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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곳 Feb 28. 2025

“갈아 마시겠다” 던 그놈 목소리

“갈아 마시겠다”


회사 상사인 그가 민주노총 가입 1호인 나에게 말했다. 마침 난 농성장에 혼자 있었다. 이른 아침이었다. 저음의 한마디, 살의를 느꼈다. 15년 전 일이다.


난 3개월짜리 비무료 카지노 게임이었다. 젊었고 성실했고 실적이 좋았다. 이렇게 2년 잘 버티면 정규직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 꿈은 곧 깨졌다. 정규직은커녕 계약직은 거의 1년 되기 전에 잘린다는 걸 알게 됐다. 3개월짜리 계약서 3번, 2개월 1번, 그렇게 11개월을 다니고 대부분 계약이 거부됐다. 퇴직금도 안 주겠다는 거였다.


일하느라 방광염, 변비에 비염까지 생겼는데, 억울했다. 어렵게 동료들과 노조를 만들었다. 계약직에게 노동조합은 물러설 곳 없는 이들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회사 정문 앞에서 피켓을 들기 시작했다. 회사도 동네도 떠들썩했다. 정치 야심이 컸던 사장은 지역에서 비무료 카지노 게임 양산한 악덕 사업주가 됐다.

사장은 날 뽑았던 관리자를 한직으로 보냈다. 다른 관리자는 어용노조를 만들었고, 또 다른 관리자는 나를 감시하고 협박했다. 조합원과 나는 독하게 버텼다. 회사는 노조에 정규직 전환하겠다 제안했다. 단서는 노조 간부인 나만 제외하자는 것. 받아들였다.


지난 토요일 윤석열 탄핵집회 행진 마지막 코스는 세종호텔이었다. 해고된 고진수 지부장이 고공농성 중이었다. 그 광경을 보자마자, 15년 전 ‘그놈 목소리’가 내 귓전을 때렸다. 소름이 돋았다. 그가 노동조합을 지키고 싸우며 느꼈을 외로움과 분노가 오롯이 느껴졌다.


세종호텔은 코로나19로 경영이 어렵다며 2021년 12월 노동자 12명을 해고했다. 해고당한 조합원들은 정리해고 요건이 부적절했다며 소송했지만, 작년 12월 대법원은 해고가 정당하다 판결했다. 현재 조합원 6명이 호텔경영이 정상화됐으니 복직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회사는 답이 없다. 결국 고진수 노동조합 지부장이 10미터 높이 광고탑에 올랐다.


지난 수년간 세종호텔은 노조 조합원을 탄압했다. 조합원의 임금을 삭감하고, 강제 전보를 일삼았다. 견디지 못한 이들이 노동조합을 탈퇴했다. 회사는 구조 조정한다며, 객실 정비, 주차관리 등 필수 직종들을 외주 용역으로 채용했다. 정규직을 280여 명에서 40명으로 줄였다.


응원봉을 쥐고 세종호텔로 달려온 시민을 향해, 고진수 지부장이 외쳤다.

“윤석열 끌어내리고 다시 만날 세계는

정리해고 없는 세상, 비무료 카지노 게임 없는 세상, 온갖 차별이 없는 세상이어만 합니다”


2월 25일 윤석열 탄핵 헌재 변론이 종결됐다. 머지 않아 올 헌재 파면 인용의 날, 불의를 응징하고 새로운 사회를 여는 출발이 되길 바란다. 노동자라면 누구나 노조 가입하고, 부당하게 해고되지 않고, 갖가지 딱지를 붙여 차별하지 않는 세상, 권력을 쥔 ‘그 놈들’이 약자에게 패악질 부리지 않는 세상. 매우 상식적인 사회가 아닌가. 쉽게 오진 않겠지만, 그것이 광장에 나선 시민의 요구라고 생각한다. 이젠 너나 없이 응원봉을 들고 만나는 ‘우리’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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