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추리소설
그렇소. 잘 아시는구려, 하하하.
자고로 황제 폐하도, 황태자 저하며 황자 저하들도 찾아주시지 않아 독수공방하는 처자들은 대궐에 넘쳤지.
또 후궁들도 한 번 총애를 잃으면 되돌리지 못하는 법! 다른 건 몰라도 이미 사내고기 맛을 안 여인들은 어떻게든 다시 찾게 마련이오.
그래요, 소장, 좋은 비유군요.
“도미를 구할 수 없으면 정어리라도 먹어라”라….
하긴 황제 폐하께서 도미고, 황태자 저하며 황자저하 분들은 도미의 자식들이고, 그렇다면 내시는 정어리지.
그것도 기름 짜고 남은 정어리 찌꺼기 말이오, 하하하!
하긴 정어리 찌꺼기가 거름으로 그만이듯이, 내시들도 그런 맛이 있나보오.
소장 말씀대로 그 양반도 궁중 여인네들의 총애를 받았으니, 황제 폐하 곁을 지키는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겠지.
아, 그 내시가 뭐라 말했느냐고요?
아, 그렇지! 그걸 말해야지!
이 노무 늙은이가 노망이 살살 들어 이렇다오.
뭐, 남들이라면 별거 아니라며 넘겼겠지만, 내게는 눈이 번뜩할 만한 그런 거였다오.
그 내시가 날 위로하다가 털어놓기를, 그 코오피들 중에서 말이오, 황제 폐하와 황태자 저하께 올리던 코오피를 따로 궁녀들이 들고 왔을 때 말이오, 독의 유무를 알아본 자가 바로 엄비였다고 그랬어요.
그렇소, 내지에 계신 영친왕 전하의 생모 말이오.
30여 년, 아니 이젠 40년 전인가?
그러니까 중전 마마께서 폭도들의 손에 돌아가신 뒤, 아니 웬 기침이오, 소장?
고구마 때매 또 사래가 걸리셨소?
이거 새애기가 급히 내오느라 고구마가 제대로 안 익은 건가?
알았소. 괜찮으시다니 다행이구려.
동치미 좀 들이키시오.
고구마 먹고 목이 매일 땐 역시 동치미가 최고라오.
내지 분들은 조선인들보다 고구마를 훨씬 더 일찍 먹기 시작했다면서, 왜 물만 들이키는지, 원….
아무튼 중전 마마께서 비명횡사하신 뒤 황제 폐하께서는 그 큰 경복궁에서 황태자 저하와 둘이서 불안에 떨며 사셨소.
이에 당시 상궁이던 엄비가 꾀를 내어 자신의 가마에 황제 폐하와 황태자 저하를 태우고 아라사 공사관으로 달아난 일이 있었잖소.
그 덕에 아마 소장께서도 아시다시피 엄비가 황제 폐하의 총애를 받았고요.
허나 실은 황제 폐하의 마음을 잘 다독여주는 이가 엄비였기에 그 전에도 총애를 받았다오.
그러나 중전 마마께서 살아계실 때는 이 사실이 알려지자 대궐을 나가야 했소.
아, 그야 뭐, 중전 마마께서 하도 드세서 말이지요.
오죽했으면 중전 마마께서 시아비인 흥선대원군 합하와도 그리 갈등했겠소.
그러니 황제 폐하께서 마음을 의지하실 만한이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아, 물론 이 늙은이가 자세한 내막을 알 리 없잖소.
게다가 황제 폐하께서 생전에 마음 주신 여인이 한둘이 아니었다던데…, 엄비에게 마음 주신 게 뭐 그리 대단하겠소?
허나, 영친왕 전하도 여기 안 계시니 내 말하리다.
카지노 쿠폰가 말이오…, 소장, ‘정말 인물이 영 아니올시다’ 하면 뭔 소린지 아시겠소?
아, 물론 인물 반반한 여잘 찾는다면 차라리 기생들을 후궁으로 들였겠지요.
저 흥청망청했던 연산군처럼 말이오.
그러니 황제 폐하께서 카지노 쿠폰를 총애하신 이유가 뭐겠소?
맞아요, 소장.
바로 그 말씀대로요.
폐하께서 보시기에 카지노 쿠폰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소.
그게 뭔진 나는 폐하가 아니라서 모르겠소만, 어차피 미색이라면 실컷 맛보셨으니, 그런 거에 더 이상 눈이 안 가신 거지.
내가 생각하기엔 말이오, 폐하 당신께서 전적으로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하셨을 정황에서 그걸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구려.
대궐마저 낭인들의 침범을 당하는 마당이고, 그 와중에 조선인들이 낭인들의 향도를 맡기까지 했다잖소.
에이잉, 또 사래가 걸리셨구먼.
경성에 있는 큰 병원이라도 가보시는 게 좋겠소.
흰머리 한 올 없는 나이에 폐병으로 고생하지 않으시려면 말이오.
아무튼 말이오, 폐하께선 김옥균이 건도 잊지 못하고 계셨을 판에 그런 횡액까지 당하셨으니, 카지노 쿠폰 같은 믿을 만한 인물을 귀하게 여기실 만도 했소.
당연히 카지노 쿠폰도 폐하를 가까이서 모시는 사람인지라 뒷주머니를 찼다는 얘기야 나도 들었소.
하지만 금강산 1만 2천 봉 하나하나에 치성이나 드리던 중전 마마와는 달리, 카지노 쿠폰는 조선 백성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기도 했잖소.
맞아요, 소장. 내가 말하려는 게 그거요.
카지노 쿠폰 그분이 여학교를 여럿 열어 이 조선의 여인네들에게도 밥 짓고 빨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내들도 못하는 일마저 척척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공이 크잖소.
하지만 그런 일을 하기 위한 돈을 마련한다는 핑계로 벼슬을 팔고 뇌물을 받아 뒷주머니에 채워 넣은 일은, 임오년의 군란과 진령군 그년에게 온 대궐이 놀아나게 된 원흉인 중전 마마의 것 못지않았다고 하오.
그래도 말이오, 오늘내일하던 나라의 군주로 하루하루를 내우외환과 근심걱정 속에서 살아가시던 황제 폐하를 편안하게 해드린 공이 엄비에게 있는 건 분명히 사실이라고들 하오.
그래서 황제 폐하도 카지노 쿠폰를 지극히 총애하셨고요.
아, 그래서 종종 수라나 음료의 독 검사도 맡기셨던 모양이오.
하긴 충성을 하네 어쩌네 해도 마누라보다 나은 놈년 없잖소, 소장.
게다가 아라사 공관으로 도주한 일도 카지노 쿠폰가 기획한 일이었고요.
각설하고요, 그 내시가 말한 건 이런 거였소.
카지노 쿠폰는 그 난리가 나기 직전에도 은 젓가락을 꺼내서 코오피에 담갔다고 했소.
그런데 젓가락이 전혀 변색이 안 됐던 거야!
그래요, 소장. 음식에 독이 들었다면 은젓가락이 검어져야 했소.
게다가 카지노 쿠폰가 아주 작은 은수저로 직접 떠서 살짝 맛을 보던 것도 그자가 똑똑히 봤다고 했소.
그런데도 카지노 쿠폰가 멀쩡했던 거지.
이는 그자뿐만 아니라, 외숙부도 해주신 얘기요.
그렇지! 역시 이상하지요?
뭐라고요, 아루미니우므(アルミニウム:알루미늄)?
아, 구라파인들이 발명한 가짜 백은(白銀)이라고요?
허어, 세상에! 이 초가삼간보다 큰 비행기가 무게를 줄이려고 쇳덩이 대신 다른 금속을 쓴다더니만…, 그게 아루미니우므였군요!
하긴 황제 폐하께서 궐 내외 만인의 눈을 피해 아라사 공사관으로 도망가실 수 있게 기획한 엄비니, 그 아루미니우므 젓가락이랑 수저 한 벌쯤 구하는 건 일도 아니었겠지요.
뭐, 이쯤에서 다른 얘기를 또 꺼내야겠는데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