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카지노 쿠폰은 날 밀어냈고 난 생을 향해 달렸다.
나는 믿는 신앙이없다. 종교에 시간과 돈을 쓰는 것이 어쩐지 좀 아깝다. 이런 삶을 준 게 신이라면 그닥 추앙하고 싶지 않다. 종교에서 약속하는 영생도 싫고, 다시 태어난다는 환생도 싫다. 이번 생만으로도충분히과했다. 다만, 어릴 적부터 엄마가 입버릇처럼 들려주신 세뇌에 가까운 한 문장은 종교 교리마냥 뇌리에 박혀있다.
"딸 많은 집 딸년들은 죽이려고 우물물에 쳐넣어도 죽지 않는다."
질기도록 오랜 생이 있을 거라는 덕담이자 저주였다. 실제로 살면서 죽을 뻔한 위기도, 카지노 쿠폰의 유혹도 있었지만, 난 살아있다. 언니들 역시 죽을 뻔한 사고들 속에도 멀쩡히 살아 오늘까지 잘 살고 있고. 엄마의 말을 믿기 시작한 건 예닐곱 살 무렵여름이다. 내가 카지노 쿠폰과 처음으로 마주했던 날, 엄마의 말을 믿게 되었다.
난 까무잡잡한 시골 아이였고, 초교 동창들은 다 다녔던 유치원을 교육비가 아까워 보내지 않은 아빠 덕분에 화분마냥 방 안에 놓여있어야 했다. 돈도 돈이지만, 한편으론 봉고트럭을 산 건 내가 입학하고 조금 지난 시점이었으니 예닐곱 살 여자아이의 등하교 시키는 게 녹록치도않았을 것이다. 아침 점심 저녁 세 번 시골버스는 다녔지만 아빠는 자매들에 용돈 한 푼 주지 않아서, 카지노 쿠폰은 마을버스가 올라올 즘부터십리 길을 부지런히 걸어가야 했었다. 언니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혼자 심심하게 보내는 시간동안 널리고 널린 풀들만 바라보는 건 너무 지겨워서, 하교한 언니들의 책가방에 든 교과서나 숙제 공책들을 살펴보면서 부러워했다. 덕분에 누가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한글과 숫자를 모두 익히고 국민학교에 입성할 수 있었다. 언니들은 질투와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언니들이 하교하면 내가 보고 듣지 못한 어떤 경험을 했을까 상상하며 나름 호기심에 눈을 반짝였었다.
언니들이 방학을 하면 그제서야 언니들과 놀 수 있었다. 그럼 난 언니들이 가는 곳은 무조건 따라가고 싶어했다. 더운 여름, 우리 집에서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한심한 캠프'가 있었는데, 정확한 주인장 이름의 펜션 명칭이었던 건지, 우리 자매가 아무렇게나 주워붙인 이름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곳의 왕오디는 무척 크고 달았고, 민박업을 하고 싶었던 주인장이 개울을 깊게 파고 그 주변을 평평하게 다져놓았기에 아이들이 뛰놀기 안성맞춤이었다. 언니들이 방학을 맞으면 우리집 둘째부터 다섯째까지는 가장 더울 낮 시간동안, 제 집인양 그곳을 장악했었다. 쫓겨나기는 커녕, 주인장을 마주했던 기억이 없는 것보면 사업하려하다 방치하고 묵혀둔 터를 우리 집 자매들이 침범했던 것 같다.
장마가 끝나고, 흙빛으로 검게 변한 개울물도 맑아진 그런 날이었다. 한동안 외출하지 못했던 자매들은 옳다구나 하며 한심한 캠프로 향했다. 장마철이 끝난 개울물은 맑고 잔잔해 보이지만 평상시보다 유속이 빨라 꽤 위험하다. 당시의 철 없고 어리던 우리들이 알 바는 아니었다. 자매들은 장마에 떠내려왔거나 캠프 주변에 놀았던 사람들이 버리고 갔을 두껍고 하얀 약수통이나 우유통, 쥬스병 따위를 쥐고, 튜브 삼아 물에 뜨며 물놀이를 했다. 장마가 끝난 터라 수위는 평소보다 훨씬 깊었고, 이에 신났던 언니들은 물이 깊으니 따라오지 말라고 내게 경고하고는 나만을 버려두고 가장 깊고 먼 곳까지 약수통을 쥐고 헤엄쳐갔다.
용감하게 멀리 가는 카지노 쿠폰이 부러웠고, 천지 분간 못하던 난 객기가 치밀었다. 양손에 쥔 1.5리터 음료수통을 바라보며, 카지노 쿠폰과 함께 놀겠다고 다짐했다. 가장 깊은 곳을 향해 발장구를 쳤다. 하지만 카지노 쿠폰이 있는 위치까지 가는 데만도 힘에 벅찼고,위태롭게 패트병 입구를 쥐고 헤엄치던 손은 기어이 힘이 풀렸다. 막내 여동생이 자신들에게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르고 물놀이에 여념인 카지노 쿠폰에게 도움을 요청할 틈도 없이 그렇게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당황해 물속에서 주변을 살피려 했지만, 수면 위로 빛나던 태양을 제외하곤 아무 것도 파악할 수 없었다. 잠시간 절망했다가, 금세 체념했다. 내가 이대로 죽을 거란 걸 알았다. 물 속에서 힘을 빼면 떠오른다던데, 거짓이다.고작 물속에서 까치발을 들 정도 밖에 안되는 부력이다.모든 발버둥을 멈춘 채였는데도, 내 발은 개울물 가장 깊은 곳에 닿아있었다. 그저 고통이 크지 않길 바라며 온몸에 힘을 뺀 채 카지노 쿠폰을 기다렸다.
그런데, 몸에서 힘을 빼자 내 온 등을 끊임없이 밀어내는 물살이 느껴졌다. 그 물살은 내게 앞으로 걸어나가라 끈질기게 재촉했다. 그 물살에 저항하지 않고 개울 가장 깊은 곳을 한 발 한 발 걸었다. 그러자 조그만 머리통 속으로도 개울물은 우리집 앞으로도 흐른다는 생각이 났다. 우리집 앞 개울은 비가 와도 언니들 배꼽에도 안 찰만치 물이 얕았고, 어쩌면, 그곳까지 갈 수 있다면, 난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맞다는 듯 물살은 자꾸만 내 등을 떠밀었고, 난 물살의 도움을 받아 생을 향해 달렸다.
그렇게 멀리까지 달릴 것도 없었다. 차츰 내 등을 밀어내는 물살이 약해졌다. 물살이 힘을 잃기 시작한 그 자리부터는 떠내려가다 고여버린 흙과 돌들이 촘촘히쌓여 물 속에서도 단단한 언덕이 만들어져 있었다.돌모래 언덕을 걸어올라 한껏숨을 몰아쉬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개울 속에서 들이킨 물 때문에 콧 속이 찡하도록 아팠다.
살면서 수 십 번도 넘게 그 날이 떠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건 분명한 그리움이었다. 그 때, 그 개울 가장 깊은 곳에 계속 가라앉아 있었더라면. 아무 것도 몰랐던 때, 가족 말곤 그 누구도 나를 알지 못했던 그 순간에 영영 사라졌더라면, 나는 상처 받지 않고 또 상처 주지 않을수있었을까?태어난것에 감사한 적이 없는 나는 그 순간이 때때로 간절히도 아쉬웠다.그러나 다시금 생각하면, 그날 카지노 쿠폰은 나를 거부했다. 나는 카지노 쿠폰을 받아들였지만, 카지노 쿠폰은 내 등을 끊임없이 밀어냈다. 그리고 기어이 나는 생을 택했다. 내 카지노 쿠폰이 누군가의 죄책감으로 남지 않길 바랐고, 더 많은 날을 살고 싶었다. 어렸지만, 그건 분명한 나의 의지였다. 그날의 나를 후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