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태도로 교수를 괴롭히지 맙시다
우리 학교 디몬포트대학 De Monfort University은 그렇게 랭킹이 높은대학이 아니라서 고등학교 때 공부를 가장잘하는 학생들이 학부생으로 오는 곳은 아니다.특히 우리 과 (제품 디자인과) 학생들은성적은별로 좋지 않았으나예체능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 위주이고, 난독증이 있다거나 ADHD (Attention-Deficit Hiperactivity Disorder: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가 있는 학생들도 매해한두 명 이상보이는 편이다.석사생들은외국인 학생들이 80퍼센트 이상이라 매해 다양한 학생들이 입학하니 그때그때 느낌이 다르다. 어떤 해는 아주 똑똑하고 똘똘한 학생들이 많기도 하고, 어떤 해는 말도 안 되게 이상한 학생들이 모여 있기도 하다. 박사생들은 나름 지원할 때연구제안서를 다 읽어 보고 수정도 시켜보고서 엄선해서 뽑는편이다.지금까지는 계속 외국인 박사생들만 받아왔다.내가 꼭 외국인 학생들만 뽑아야지 한 것도 아니었는데 내 이름이 너무 외국인스러우니까 영국인들은 굳이 나한테 지도를 받으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워낙 다양한 학생들과 매년 함께 하니 학생들 덕분에 보람과 기쁨, 재미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학생들로 인해 실망하고 짜증 나고 좌절스러울 때도 많다. 애들이 왜 이러지, 더 좋은 학교에 가면 학생들이 더 나으려나, 이직을 해야 하나, 싶은 순간들이 생각보다 많다. 별 의지도 없는 것 같고, 큰 노력도 안 하는 것 같고, 오히려 교수인 내가 더 똥줄이 타는 것 같은 그런 학생들을 보면 내가 왜 나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건가잘 모르겠다. 정말 열심히 하는데 잘 안되고 잘 못하는 학생들을 보면, 나도 안타까워서 더 도와주고 싶기도 한데, 태도가 글러먹은 학생들을 보면 와, 진짜 얘(네)는 희망이 없다, 싶다. 차라리 진짜 싸가지는 없는데 엄청 똑똑해서 알아서 잘하는 애들은 좀 짜증은 나지만 희망이 없진 않다. 제일 희망이 없는 케이스는 똑똑하지도 않은데 성실하지도 않고 배우려는 자세도 안되어 있는 애들이다. 거기다 남 탓까지 하기 시작하면 정말 오만 정이 다 떨어진다. 학생한테 오만 정이 다 떨어질 때면 이직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적당히 좋게 좋게 빨리 그학생과의 인연이 끝나기를 바란다. 아, 제발, 빨리 졸업해 줘, 싶다.
전반적으로는 학부생들이야 원래 처음부터 기대를 별로 안 하니까 실망이 적은 편인데,석사생들이나 박사생들이기대 이하면 상대적으로 좀 실망이 크다.대학교 처음 다녀보는 게 아닌데 왜 이렇게 기본이 안 되어 있지? 라든가, 이게 지금 다 큰 성인이 하는 말과 행동인가? 싶을 때가 생각보다 많다. 석사생들의 경우 석사과정이 1년이라 학생 중 누군가 희망 없는 태도로 나오기 시작하면 정말 답이 없다. 원래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1년 안에 태도를 가르칠 수는 없다. 거의 첫 한 달의 태도에서 1년의 학점이 결정되는 것 같다. 인터내셔널 학생들이 영어를 못하는 것 또한 좌절스럽다. 내가 영어 선생도 아니고1년 안에 영어를 잘하게 만들 수는없는 일이다. 또 애들이 석사 학위까지 받아서 학부생들보다 취업을 더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부담도 항상 느낀다. 알아서 제 갈 길 잘 찾아가는똘똘이들만 석사과정에 와준다면 참 좋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석사 졸업생들에게 종종 애프터서비스를 해주고 있으며,그럴 때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업무량의 증가도 있지만 그보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 더 별로다. 학생 여러분들, 본인들이 잘 되시는 게 교수에게도가장 기쁘고 보람차고 실질적으로도 도움이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제발 다들 잘 되시길.
석사생들은 1년이 너무 짧아서 똑똑하지도 않고 태도도 안 좋은 학생들을 만나면 더 희망이 없다 느끼는데, 박사생들은 그 반대로 3년 이상이라 너무 길어서 더 희망이 없다 느낀다. 박사를 하는 나이는 아무리 어려도 20대 후반인 경우가 많고, 나이가 많을수록 사람이 바뀌는 것은 정말 쉽지가 않아 보인다. 마음에안 들어도 최소 3년 어떻게든 함께 가야 한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조건이 성립되지 않으면(졸업이 되지 않으면) 이혼할 수 없는 그런 어떤 계약결혼 같은 관계인 것이다. 태도가 안 좋아서 만나면 기분이 좋지가 않고, 그런데 그렇다고 내가 우리 소중한 학생님에게 기분 나쁜 티를 내거나 화를 낼 수도 없고, 그 와중에똘똘하게 연구를 잘하지도 못해서 이건 학생이 논문을 쓰는 건지 내가 쓰는 건지 잘 모르겠는 그런 학생이 지금 한 명 있는데 정말 난감하다.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학생이 나한테 왔나, 과거의 나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왜 이런 학생을 뽑았을까, 나는 사람을 보는 눈이 없는 건가, 등등의 부정적인 생각들이 자꾸 슬며시 든다. 참 마음에 안 들고, 한 번 마음에 안 드니까 자꾸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이 확대되어 보인다.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1도 안 드는데, 그렇다고 안 도와주면 3년이 아니라 몇 년이 걸려 박사를 끝낼지도 모르겠다. 오래 데리고 있을수록 물론 학생도 괴롭겠지만 내가 더 괴로울 테니까,정말 마음에 안 들지만 최선을 다해서 빨리 졸업하게끔 도와줄 수밖에 없는 지금 상황이 참 즐겁지가 않다. 박사생은 더 신중하게 잘 뽑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여러분들, 혹시 어디 박사를 하러 가신다면, 아니면 박사를 하고 있는 중이시라면, 제발 나쁜 태도로 지도교수를 괴롭히지 말아 주세요. 교수는 소중한 학생님들에게 생각보다 싫은 소리 하는 것이 쉽지 않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