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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지 Apr 30. 2025

<조용히 나를 닮아가는 카지노 게임

가게를 연 지도 몇 달이 지났다.


이제는 처음처럼 서툴지 않다.
커피 머신의 압력 조절도,
음악이 흘러나오는 타이밍도,
언제쯤 창가에 햇빛이 들어오는지도
몸이 먼저 알아챈다.


그 모든 루틴이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고,
그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 속에서
나는 ‘사장’이라는 이름을 천천히 입어가기 시작했다.


하루가 흐르고,
일주일이 지나고,
계절이 조금 바뀌자
카지노 게임도, 나도
조금씩 서로 닮아가기 시작했다.


벽에 걸었던 그림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고,
선반 위 레이스 천은 매일매일 손으로 다듬어졌다.
음악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분위기를 읽었고,
나는 그 흐름에 맞춰 커피를 내리고 사람을 맞았다.


이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가게의 공기가 정돈됐다.


그때부터 조금씩
내가 ‘이 카지노 게임의 주인’이라는 걸
감정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심스러웠던 선택들이
이젠 내 손끝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새로운 메뉴를 고민하고,
그날의 꽃을 고르고,
문득 손님과 나눈 짧은 대화를 곱씹는 저녁.

이 카지노 게임은 나를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건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누군가의 카지노 게임에서 일했던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감정.


잘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어도,
내가 만든 하루를 내가 감당한다는 책임감이
조금씩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가끔은 힘에 부치는 날도 있다.
일이 몰리고, 손님이 없고,
에스프레소가 이상하게 추출되는 날.


하지만 그런 날도
이 카지노 게임은 조용히 나를 감싸준다.
어떤 실패도
다시 나를 훈련시키는 연습처럼 느껴지고,
그조차 이 카지노 게임의 일부가 된다.


예전에는
내가 카지노 게임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안다.
이 카지노 게임도 나를 따라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걸.


사람이 만들어가는 카지노 게임이 있다는 건,
참 따뜻한 일이다.
그리고 그 카지노 게임이
사람을 다시 만들어준다는 건,
참 놀라운 일이다.


이제는 안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매출이나 메뉴 수가 아니라,
내가 이 공간에 얼마나 정직했는지를 기준으로 남는다는 걸.


조용히 나를 닮아가는 카지노 게임 안에서,
나는 여전히
사장을, 사람을,
그리고 나 자신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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