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과에는 대만 국적의 유학생이 두 명 있었다. 1년간 타이베이에서 어학연수를 밟았던지라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친근감을 느꼈다. 그중 한 남학생은 늘 앞자리에 앉아 강의를 받았다.
키는 작고, 피부는 까무잡잡하며, 머리는 까까중처럼 빡빡머리를 하고 있고, 옷차림은 바로 절로 들어가도 아무런 손색이 없을 만치 수수한 차림. 그야말로 공부 외에 딱히 할 일이 없을 듯한 그런 남학생이었다. 우연히 그의 책을 들여다보니, 모르는 단어 옆에 뜻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강의 전 예습할 수 있는 여유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하루는 도서관 1층 홀에서 그를 보고 의아했던 적이 있다. 그날은 시험이 있는 날 아침이었다. 모두가 정신없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을 시간에 그는 유유자적 신문을 보고 있는 거였다. 저 애는 시험을 포기하기라도 한 걸까?
나중에 알았는데, 평소나 시험 기간이나 똑같은 패스로 공부한다고 하니, 나로선 경악할 노릇이었다.
타이베이에서 1년간 연마한 중국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퇴보되는 것이 아쉬웠던 차에, 같은 과에 대만 학생이 있어 행운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늘 혼자 앉는 그 학생 옆자리로 가서 강의를 받곤 했다.그 학생과 친해져서 중국어를 연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잘 생기고 멋있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인데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기에 부담 없이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자기집으로 초대했다. 학교 근처에 살고 있는 그의 방은 꼭 필요한 물건만으로 필요한 자리에 반듯하게 놓여 있어 엄청 깔끔했다. 게다가 손수 만든 반찬을 내며 밥상을 차려주었는데, 그 밥상에는손수 만든 오이김치가 놓여 있었다. 대만사람이 만든 오이김치를 한국인이 먹고 감동을 했다.
우리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각자의 목표를 나누었다.
나는 그에게 자신의 한계점까지 공부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어느 순간이 되면 더 이상 뇌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지점을 '한계점'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한계점이 어디인지 알지 못했으며, 만약 그 지점에 도달하지 않고 포기한다면 후회할 거라고.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공부를 시작한 이상, 그 한계점까지 해보고 싶었다.
‘한계’라는 것은 내 안에서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그 당시에는 알 리가 만무했다. 내 한계점이 대학 졸업 지점일지, 아니면 석사학위 이수 단계일지 말이다. 그때 내가 최대 생각할 수 있는 범위는 석사과정까지였다.
그의 꿈은 소박했다. 대학 졸업장이라 했다. 소박하고 부풀려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그는 다른 유학생들과 사뭇 달랐다. 많은 유학생들이 어떤 목표를 향해 달려가며 헉헉거리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는 그저 그날그날을 충실히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는 일본어를 유난히 좋아했다. 일본어가 좋아서 시간 나면 교과서를 읽고 신문을 읽는다는 거였다. 따로 예습을 해야지 해서 하는 게 아니라 일본어 공부가 좋아서 한다고 했다.
꾸밈없고 검소하고 단순한 사고와 생활을 하는 그와 같이 있으면 왠지 모르게 편하고, 내 그대로의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 좋았다.
중국어 연습을 하고 싶어 다가간 것인데, 정신을 차려 보니 학과에서 교수들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전부 알려진 공개 커플이 되어 있었다.
세상 남자를 "돌"같이 바라보며 공부만 하자던 다짐은 어디로 간 것일까?
절교를 외치며 대만을 떠나 여기로 왔는데, 일본에서 다시 대만 사람과인연을 맺다니...
인생이란 거, 참 모를 일이다!
키가 딸내미보다도 작고, 동남아풍의 얼굴에다 까무잡잡한 피부, 게다가 빡빡머리. 그를 데리고 고향 집에 처음 갔을 때 카지노 게임 추천의 반응은 가관이었다. 그때의 표정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그를 보자마자 어머니는 다짜고짜 퍼부었다.
"30년을 고르고 고른 게 저 놈이가(놈이니)?"
"대만 사람은 다 정(저렇게) 검느냐?"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그이지만, 어린아이라도 손짓, 표정에서 카지노 게임 추천의 심정을 알수 있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의화는 밥상을 둘러싸고 먹는 자리에서도 이어졌다.
그이 오른쪽에 앉은 카지노 게임 추천의 온 촉각은 그를 향해 있었다. 국그릇이 밥그릇 오른쪽에 나란히 놓여 있는 게 익숙하지 않은 그는 국그릇을 밥그릇 뒤쪽으로 옮겼다. 그걸 본 엄니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 국그릇을 원래 자리로 가져다 툭 놓았다. 그걸 잠시 보더니 그는 다시 국그릇을 옮겼다. 엄니는 곁눈으로 째려보더니 다시 국그릇을 원래 자리로 가져다 놓았다. 그야말로 두 사람은 밥상에서 국그릇을 놓고 말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던 거였다.
그러는 와 중에 '뿌욱' 소리가 났다. 그가그만 방귀를 뀌고 만 것이다. 온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카지노 게임 추천 귀에 당연히 들어갔고, 가뜩이나 맘에 안 드는 데 식사 자리에서 방귀까지 꿰어 대니 카지노 게임 추천의 눈에서는 빨간 레이저 광선이 뿜어 나왔다.
그 분위기에서 방귀가 나오다니, 기가 막힐 일이었다.
아무 일도 없는 냥 화제를 꺼내 보았지만, 엄니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밥 몇 숟가락을 뜨고는 놓아 버렸다. 생리적인 현상인데 그걸 갖고 뭐라고 하냐고 그를 변호했더니, 엄니는 그가 엉덩이를 들면서 방귀를 뀌었다 한다. 물론 그는 자신도 모르게 나온 거라 변명했지만.
예비 사위와의 첫 대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교재를 하고 석사 과정에 들어가 결혼을 하려고 할 때 엄니는 크게 반대하지 않으셨다. 반대를 해도 소용없을 거라 생각하셨는지 아니면 늦게라도 결혼해서 안도를 하셨는지...
숙명론을 절대 부정하던 젊은 시절도 있었지만,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보니 숙명을 완전 부정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나와 대만 사람, 대만과의 인연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운명일지 모른다. 이런 내 운명이 싫다는 말이 아니다. 이게 운명이라면 받아들이고, 이곳 대만에서 맺어진 수많은 만남, 인연들이 내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성찰해야 할 것이다.