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말해주기
아침을 맞이하며 나에게 제일 먼저 사랑을 말해주는 건 아이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엄마가 앉아있는 책상에 와서 안아주고 볼 뽀뽀도 해주며 잘 자라며 인사하고 잠든다. 하루 중 제일 처음 시작은 인사를 건네며 웃어주는 비타민은 아이들이다. 글을 쓰기 전, 매일 아침과 밤에 해주는 인사가 나에겐 소중하다는 걸 예전에는 알지 못했다. 저녁이 되면 빨리 아이들을 재우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컸으니까.
아침이면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들의 등교 준비하는 시작이 소란스럽고 전쟁터 같았다. 평범하지만 요란한 엄마의 아침 시작은 시끌벅적했다. 평범 속에 특별함을 지닌 첫째 아이는 느린 시간을 걸어가는 아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과정은 쉽지 않았다. 소소하게 지나갈 것 같았던 일상 속에 늘 빠지지 않고 가는 발달센터는 첫째 아이가 34개월일 때부터 매일 빠짐없이 일정을 정리했다. 어린이집을 갔다 오면 연예인 뺨치는 일정을 일주일 내내 소화해 냈다. 엄마로서도 쉽지 않은 나날이지만 그때 꼬꼬마였던 첫째 아이에게는 더 힘들 거라는 걸 왜 모를까?
유치원에 가려고 시내버스를 탈 때마다 버스 바닥에 발 딛는 것조차 힘겨웠던 아이였다. 한쪽 팔에 힘을 주고 아이를 들쳐 안은 채 버스의 흔들림을 온전히 감당하는 건 엄마의 몫이다. 버스를 한 번 타고 내리면 첫째 아이는 머리와 목덜미, 등까지 땀에 흠뻑 젖어서 품에 안겨 타기를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했다. 보통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배워가는 것을 스스로 습득하지 못하기에 하나부터 ~열 가지 한 개를 쪼개고 쪼개서 아이에게 연습시킨다. 버스 타기 연습을 꾸준히 엄마 따라 하면서 바닥에 발이 닿고 웃으면서 버스를 탈 수 있게 되고 엄마에게 괜찮다는 신호를 보낸다. 어떤 날은 아이가 걷기에는 먼 거리인데 뚜벅뚜벅 엄마를 잘 따라다녀서 오히려 고마웠다.
첫째 아이는 조그마한 꼬꼬마 때부터 매일 엄마와 인사를 연습했다. 보통은 연습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눈으로 보고 따라 할 수 있는 작은 동작까지 수십 수백 번 연습하고 반복했다. 그렇기에 첫째 아이와의 아침 인사와 포옹은 특별한 인사였다. 자연스레 익혀진 상호작용이 아니라 반복과 연습으로 이루어진 인사와 감정, 그리고 엄마를 안아주는 일이다. 쪼개서 가르칠 때는 몰랐던 평범한 일상 첫 번째, 인사의 소중함은 언제나 첫째 아이가 자연스레 알려준다. 다른 사람에게 별거 아닌 일이지만 내게는 아이와의 특별한 아침 인사가 되었다.
둘째 아이는 뭐든 가르치면 빨리 배우고 암기력도 좋았다. 꼬맹이 때부터 형에게 엄마를 양보해 오는 게 당연시되었던 아이였기에 매일 엄마에게서 사랑을 확인한다. 어린이집을 다니면 언제나 선생님들께 너무 잘한다며 칭찬을 받아오지만, 엄마에게 1순위는 형을 데리고 센터를 가는 게 당연시되었던 둘째 아이였다. 그래서 어떤 날은 둘째 아이만 몰래 과자를 사준 적도 있고, 좀 더 커서부터 용돈을 한 번씩 더 주는 날도 있었다. 먹는 것을 사주고, 용돈 조금 더 준다고 하여 엄마의 사랑이라고 느끼진 않겠지. 2순위가 당연했던 둘째 아이는 의도하진 않았지만,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 되었고 마음이 쓰였다.
매일 엄마가 형아 옆에 있으니 둘째 아이에게는 당연하듯 토끼 인형이 함께했다. 애착 인형을 가지고 끌어안고 있는 행동이 둘째 아이에게는 엄마 품이었다. 큰아이의 태교로 만들었던 토끼 인형은 이제 온전히 둘째 아이의 잠 친구가 되었다. 15분의 짧은 아침 등원을 엄마와의 산책길이 되고, 집에 돌아오면 어김없이 인형을 찾았다.
내게 두 아이의 아침 첫인사는 특별한 시간이다. 각각의 이유는 달랐지만, 결국엔 두 아이 모두 엄마를 좋아해 주고 아낌없이 사랑해 주는 아이들의 애정표현이 매일 나를 웃게 해 주고 살아가게 하는 이유가 된다. 수없이 쪼개고 반복해서 사랑스러운 인사를 하게 된 첫째와 자연스레 스스로 익히고 이어진 둘째 아이. 서로 배워가는 방법의 차이만 있을 뿐 살아간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누군가에게 마음 하나를 보이기 위해 수없이 쏟는 모든 과정은 소중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