㅇㅇ.", "응.", "그래.", "알겠어."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조금 더 용기내어서 ":)"까지 붙인다면, 내가 그래도 그 사람에 대한 인간적 애정을 갖고 있다는 표식이다.
개인 관계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데, 단체 사진 찍을 때 내 모습을 보면 웃는 것을 찾기가 힘들다. 가끔, 웃는 모습이 보이지만, 그것 웃는게 웃는게 아니다. 항상 너무 흥분되지도, 너무 우울하지도 않은. 이러나 저러나. 오히려 항상 약간 슬픈 정도. 우울하진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은.
고등학교 친구가 성인이 되고 나에게 많이 시크했다고 말했다. 그랬나. 난 다정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은데. 미안하더라.
작년에도 동아리 활동 하는데, 내가 무표정으로 있자 어느 동생이 조금 불쾌했던 것 같다. 활짝 웃으며 반갑게 인사하고 싶지만, 원천적으로 그게 안되는 사람이다. 미안하다. 용서 바란다.
나를 다정한 사람으로 기억한다면, 그건 내가 사람 대 사람으로써 굉장히 많이 노력하고 배려해 준 것이다. 난 사실 별로 남한테 따뜻하게 해주고 싶지 않다.
카지노 게임(cynical)적인 것과 염세(pessimitic)는 다른 개념이다. 카지노 게임주의자들은 카지노 게임함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반면, 염세주의자는 그걸 표현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로스쿨 입시에서 중요한 리트 점수가 좋지 못하다.
카지노 게임주의자 : (속으로만) 아 난 안될거 같다.
카지노 게임주의자 : 리트, 그거 신수설이야. 되는 사람만 돼. 난 못가. 절대 못가.
낙관주의자 : 괜찮다. 할 수 있다. 너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한다. 같이 해보자.
카지노 게임주의는 집요한 노력으로 낙관주의로 승화될 수 있지만, 염세주의는 많이 어렵다. 염세주의가 심해질 경우 자살하는 사람도 많이 본다.
앞으로 많은 공동체를 운영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나의 카지노 게임함 때문에 고민이 깊다. 언젠가는 진정한 낙관주의자가 되겠지. 암. 그렇고 말고.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누가복음 7:13)
p.s. 그림은 반고흐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