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울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고
누군가에게는 지붕 같았던 엄마가 죽었다.
지붕 아래 품었던아이들은 어렸고,
말없이 웅크린 채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기억을 뒤지느라
오늘을살아내지 못하는 남편은
여전히 나약했다.
그녀의 빈자리는
생각만큼 컸다.
살기 위해 애쓴 삶이,
남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무능으로 드러났다.
그렇게 살지 말았어야 했다.
조금만 더
자신을 위해 살아도 괜찮았을 인생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법을
그녀는 배우지 못했다.
친구는 죽었고
우리는 남았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에겐
부모가 있었고
자식이 있었고
곧 새로운 아내도 생겼다.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있었다.
엄마는사라졌지만,
아버지가남아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있다.
오늘, 그리고 내일을 빼앗긴 사람,
우는 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아버지는 울지 않았다.
공부를 잘했다고 했다.
매우 똑똑했다고 했다.
그 시절,
시골에서는 드물게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고 했다.
할 수 있는 게
공부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키는 자랐고
오른쪽 팔은
해마다 조금씩 짧아졌다.
짧아진 것은 팔뿐만이아니었다.
똑똑한 아버지는
무능한 농사꾼이 되었고
조용한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
어릴 적
누나 등에 업혀 가파른 길을 내려오다 넘어졌다고,
어린 누나가 오른쪽 팔을 포대기에 넣고 엎은 바람에
넘어지면서
오른쪽 팔이 부러졌다고,
통증에 익숙해져 버린아이가
더 이상 울지 않아 병원에 가지 않았다고,
아이는 자랐고
오른쪽 팔은 펴지지 않았다고
그저 장애인가 보다고,
후유증으로 장애가 생긴 건가 보다고,
아무도 묻지 않았고,
아무도 말해주지않았다.
육십이 넘어서야
골절된 뼈가 어긋난 채
붙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수술을 하면
지금보다는 나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괜찮다고,
지금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그 말엔
오래된 피로와
말하지 못한 두려움이 함께 묻어 있었다.
사실은 무서웠다고 했다.
팔이 펴지면,
남들처럼 살 수 있게 되면,
참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오래 살아낸 세월이
너무 억울하고,
너무 분해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했다.
그동안 참아왔던 것들,
말하지 못했던 모든 시간들,
그의 인생이
펴진 팔로 인해 구겨질 것 같아서
그래서 그는
지금처럼 사는 쪽을 택했다.
남들과 다른팔로
지금까지의 인생을
사는 것이 더 익숙했고
덜 아팠다.
그저 살아냈다.
우는 대신 그냥 묻고 덮고 가는 것으로
살아냈다.
딸의 죽음 앞에서도
그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