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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한 Apr 27. 2025

아롱이다롱이 만만세 5부

상습적인 칼질로 인해 지울 수 없는 피가 깊숙이 배어버린 나무 도마. 움푹 파여 내려앉은 그 나무 도마의 상처 위에 놓인 생선을 내리치듯, 아버지는 아물지 않은 카지노 게임의 마음을 토막 내기 시작했다. 카지노 게임는 그동안 힘겹게 헤엄쳐 온 그 격랑의 바닷속에서 뻐금거리던 아가미를 밖으로 드러낸 채, 필사의 몸부림으로 지느러미를 파닥거렸다.



(아롱이다롱이만만세 5부)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개 키운 지 한 달이 넘었다면서요?”


“죄송합니다.”


“고시원에서 개를 두 마리나 키우다니 허허 나 참 사십 년 넘게 이런 경우는 처음이구먼.”


어느 날 머리가 하얀 남자가 올라오더니 제게 으르렁거리던 오빠처럼 아빠에게 으르렁거렸어요.


“사장님 죄송합니다. 안 그래도 말씀드리고 한 달만 시간을 달라 부탁드리려고 했습니다.”


“허허 지금 빼도 모자랄 판에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저는 오빠에게 덩달아 으르렁거렸는데, 아빠는 왜 으르렁거리지 않는 걸까요?


“개를 치우던가 방을 빼던가 양자택일하세요. 민원이 장난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사정이 있어 그러니 한 달만 시간을 주세요.”


“허허 나 참 미치겠구먼! 이건 경우가 아니잖아요!”


아빠의 목소리 톤은 점점 낮아졌어요. 평상시 우리를 쓰다듬으며 말하던 그 어투와도 너무나 달랐어요.


“이제 겨우 6개월 된 핏덩이예요. 아직 짖지는 않으니까 없는 듯 지내다 한 달 후에 나갈게요.”


아빠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비비자 머리가 하얀 남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어요.


“사장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가엾은 생명이에요.”


“좋소. 이번 달 방세를 이미 받은 죄로 내 한 번은 눈감아 드리리라. 대신 한 달 후엔 꼭 선택하셔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으르렁거리던 남자가 사라지자 아빠는 우릴 보듬고 울기 시작했어요.


“아빠는 절대로 너희들을 버리지 않아. 너희는 내 자식이거든. 자식 버리는 부모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아빠의 볼이 전보다 뜨거워졌어요. 제가 핥은 눈물은 전의 것보다 조금 짭짤한 것도 같았어요.



“얼른 동생이랑 먼저 자. 그래야 내일 학교 가지.”


한영의 이마를 쓰다듬는 카지노 게임의 표정은 마치 눅눅한 습기와 곰팡내만 가득 풍겨오는 폐가의 풍경처럼 느껴졌다. 카지노 게임가 이불을 덮어 주고 작은방에서 나간 후에도 불안감을 떨칠 수 없는 한영은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한영의 방에 있던 베이지색 창틀은 슬픔처럼 오래된 습기의 영향으로 심하게 변형된 채 오므라들어 있었다. 마치 세상과 원활한 소통로가 막혀버린 것 같았다. 창문 귀퉁이는 뜨거운 빛이 오래도록 드리운 영향으로 나뭇결이 쫙쫙 갈라져 있었다. 창틀과 창문은 오래전부터 서로 아귀가 맞지 않은 카지노 게임와 아버지 같았다. 한영은 그 창문을 여닫기가 늘 버거웠다. 밤마다 무수히 많은 별빛이 창유리를 두드렸으나, 한영이 열어주지 못했기에 방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한영의 여린 가슴 같은 땅바닥에 쏟아져 내렸다. 한영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비단 그 무수한 별빛의 따가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저녁상을 무른 지 한참이나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때문에 한영의 가슴에 내린 두려움은 이미 어둠의 농도만큼이나 짙어져 있었다.


어찌하여 불길한 예감은 단 한 번도 빗나가지 않는 것일까.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아버지가 늦게 들어오던 날은 어김없이 술에 취해 있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람의 혀는 마음을 베는 칼이라고 했던가. 술 취해 돌아온 아버지는 또다시 날카로운 혀의 날을 세웠다.


상습적인 칼질로 인해 지울 수 없는 피가 깊숙이 배어버린 나무 도마. 움푹 파여 내려앉은 그 나무 도마의 상처 위에 놓인 생선을 내리치듯, 아버지는 아물지 않은 카지노 게임의 마음을 토막 내기 시작했다. 카지노 게임는 그동안 힘겹게 헤엄쳐 온 그 격랑의 바닷속에서 뻐금거리던 아가미를 밖으로 드러낸 채, 필사의 몸부림으로 지느러미를 파닥거렸다.


늦은 밤, 탁탁 나무 도마에 찍혀 들어가는 칼날 소리와 함께 카지노 게임의 그 작고 초라한 지느러미가 파닥이는 소리가 한영의 귀에 들려왔다. 하지만 한영은 감이 아버지와 대적할 수 없었다. 한영이 카지노 게임를 위해 할 수 있었던 것은, 숨죽이며 누워 늘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무사히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목소리는 점차 더 크고 날카로운 칼로 변해가고 있었다. 제 몸조차 가눌 수 없는 한영에게 그 무슨 힘이 있어, 저토록 날카로운 칼을 무디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다만 한 가지가 있었다면, 그것은 세월의 풍화에 의지하는 것뿐이었다.


“저토록 흉포한 아버지도 세월이 가면 병들고 늙을 거야. 아버지가 그렇게 쇠락해져 가는 동안 나는 강성해질 거야. 그날 반드시 되로 받은 이 고통을 말로 갚아 주고 말 거야. 아버지를 밟아 으스러트려 시장에서 팔던 그 어묵도 될 수 없는 가루로 만들어 주고 말 거야. 카지노 게임 그때까지 우릴 버리지 말고 조금만 버터죠. 카지노 게임.”


“으~아악!”


순간 카지노 게임의 자지러지는 비명이 한영의 가슴을 찔렀다. 한영은 여전히 아버지가 두려웠지만, 한 번도 카지노 게임가 그런 비명을 지른 적이 없었기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을 억누르고 안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한영의 시야에 드리운 것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영화 속에서 보았던 사람의 상처 난 몸에서 흐르던 피, 카지노 게임의 허벅지에서 그런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한영은 얼음처럼 굳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카지노 게임도 일어서기가 버거운지 앉은 자세로 깊숙이 들어왔던 칼날이 연한 육질을 맛보고 빠져나간 허벅지를 꽉 잡고 있었다. 한영 앞에 절대로 드러내어서는 안 되는, 마치 허벅지 속에 감추고 있던 옛 상처의 비밀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막으려는 듯 카지노 게임는 손아귀에 온 힘을 다하여 허벅지를 꽉 잡고 흘러나오는 피를 막으며 손아귀로 막을 수 없었던 눈물을 쏟아놓고 계셨다.


아버지는 곧이어 방바닥에 칼을 떨어뜨리며 장롱에 몸을 기댔다.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는 듯,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영은 만약 이 세상에 사탄이 존재한다면 바로 아버지가 틀림없을 거로 생각했다. 사탄 중에서도 최고, 으뜸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인간으로 둔갑할 줄 아는 능력이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한영은 칼을 집어, 사탄의 가슴을 쑤시고 싶었다. 그렇게 해도 이번 한 번은 하나님이 모른 척 눈감아 주실 것 같았다. 아니 그렇게 하면 천국행 입장권을 제일 먼저 주실 것도 같았다.


한영이 카지노 게임를 부축하여 밖으로 나오자 골목 안에 가득했던 어둠은 마치, 카지노 게임의 허벅지에 응고된 피처럼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그 어둠의 부피가 크게 키운 밀도가 골목 안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때문에 어둠을 밀고 나아가느라 그들의 걸음은 너무나 더디고 더뎠다.


“카지노 게임 어떠니? 괜찮나?”


한영이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카지노 게임는 괜찮다. 니 먼저 뛰어가서 택시 잡아라.”


오른쪽 허벅지를 감싸 쥔 카지노 게임가 힘겨운 듯 말하자 한영은 골목을 벗어난 큰 길가로 먼저 뛰어갔다.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그곳엔 그들이 헤쳐나가야 할 잔인한 시간만큼이나 광활하고 아득하여 발 닿을 수 없는 어둠만이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카지노 게임 이 시간에 택시가 있나?”


헐레벌떡 다시 카지노 게임에게로 뛰어온 한영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럼 저 밑에까지 걸어가야지 어쩔 수 있나.”


대로를 조금 더 걸어 내려간 카지노 게임와 한영은 다행히 택시를 잡아탔다. 병원으로 가는 동안 뚱뚱해 보이던 기사 아저씨는 카지노 게임의 허벅지에서 흐르던 피가 좌석 시트에 묻을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눈치였다.


조그만 읍내의 병원 앞에 그들을 내려놓은 기사는 카지노 게임가 앉은 시트를 힐끗 쳐다보았다. 다행히 문을 두드리자 잠이 들깨인 것 같은 간호사가 한영과 카지노 게임의 더딘 걸음과 비길 수 있는 걸음으로 나왔다. 곧이어 낡은 병원의 그 초라한 이력만큼이나 어딘가 미더워 보이지 않는 의사가 간호사와 함께 카지노 게임의 수술 준비를 시작했다. 수술 준비를 하는 내내 잠이 오는지 눈을 비비던 간호사와 의사는 한영의 눈에 미더워 보이지 않았다.


“카지노 게임, 여기 말고 다른 병원은 없나?”


한영이 카지노 게임의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카지노 게임는 대꾸 없이 한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스크를 착용하기 위해 입으로 가져다 대고 있던 의사는 아직도 잠이 덜 깬 건지 눈을 비비며 한숨까지 쉬었다.


“아니 어쩌다 이리되신 거예요?”


의사가 물었지만, 카지노 게임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한영은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버티며, 의사가 칼에 찔린 카지노 게임의 허벅지에서 너덜너덜해진 살을 다듬어 없애고, 다시 꽤 메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낚싯바늘 비슷한, 둥글게 생긴 바늘이 카지노 게임의 살을 찌르자 한영은 자신의 허벅지가 따끔거려 오는 것 같아 인상을 구겼다. 다행히 한영이 앉아서 잠들기 전에 수술이 끝났다.

곧이어 카지노 게임와 한영은 병원에서 마련해 준 조그만 방에 함께 누웠다. 방바닥엔 보온 장판이 깔려 있어 따뜻했다.


“카지노 게임 심장이 몹시 아픈가 봐.”


카지노 게임의 여윈 가슴에 포도송이 같은 눈물이 그렁하게 맺힌 얼굴을 묻은 한영은 잠이 오는지 눈꺼풀에 힘을 주었다. 한영의 속 쌍꺼풀이 잠깐 도드라졌다.


“아니야. 카지노 게임 심장은 아프지 않아. 원래 심장은 뛰는 거야.”


카지노 게임는 한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가녀린 목소리로 말했다.


“불안해. 왜 이렇게 빨리 뛰는 거야? 카지노 게임 심장은? 이러면 지치지 않을까?”


한영은 자신이 달릴 때 보다 더 빠르게 뛰는 카지노 게임의 심장이 불안했다. 지난날 달리다 지쳐서 운동장에 덥석 누워버리고 말았던 자신처럼 행여 카지노 게임의 심장이 지쳐서 멈추지는 않을까 싶어 너무나 두려웠다.


“심장은 이렇게 뛰는 거야. 이렇게 뛰지 않으면 살 수 없어.”


“아니야 카지노 게임, 내 머리 때문에 심장이 무거워서 아픈 거야.”


한영은 카지노 게임의 가슴속에서 들려오는 심장 소리가 여전히 두렵기만 했다.


“아 어떡해. 카지노 게임 배도 아픈가 봐.”


조그만 볼을 가슴에서 배 쪽으로 옮긴 한영은 카지노 게임의 뱃속에서 들려오는 낯선 소리를 들었다. 한영은 그 소리가 너무나 무능하고 초라하여 가엾기 그지없는 카지노 게임의 온몸이, 흐느껴 우는 소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카지노 게임는 무엇인가 결심한 것 같았다. 그러나 카지노 게임는 그 무엇인가를 한영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이 역력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한영은 카지노 게임의 그런 표정이 다른 날과 조금 다르게만 느껴졌을 뿐, 소풍 갔을 적 보물찾기 시간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단 한 번도 찾을 수 없었던 그 네모나게 접힌 보물 종이처럼 카지노 게임의 낯선 표정 속에서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 아니, 설령 카지노 게임의 심중에 있던 생각과 결심을 읽어내었다고 한들, 한영은 그것에 대하여 카지노 게임에게 캐물을 수 없었을 것이다, 수긍할 수도, 실감할 수도 없어, 한사코 그럴 리 없다고 고개만 저으며 부정했을 것이다.



"카지노 게임는 날 버린 게 아닐 거야. 상황이 어쩔 수 없었잖아 나라도, 나라도, "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아빠의 가슴이 뜨거워졌어요. 그날 이후 아빠는 우리와 놀아주는 시간이 짧았고 새벽 일찍 자주 외출했다가 돌아오곤 했어요. 밖으로 나갈 때마다 입던 아빠의 외투는 점점 두꺼워졌어요. 집으로 돌아와 우리를 보듬는 아빠의 가슴은 이상하게 차가웠어요. 참 이상한 일이죠. 저는 아빠의 가슴에 체온을 더해 주었어요. 그러자 아빠의 가슴은 다시 따뜻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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