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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 사무엘 May 04. 2025

첫 번째 카지노 게임

10살의 황 사무엘이 20살의 황 사무엘에게

2015년, 어느 늦은 밤, 만 10세의 황 사무엘은 여느 때와 달리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쥐어짜며 오늘의 숙제를 하고 있었다.


Write a Letter to yourself 10 years from now
10년 뒤 나 자신에게 카지노 게임를 써보세요

'10년 뒤 나에게까지 카지노 게임를 써야 돼...? 이거 골치 아프네'


약 한 달 전 미국으로 이주해서 겨우겨우 수업에 따라가며 정착한 나로서는평소대로 라면 이렇게 쉽고 열린 질문은 두 팔 벌려 환영했겠지만 왠지 지금은 딱히 그런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정말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 건 둘째 치고, 20살의 나를 뭐라 부를지도 나름의 중요한 문제였다.


"나, 너, 당신, 형..?"


애초에 아직 현실 감이 없는 나이었다. 20살, 어쩌면 10살의 내가 감히 말도 못 붙일 것 같은 나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예의 있는 호칭을 써보기로 했다.


"선생님"


교육에는 관심도 없거니와 애초에 미국에 이주한 이후로 사람들만 만나면 무슨 말을 하는지 해석하기도 바빠 말도 못 붙일 정도로 어수룩하게 변했지만, 이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극존칭으로 미래의 나를 무르는 것이, 성인의 나이까지 나름 잘 버텨 온 나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2015년의 황 사무엘이라고 합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또 막혔다. 여기쯤 레서 내가 생각하는 카지노 게임의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주변의 카지노 게임들을 둘러봤다. 단추가 달린 와이셔츠를 입거나, 운전을 하거나, 바쁘게 움직이면서 끼니를 거르거나, 야근을 하거나, 아니면 이 보든 것을 동시에 하며 살아가는 것이 내가 정의하는 카지노 게임이었다. 그래서 나름 잘 정돈되었다고 생각한 저 소개 멘트 이후에 다음 문장은 이러하였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2015년의 황 사무엘이라고 합니다

잘.... 버티고 계신가요? 혹, 생각보다 맘대로 되자 않는 삶에 지금의 저만큼 좌절하고 계신가요?

'이게 맞지, 난 솔직히 카지노 게임이 되고 나면 다 잘 살 것 같긴 한데, 분명 아는 사람도 있으니...'


미래의 나까지 사려 깊게 생각하는 나 자신에 왠지 모를 우월감까지 느끼며 다음에 쓸 내용을 고민해 봤다.

'질문으로만 가득 채워볼까? 굳이 길게 말 안 해도 내가 알고 싶은 건 내가 얼마나 멋진 카지노 게임이 되었나.... 그거뿐이니까....'

다시 자판을 두들겼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2015년의 황 사무엘이라고 합니다

잘.... 버티고 계신가요? 혹, 생각보다 맘대로 되자 않는 삶에 지금의 저만큼 좌절하고 계신가요?

제가 어떻게 감히 카지노 게임의 삶을 헤아려보이겠냐먄은...대부분의 카지노 게임들은 (최소한 제가 만난 여러 카지노 게임분들을 보면) 저 같은 애들이 질문하는 걸 참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나름의 100문 100답 느낌으로 준비한 질문들이 있는데.... 100개를 한꺼번에 하시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한 번에 10개씩.. 나눠서 질문을 드릴게요

1. 저는 키가 어디까지 자라나요? 아빠를 능가하나요?
2. 저... 대학은 어디 가요? 정말 고등학교 때까지만 미국에 가고 대학은 한국에 있는 데로 가나요?
3. 대학 가면 정말 여자친구 생기나요?
4. 저 친구는 많이 사귀나요?
5. 저 출퇴근하는 그런 카지노 게임들이 하는 일 하나요?
6. 저 영어는 얼마나 늘어요?
7. 돈 많이 벌어요?
8. 저 한국말은 똑같이할 줄 알아요?
9. 지금 여기서 만난 친구들 아직도 알고 지내요?
10. 저 휴대폰은 언제 생겨요?

이번에는 이 정도만 써도 될 것 같아요! 꼭 답변해 주세요!

존경을 담아
황 사무엘 올림
2015년 5월 3일

다 써보고 난 뒤에 보니, 중요한 질문들에 표시를 해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내가 쓴 질문들을 천천히 읽어봤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2015년의 황 사무엘이라고 합니다

잘.... 버티고 계신가요? 혹, 생각보다 맘대로 되자 않는 삶에 지금의 저만큼 좌절하고 계신가요?

제가 어떻게 감히 카지노 게임의 삶을 헤아려보이겠냐먄은... 대부분의 카지노 게임들은 (최소한 제가 만난 여러 카지노 게임분들을 보면) 저 같은 애들이 질문하는 걸 참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나름의 100문 100답 느낌으로 준비한 질문들이 있는데.... 100개를 한꺼번에 하시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한 번에 10개씩.. 나눠서 질문을 드릴게요

1. 저는 키가 어디까지 자라나요? 아빠를 능가하나요? (중요!)

2. 저... 대학은 어디 가요? 정말 고등학교 때까지만 미국에 가고 대학은 한국에 있는 데로 가나요?(중요!)

3. 대학 가면 정말 여자친구 생기나요?(중요!)

4. 저 친구는 많이 사귀나요?

5. 저 출퇴근하는 그런 카지노 게임들이 하는 일 하나요?(중요!)

6. 저 영어는 얼마나 늘어요?(중요!)

7. 돈 많이 벌어요?

8. 저 한국말은 똑같이 할 줄 알아요?

9. 지금 여기서 만난 친구들 아직도 알고 지내요?

10. 저 휴대폰은 언제 생겨요?(중요!)

이번에는 이 정도만 써도 될 것 같아요! 꼭 답변해 주세요!

존경을 담아
황 사무엘 올림
2015년 5월 3일

"다 썼다..!"


프린트를 누르고 활자가 선명히 찍히기를 기다리다가, 학교에서 미리 준 카지노 게임지에 학교 주소지와 내 주소지 스티커를 붙여, 침으로 봉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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